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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8.11.16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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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잡담 2021. 2. 16. 20:01

-오랫만에 블로그를 쓴다 사실 트위터에서 짧게 쓰는게 편하니까...안쓰게 되지 블로그. 근데 트위터라고 잘 쓰진 않는다 저는 알티머신이니까요 

-도검 뽕은 다시 차서 뭔가 쓰고 싶지만 나는 글 재활을 해야 할 처지인 것이다 안쓰면 퇴화하니까...지금 글 쓰면 너무 민망할거 같으니까...그래서 맨날 블로그 켰다 껐다만 반복하는데 요즘 왠지 조회수가 찍혀있어서 무섭다 나 혹시 좌표라도 찍혀있나? 싸불당하고 있나? 음....모르겠다 설사 그렇다 쳐도 내가 모르는데서 일어나는 일은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니까...근데 또 싸불당한다고 생각하면 다시 또 좀 무섭긴 한데 어차피 제 글은 저만 좋아할 게 뻔한데 비공개로 돌려도 되지 않을가여 흠...근데 이거 내가 들어오는 것도 조회수로 치는거면 아무도 안 보고 있을 수도 있는거임 아직 잘 모르겠다

-도검뽕이 왜 다시 찼냐면 음곡제 때문에여 저는 도뮤 없으면 진작 탈덕했을 거 같음 게임이 뭘 줘야 주워먹고 살죠...근데 그렇게 스토리없는 장르 존나 파기 힘드네 하고 잡은게 히프노시스 마이크였고 그걸 잡고 나서 느꼈다 스토리작가가 존못인 것보단 스토리가 없는게 낫다...힢마 스작새끼야 절필해

-사실 2018때 카라쨩 없어서 그냥 좀 식어있던게 전에 니코동에서 난무광란 틀어주는거 보고 흐읍 마키시마 존나 멋있어 카라쨩 최고 하고 오열하면서 들어왔다가 음곡제에서...하 그 연미복 진짜 반칙아냐???? 유리색의 하늘 부를때 카라쨩 제스쳐 하나하나가 너무 찡하고 좋았음...미호토세 재연 블레를 꼭 사야한다...살거 너무 많아 츠와모노도 사야 되고 음곡제 채시기도 사야 되고 흡 도뮤 진짜 

-그렇다고 도뮤를 전긍정하냐면 그건 아닌데 저는 키쇼혼키를 좀 재미없게 봤거든여...어떤 설정을 좀 싫어했는데 지금보면 더 나을수도 있긴 하겠다 조만간 키쇼혼키를 다시 봐야지

-암튼 음곡제 최고...두 번 봤는데 진짜 최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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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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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나를 믿어주는게 먼저야. 그게 필요해."

변해버린 용모로 당당한 표정을 하고 돌아와서는 아이젠이 가장 먼저 웃으면서 꺼낸 감동적인 말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게 하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얏! 하고 터져나온 한심한 비명은 떠나기 전이나 돌아온 지금이나 똑같아서 살짝 안도했다. 무슨 짓이냐고 항의하는 녀석이었지만 내가 말하기도 전에 다른 남사들이 아이젠을 질책해서 내가 나설 부분이 없었다. 특히 거세게 비난하는 남사들은 대체로 단도들이었다. 이 혼마루에도 몇 명인가 수행을 떠날 만큼 연도를 쌓은 단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만큼은 이해하고도 남았다.

 

-다른 남사들이 머리를 맞대더니 자기들끼리 남사청문회를 열고선 아이젠에게 일주일 간식을 금지시켰다. 조금 안쓰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덕분에 나는 수행도구들을 남사들이 멋대로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따로 창고에 두고 자물쇠를 건 뒤 주구까지 사서 단단히 결계를 쳐야 했고, 예정에도 없던 남사의 수행에 대해 보고서를 써 올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면담 한번 하지 않은 남사가 멋대로 뛰쳐나갔다고 하면 큰일이라서 근시와 온 머리를 짜내서 날조한 보고서였다. 뭐 결과가 문제없으면 만사형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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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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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카테고리 없음 2020. 7. 3. 21:14

거의 버려둔 블로그 돼버렸는데 가끔 유입수 조금만 많아져도 겁먹곤 함...비공개할까

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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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진검난무제

잡담 2018. 12. 22. 08:08

-나는 일단 2017년걸 너무 좋아했고 그래서 평가기준도 그쪽에 맞춰져있음

-이번의 주역?은 토모에가타 나기나타고 주제는 축제. 일본 전통마쯔리...조금 호불호갈리지 않나? 싶긴 했지만 그런거 치고 처음의 마쯔리 메들리는 참 좋았다 각지역 마쯔리 노래같은거 팀별로 하나씩 돌아가며 부르다가 클라이맥스 때 그게 확 섞이는데 완전 감탄함 이때 남사들이 동군 서군으로 나눠서 걸친 옷도 너무 이뻤어

-다만 작년보단 자체적 스토리에 큰 몰입은 못했고...작년엔 백물어를 주제로 거기 아오에를 주역으로 세워 진행한게 너무 좋았어 특히 마지막에 자신의 일화를 이야기하던 아오에를 멈춰서 아오에가 저쪽으로 넘어가는 걸 막아주고 같이 손을 잡고 노래하며 돌아가던 이마츠루랑 이시키리마루...그 연출이 진짜 좋아서 올해는 그런 인상깊은 부분은 없단게 느껴지고 아쉬움
차안과 피안, 이세상과 저세상을 잇는...이야기는 심지어 2016년 진검난무제에서도 했던 거라서여...쩝

-내가 아직 아츠카시이문 파리공연을 안봐서 너무 초반 곡들이 낯설어서 집중력이 떨어짐 그리고 곡들에 겐지형제 들어간건 좋은데 산죠는 파리공연 2부의상 입고있고 겐지형제는 츠와모노 2부의상 입고 있어서 통일감 없음...그냥 오ㅇ0ㅇ 하고 봤는데 여기서만 이야기해도 되나 무스하지 이후 곡들을 그렇게 안좋아해서 겐지 형제가 저스트 타임 부를 때까지 서먹했음

-그뒤로는 익숙하긴 한데 그냥 세토리 자체가 2017이 더 취향이어서...아 진짜 쟈칼 뺀거 용서할수 없다 어떻게 그걸빼죠? 미호토세조 하면 쟈칼 아니냐(넘  그리고 Can you guess what? 할때 카라쨩 부재 너무 크게 느껴짐 그걸 모노요시가 커버할때 더 크게 느껴짐 노래 아직 많이 안늘었구나ㅠㅠ...자이키 노래 잘했는데 너무 아쉽다 이 부재감이 케모노까지 이어지면 개슬퍼짐 카네상이 못했단게 아니라 그냥 그건 작년 케모노 무대에서 카라쨩 존재감이 너무 컸던 거겠지만...솔직히 무스하지 때도 케모노 심드렁하게 듣긴 했지 하 전 2017 케모노 못버린다
저는 개인적으로 각 무대마다 하나씩 인상적인 곡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넣어줘야 산다고 생각하는데 mistake빼고 하나도 안나왔어 엉엉 어떻게 Be in sight를 빼죠? 좋아하는 곡 거의 안나와서 슬펐다ㅠㅠㅠㅠ

-단점만 말한거 같은데 장점은...음 바뀐 호리카와 배우 진짜 노래 잘해서 어느 노래에 들어가도 안정적으로 커버해줘서 좋았달까 호리카와 배우 들어간 미스테이크 진짜 좋았다고 생각해...천랑전 조에 노래 독보적으로 잘하는 애가 별로 없어서 호리카와가 더 빛을 발하는데 하
안정의 무라마사조는 말할것도 없다 대체 뮤지컬 무라마사는 얼마나 더 잔망스러워지려고 이러지? 미호토세 재연 너무 기대된다ㅠㅠㅠㅠ
그리고 애들 때깔 너무 고와짐 하치스카 오시는 꼭 올해 라부페스를 봐야한다 아직도 뻣뻣하고 춤이 한박자씩 늦긴 한데 완전 이쁘고 귀여워ㅠㅠㅜㅠ 마지막 인사할때 하치스카 코테츠다./(좌중환성)/왜 위작보다 소리가 작지? 하는거 너무 귀여워서 엉엉 팬서비스하는 곡에서 중간에 카메라쪽 보고 쪼그려앉아서 웃으면서 손흔드는 것도 너무 귀여웠어 무라마사만 기대하고 있었는데 하치스카ㅠㅠ진짜 이쁘고 귀엽고

-근데 좀 과한 서비스가 많아서 아니 저 알아서 먹을테니까 안떠먹여주셔도...싶은게 좀 있었음 코기츠네마루랑 히게키리 0거리에서 서로 노려보는 거나 나가소네가 하치스카 어깨 안는거나 뭐 이거저거 지옥의 부녀자는 그런거 안해줘도 알아서 잘 먹습니다 좋긴 좋았지만
저 코기히게 노려보는거 레알...하 히게키리 배우 이제 겨우 미자탈출한 애가 쩔어 겐지형제 쌍기출진 기대된다

-뭐 암튼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날 실망시켰어 도뮤에서 도검난무 완창을 안하면 어디서 하겠단거죠?

-가을에 신작 나온대서 서운한건 풀렸음 잘해라...순서상으론 미호토세 후속격으로 하나쯤 나올때긴 한데 미호토세가 워낙 단독으로 잘 마무리돼서 후속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내년 새 카라쨩이 케모노 센터로 서도 나는 심란하겠지 하 내가 자이카라를 이렇게까지 좋아할 게 아니었는데

-아 카슈도 안나왔는데 전 뭐 류지미츠 좋아는해도 글쎄 확 좋아한건 아닌지 많이 안 아쉬움 카라쨩에 아쉬움이 다 몰려서...그런 종류 창법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ㅠ물론 그거랑 별개로 내맘속 카슈는 사토 류지의 카슈처럼 노래할거 같긴 하지만 암튼 그렇다
그리고 굳이 카슈 개인곡 편곡해서 다른남사들에게 부르게 할것까진...솔로곡 정도는 개인영역으로 남겨놔도 좋잖아

-나가소네 표정처리 누가 지시해서 저렇게 하고 있는거면 그사람은 나한테 맞소 왜 자꾸 삼류악당같이 한쪽 입꼬리만 끌어올려서 비열하게 웃게 하는데

-그리고 역 때문에 높은 목소리 내야되는 배우들 좀 어케 안될까...안되겠지만 그냥 안쓰러워 이마츠루랑 안정이 배우 목이 완전히 갔잖아여ㅠㅠㅜㅠ목은 안아플까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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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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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잡담 2018. 11. 19. 13:52

-생각해보니 제목을 대놓고 쓴 곳이 없던거 같아서 검색 걸리라고 잡담글씀 저는 소심한 관종이에요

-사실 연성 제목은 재활용 혼마루가 아니었다(...) 망싸에 있을때 개인스레 하나 만들고 한참 버려놨다가 블로그에서 쓰던 연성 올리고 싶어서 개인스레 있으니까 그거 재활용해야지 하고 개인스레 이름을 그걸로 바꿔놨다가 그냥 자연스럽게...그래서 개인스레의 일부였다. 근데 나는 원래 제목을 잘 못 짓고 그냥 연성이랑 맞는거 같아서 놔뒀음.

-사소한 여러곳이 다른건 망싸1 터지고 옮겨간데도 터지고 마지막엔 터지는게 나았을 망싸2여서...여러곳 옮겨다니면서 재업할 때마다 조금씩 그때그때 더 나을거 같던 표현으로 바꿔쓰느라...그래서 한동안 에버노트에 망싸2 버전을 따로 올렸었는데 그냥 이번에 재공개하면서 다시 망싸2 버전으로 통일했다.
지금 생각하니 원본은 비공개로 두고 망싸2로 새로 올리면 되는 거였는데 기쁜나머지...그걸 생각못한 용량작은 머리ㅜㅜ

-연성 올리려고 에버노트 정리하다 보니 몇 개 정도 분위기에 맞는 곡을 찾아둔게 있긴 한데 지금 보면 또 아닌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냅둠. Dir en grey를 좋아해서 그때도 디르 곡을 꽤 찾아뒀던 거 같다. 곡보다는 가사 위주로 고른거 같아서 몇 개만.

사니와&카센  sukekiyo - aftermath 
사니와 과거   Dir En Grey - 24個シリンダー
사니와 현재   A9 - フリージアの咲く場所

몇 개 더 있었는데 지금 보면 아닌 것도 같아서. 사니와&카센은 곡 분위기나 멜로디는 ? 싶긴 한데 가사가 그 느낌임. 사니와 과거랑 현재는 지금 생각해본 거. 
별개로 쓰면서 가장 많이 들은 곡은 DIR EN GREY - 空谷の跫音 . 그 느낌을 조금이라도 글에 넣고 싶었다.



-생각해보니까 사니와 신상정보도 원본 지울때 같이 지웠네...나름 주사위 어플로 짠 거라서 남겨둘까 했는데
암튼 그렇습니다 호즈미 코우키(穂積 幸樹). 29세. 4월 23일생(황소자리). 179cm. 여기까지는 기억한다...

-처음엔 검주/주검 좋아해서 사니카슈로 쓰려고 했고 중간에 뭔가 주사위 판정 결과로 츠루사니도 좀 들어가긴 했는데 도중에 내가 사니와 들어가는 컾을 안파게 돼서...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깊은 관계는 있을수 있는거고 사니와&카센, 사니와&카슈, 사니와&츠루마루 셋 다 그런 깊은관계...그게 연애적인 의미는 아니어도 사랑하는 사이는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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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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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

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2:01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정갈한 얼굴을 조각조각 나눠놓은 거 같이 복잡하게 간 금을 보고 있어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제 와서 나는 당신을 미워하기에도, 측은히 여기기에도 벅찬 작은 그릇밖에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입꼬리를 살짝 당기는 당신의 얼굴에서 자그맣고 불온한 마찰음과 함께 손톱 끝만큼 작은 조각이 떨어져내렸다. 아주 작게 난 구멍 뒤로는 검은색만이 보인다. 그 틈새를 바라보는 나의 눈길에 당신의 눈길이 얽혔다. 금색의 눈동자를 감싸고 있는, 얼굴에 난 틈새와도 같이 검디검은 색으로 물들어버린 흰자위.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당신이 내게 웃었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랐어. 만나러 와 줬구나.

처음 만났을 때도, 나를 토막낼 때도, 내 살로 만들었다는 교자를 먹일 때도, 지금도. 당신은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분명, 당신을 미워하기에도 벅차지만, 그럼에도 온갖 감정이 흘러넘치는 것을 참았다.

나는 밋쨩을 꼭 만나야했어. 그래서 찾아온 거야.

 

-어째서니?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은 언제나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묻고서 답을 기다렸다. 내게 내 맛을 물어보고 대답을 기다릴 때처럼 참을성있게, 다정하게. 나는 그 이유를 더듬어보았다. 수많은 상처를 받고 아픔을 받았는데도 왜 꼭 당신을 만나야 했는지. 아직도 채 편하게 대할 수 없는 몇 자루의 도검들 중에 왜 꼭 당신이어야 했는지.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 혼마루의 모두 중에 당신이 가장 나에게 자상했거든.

......

나는 그걸 부정하고 싶어서 왔어.

하하, 그렇구나. 그러면 말해보렴.

나는 할 말을 살짝 떠올려본 뒤에 말했다.

그건 가짜였어.

살짝 눈을 가늘게 뜨더니, 부스러져가는 쇳가루와 함께 당신은 웃었다.

정답이야. 내게서 받은 것 중에 너를 향한 호의는 하나도 없어. 그걸 이제야 입밖에 낼 수 있게 됐다니 바보구나.

......

네게서 듣는 감사인사는 너무도 바보같아서 항상 괴로웠단다.

 

-당신의 상냥함은 나에게는 닿지 않았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잖아. 

모든 상냥함에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나 자신에게 들려줘야 했다. 그래야만 내가 지금 받는 호의를 순수히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당신에게서 받았던 것이 가짜라고 못을 박아두고 나서야 나는 내게 지금 주어지는 것이야말로 진짜라고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고마워할 필요 없는 것이지. 그걸 알게 됐다면 이제 하나만 더 하면 완벽하겠네, 코우키.

당신이 부르는 내 이름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현현한 몸을 유지할 힘조차도 없이 부스러져가는 츠쿠모가미가 부르는 이름은 어떤 힘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태연히 나를 부르는 당신을 바라보고서 물었다. 그 하나가 무엇인지.

나를, 우리를 미워하는 것. 그걸로 편해질 수 있어.

......

그 미워하는 마음으로 내게 복수해보고 싶지 않니?

어떻게.

다른 사람의 혼마루라서 조금 문제될지도 모르지만, 나를 여기서 부숴버릴 수 있어. 네게는 그럴 힘도, 자격도 있지. 이렇게나 오염되고 부서져서 본령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더럽고 멋없어진 나를, 여기서 한 번 후려치는 정도로 그냥 쇳조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미워하는 것으로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내가 혼자 품고 있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잔뜩 흘러넘쳐버릴 정도로 많은 일을 당해야 했다. 아픈 것도 괴로운 것도 슬픈 것도 팔로 다 안고 있지 못할 정도로 한가득. 그래서 카슈를 만났을 때도, 오오쿠리카라를 만났을 때도, 츠루마루를 만났을 때도 매번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질질 흘리고 다니고 있었다. 그걸 누군가를 미워하는 걸로 버려버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너 때문에, 너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미워하면서 남 탓을 하는 것은 편하고 쉬운 일이다. 

나는 그러지 않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온 거야, 밋쨩. 나는 밋쨩을, 미워하지 않아.

그러니.

미움받고 싶었지? 미움받아서 편해지고 싶은 거지?

내가 당신을 미워함으로 편해지고, 당신이 내게 미움받아서 편해지는 것도 선택지 중의 하나이고, 그게 나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조금 더 어렵고 불편한 길을 가보고 싶었다. 당신을 미워하지 않고 잊지 않고, 당신을 생각해도 괴로워지지 않을 때까지 나는 천천히 버텨보고 싶었다. 언젠가 내 기억이 다시 내게 날을 들이대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정도로 그 기억을 무디고 녹슬게 만들고 싶었다. 

 

-작고 날카로운 쇳조각들이 투둑거리면서 떨어졌다. 꽤나 많이 부서진 얼굴을 하고 그는 웃었다.

끝까지 바보같은 인간의 아이로구나.

응. 바보 맞을 걸.

그렇다면 마지막 부탁만은 들어주지 않겠니. 네게 도해되는 것은 이룰 수 없는 소원이기에 네게 부서지고 싶었다만. 그것도 어떻게 할 수 없다면....이기적인 부탁인 것은 알지만 마지막을 지켜봐주지 않겠니.

 

-밤이 되어서야 혼마루로 돌아왔다. 모두가 게이트 앞에서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웃어주고 싶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았다. 울지 않는 것이 고작인 나를 두 개, 네 개, 열여섯 개, 수십개의 팔이 둘러싸고 안아주었다. 그 혼마루에서 받아온 손 안의 작은 옥강조각을 꼭 감싸쥐고서 손바닥 안에 박힐만큼 꾹 쥐고서 버텼다. 말없는 따스한 포옹들은 결국 악문 이 밖으로 새어나온 짐승같은 목소리를 말없이 안아서 숨겨주었다.

 

-그대로 가장 큰 방으로 옮겨졌다. 언제 이불을 펴놓았는지 다들 거기에 나를 눕히고는 자기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혼자있게 해달라고 말했지만 다들 말도 안된단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모두에게 둘러싸여 큰 방 한 가운데에서 눈을 감아야 했다. 눈꺼풀 안쪽이 턱도 없이 뜨겁고 축축했다. 어둠과 뒤집어쓴 이불로 겨우 가리며 잠을 청하고 또 청해야했다. 

 

-집무실에 두고 있던 옥강조각을 단도실로 가져가서 수많은 옥강 사이에 던져두었다. 땡그랑. 작고 맑은 소리와 함께 그의 마지막 말이 들린 거 같았다.

바보같은건 여전하지만, 강해졌구나.

옥강조각은어디로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게 됐다. 그것이 좋다. 유품만이 늘어가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그 뒤로는 변함없는 시간이었다. 언제나처럼 가끔 어디선가 상처받고 들어오는 녀석이 있고, 이 곳보다 더 나을 곳으로 가는 녀석도 있다. 여기에 눌러앉아버리는 녀석들도 있다. 이 곳의 어디가 마음에 드는 걸까, 하고 항상 생각하면서 나는 가장 오래 눌러앉아있던 녀석들에게 괜찮다면 다른 곳으로 보내줄 수 있으니 나같은 녀석보다는 다른 주인을 섬기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혼났기에 그들에게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상처를 받았던 도검들이 천천히 나아져가면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들어온다.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사실 본래 그런 것이다. 

 

-도장에는 남사들이 데리고 온 여러 도검들의 이름이 적혔다. 그럼에도 그리 귀하지도 않은 평범한 희귀도의 두 자루의 이름이 적혀야 할 부분은 비어 있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내가 직접 데려와야 하는 것이다.

츠루마루는 이제 내게 단도를 권하지 않는다. 아마 언제가 됐든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지켜보고 있는 거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둘 다 요리를 잘 한다. 아마 하세베가 한층 편해질 것이다.

혼자 단도실에 들어가서 손에 잡히는 만큼 자원을 식신에게 쥐어주었다. 그걸 받아든 식신이 조금 있다가 세 시간 쯤 걸릴 거라고 쓴 나무패를 보여주었다.

그 정도의 시간을 걸려 만들어지는 도검남사는 많다. 하지만 누가 올 지 왠지 알 것 같았다.

세 시간 동안 나는 단도실 안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웃는 얼굴로 맞아주고 싶었는데, 아마 그는 당황했을 것이다. 그가 처음 현현되어 한 일은 보기 흉하게 울고 있는 인간 남자 사람을 달래주는 일이었으니까. 

덧붙여 겨우 그를 달래 데리고 나왔더니 다른 남사들이 흉흉한 시선으로 여차하면 발도하겠단 양 본체에 손을 대고 대체 사니와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고 캐물었던 것까지 더하면, 처음 현현된 그에게 여러가지로 미안한 일을 했다. 

츠루마루와 오오쿠리카라에게 그를 부탁했다. 그러고 보면 오오쿠리카라의 부탁은 이제서야 들어줄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고 싶은 친구였으니까 사이좋게 지내줬으면 좋겠다.

 

-주방으로 들어갔다. 낯설고 익숙한 뒷모습이 하세베랑 같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주방을 나왔다. 이제는 괜찮다.

방으로 돌아와 가만히 업무를 보고 있으니 그가 아침을 준비해왔다. 평범한 식단이었다. 고기감자조림을 뚫어지게 보고만 있어서 그랬는지 왜 먹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가져갔다. 맛있었다.

......평범하고 맛있는 아침식사였다.

 

-그는 아마도 또 당황했겠지. 주인은 울보구나, 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나는 그 뒤로 몇 번인가 더 단도를 시도했다. 때로는 적은 양의, 때로는 많은 양의 자원을 넣어 보았다. 여러 종류의 도검들이 단도되었다. 하지만 원하는 검은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리 드문 검이 아님에도.

지금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걸로 됐다. 그래도 나는 계속 검을 만들어보고, 아직 이 곳에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릴 것이다. 다시 찾아오는 그를 다시 사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주지 못한 것을 지금 여기에서 주기 위해서이다. 비록 나를 지키고 사랑해준 그 카센 카네사다가 아니더라도, 새로 이 곳을 찾아오는 그에게.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괜찮다고 웃어주고 싶었다.

 

 

(사니와가 미츠타다를 만난 뒤 돌아오는 부분을 날려버려서 다시 썼지만 원래 내용이 기억나지 않습니다ㅠㅠ 2년이나 지나서 가필수정하는 꼴이 돼버려서 죄송합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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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2:00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호오, 제법 무서운 물건을 가져왔구나.
그냥 톱이랑 망치야, 무섭고 자시고 할 게 어디있어?
그렇게 따지면 네가 자주 쓰던 드르륵거리는 칼도 그저 종이를 자르기 위한 것이 아니더냐.
이럴 때만 츠루마루는 정론을 취한다. 사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기도 하지만, 아무튼 나를 아프게 하고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하는 모든 일은 그만둘 생각이었기에 톱이랑 망치가 내 손에 들려있더라도 그것이 나를 해칠 도구는 되지 않는다. 내가 대답없이 톱이랑 망치를 공구함에 넣고 있자니 츠루마루가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제 와서 이게 필요한 이유는 뭐냐?
단도실 문. 그때 판자대고 못질해놨잖아. 뜯으려니 공구가 아무것도 없는 바람에.
......
왜 그래, 갑자기.
이제 와서 왜 단도실 문을 열려는 거냐.
너야말로 왜 갑자기 약해지는데. 심으라고 모란까지 주문했던 주제에.
츠루마루는 한참 말이 없었다. 살짝 승리했다는 느낌이 든다. 바보 츠루마루. 나를 위해서 내가 빨리 극복하라고 그렇게나 열심히 닦달을 해놓고서 정작 내가 단도실을 열고 제대로 다른 사니와들처럼 행동하게 되고, 그러다가 카센을 현현시키는 게 두려운 거다. 당연히 그렇겠지, 이전에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으니까. 바보, 그러게 정말로 무서운 건 물어보는 게 아닌데. 하지만 츠루마루답다. 그런 게 아마 용기겠지.
츠루마루는 계속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언제나 대담하고 활기차던 츠루마루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아직도 카센이 네 맘 속에서는 가장 큰지 묻고 싶다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너희만큼 크지 않아, 괜찮아.
거짓말이지만 진심이다.

-너무 커져버려서 이제는 오히려 의식하지 않게 되고, 만약 의식하게 되더라도 두 팔로는 다 들어올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이를테면 집 뒤에 있는 큰 산 같은 것이기에, 츠루마루가 원하는 것처럼 대답해주기가 힘든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작은 보석함과, 정말로 좋아하는, 매일 바라보는 풍경 중에 뭐가 좋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그것이 타당한 비교는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작은 보석함 쪽을 택했다. 너무 소중해서 절대로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작고 반짝이는 보석함을.

-단도실을 열기로 한 날은 출진도 원정도 없었다. 편하게 다녀오라고 했지만 다들 거부했고 나는 억지로 보내지 않았다. 내가 망치의 장도리 부분으로 단도실에 못박은 판자에서 못을 하나씩 뽑아내는 동안 다들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혼마루에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지로타치는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의아해하면서 니혼고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역시 오랫동안 운동이랑 담을 쌓아서 그런지 힘이 빠진다. 도와주려고 나서는 남사들이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하면 쉬엄쉬엄 하루나 이틀 정도 걸릴 것 같다. 긴 시간이다. 
역시 저희가...
아니야, 못박은 건 나니까.
그때는 영문도 모르는 남사들이랑 같이 판자를 대고 문에 못질을 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아는 남사들 앞에서 내 두려움을 벗겨내기로 했다.
결국 하루만에 다 끝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몇 번이나 망치를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오른손이 잘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먼지가 가득 쌓인 단도실을 청소하는 데도 또 꼬박 하루가 걸렸다. 깨끗해진 단도실 한가운데서 오랫만에 보는 식신이 고개를 숙였다. 당장 단도할 생각은 없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타도를 만드는 자원량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확률은 높다. 
태도를 만드는 자원량도 정해져있지 않다, 타도보다 확률은 낮다.
적어도 그 둘을 만드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이상해지고 망가질 확률은 꽤 낮아졌겠지.

-카슈와 신사를 청소하러 갔다.
사실은 태워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어.
나는 주인이 왜 신사를 안 태울까 하는 생각을 했지.
이럴 때는 카슈랑 죽이 잘 맞는다. 문을 활짝 열고 먼지를 털어내고 구석구석 화려하게도 드리워진 거미집을 걷어내면서 나는 마스크 속에서 조그맣게 대답했다.
안 태웠으니까, 나중에 다른 애들이 오면 아쉬워하지 않을 거야. 타로타치나 이시키리마루나...신사랑 잘 맞는 애들 있잖아.
정말, 괜찮아?
안 괜찮아.
사람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아질 거야.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기로 했다. 그렇게 말하자 카슈는 왠지 아쉬운 얼굴로 웃었다.
우리만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주인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게 맞을 거야.
너희가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니까.
알고 있어. 나도 츠루마루 씨도, 다 알아. 

-꿈 속의 혼마루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 쌓여있던 눈이 온기에 다 녹고 꽃이 흐드러지게 핀 폐허 속에서 나는 사방을 더듬어 깨진 칼조각들을 찾아 벚나무 밑에서 모양새를 맞춰보았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들고 있었던 칼집을 그 옆에 놓았다.
꿈 속의 벚나무에는 이제 벚꽃이 핀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한가득. 모란꽃이 언제 피었냐는 듯 연분홍색의 작은 꽃잎이 시야를 메운다. 그 벚꽃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또 찾아야 한다는 기분에 나는 또 꽃 사이를 헤맸다. 수없이 핀 들꽃들과 몇 개 남지 않은 모란 꽃잎 사이에서 새까맣게 탄 한 자루의 도신을 발견했다. 불꽃처럼 녹아내린 금의 흔적. 나는 이 검을 알고 있었다.
그와의 이야기도, 끝을 향한다.

-몇 번인가 메일을 주고받으며 그 혼마루의 사니와와는 친해졌었다. 언제든 마음이 내키면 말해달라던 용건을 겨우 메일에 쓸 수 있었다.
생활감이 없는 정갈한 방, 금줄을 몇 겹이나 두르고 부적을 빽빽하게 방 전체에 붙이고 있는 방 안에서 나는 그와 단 둘이 앉아있었다. 인간의 모습은 겨우 만들어내고 있는지, 얼굴이나 손에 금이 한가득이다. 깨져가는 도자기 그릇과도 같았다. 
그는 웃었다.
오랫만이구나. 잘 지냈니?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였다.
응, 밋쨩도 잘 지냈어?
나는 웃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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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1:59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연련을 보러 나갔다. 혼마루에 없는 남사들의 얼굴이 먼 발치로 보이는 것을 바라보곤 한다. 담당자의 배려로 상대 부대에 있는 도검들을 확인하고 고르고 있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익숙해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해서 피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천천히 기억 위로 현재를 덧칠해 나가기로 했다. 척추에 맞은 총알을 스스로 후벼파내야 했던 기억이나, 온 몸의 뼈가 부러지도록 맞았던 기억 같은 것을 가해자였던 얼굴들을 보면서 천천히 떠올려 보고 현재와 비교해, 부정하고 다시 저 뒤로 밀어 치운다. 나는 이제 고통받지 않는다. 내가 손을 내밀었던 만큼 손을 내밀어 지켜줄 사람들이 있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

마지막 연련이 끝나고 상대 부대와 인사하던 때 발치로 굴러오는 알알의 사탕이 있었다. 무심코 주워올리고 나니 조그만 아이가 허리를 숙이다가 떨어진 사탕을 줍고 있었다. 떨리는 손에 힘을 줘 감추며 다가가서 사탕을 건네주자 아이는 웃으면서 고마워, 하고 인사했다. 그리고는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큰 칼을 멘 채 먼저 돌아가는 동료들을 따라 뛰어갔다. 그 뒤 한참이나 떨리는 손을 근시인 고토에게 잡힌 채로 돌아갔다.


-주인, 내가 말하는 것도 뭐하다만 갑자기 서두르고 있는 것 같구나.

무슨 소리야. 단도실 좀 열라고 옆에서 귀에 딱지가 앉게 노래하던 건 누군데.

그건 동감이지만, 이건 츠루마루 씨 말이 맞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간단하게 설명했다. 츠루마루는 그 계집애 말 같은건 신경쓰지 말라고 화를 냈고, 카슈는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동감하는 눈치였다.

나도 안다. 굳이 전 혼마루의 도검들을 만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했더니 더 화를 냈다.

그러면 왜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는 거냐.

츠루마루야말로, 내가 카센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었지?

다르잖느냐, 그거랑 이건.

다르지 않아.


-레어도가 높지 않은 도검이니만큼 연련에 동참해 관전하다 보면 결국은 눈에 띈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그 날 겨우 기절만은 하지 않았지만, 그 날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검은 옷만이 기억에 남았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꽃병을 깬 조각으로 스스로를 상처내고 있었다. 당연히 모두에게 야단맞았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좀 침울해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랫동안 상처입을 일이 없다 보니 영력이 많이 안정화되고, 좀 더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상처는 평소보다 더 빨리 나았다.


-미츠타다를 싫어하나?

오오쿠리카라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했다.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나는 네게 둘 중 하나를 만나게 해 달라고 말했었지. 그 때 너는 츠루마루를 데려와주었다. 그건 도피였나.

그 질문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오쿠리카라는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다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미안해할 일도 이해하려고 할 일도 아니야.

너의 검이라면 미안해하고 이해하는게 당연하겠지.

그거 말고, 어울릴 생각 없다고 평소처럼 말해주는게 차라리 안정되는데...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오오쿠리카라는 내가 겪은 일에 대해 물었다. 나는 최대한 오오쿠리카라가 놀라지 않도록 자체심의를 거쳐 이야기해주었다. 다음날, 오오쿠리카라와 같이 밭일 당번을 맡았던 하카타가 빨리 방에서 나오라며 오오쿠리카라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갑자기 방에 틀어박혀 안나온다면서 투덜거리길래 대신 내가 하카타랑 같이 잡초를 뽑기로 했다. 좀 미안해져서였다.


-미츠타다는 그 혼마루에서 나에게 가장 상냥한 어조와 태도를 취하던 도검이었다. 물론 무슨 짓을 했느냐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그리고 카센을 빼앗겨 혼자였던 나는 나를 해치는 그 상냥함에조차 기댈 수밖에 없었다. 두려웠지만, 미워했던 적은 없었다. 그저 다정함이 그리워, 스스로를 해치는 의존이라는 것을 알며 그를 의지하고, 기대고, 상처를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는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도검이기도 했다.


-다시 만나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다시 소유권을 이전해오는 문제라면 불가능하다고 담당자가 말해주었다. 이미 관리대상이 된 도검이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 사니와의 손에 돌아오는 일은 없다고 한다. 만나는 것은 가능하다고 은근히 돌려 말하는게, 담당자의 악취미가 또 도진 건지 아니면 이번엔 진짜 걱정해서 운만 띄워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시간은 충실히 흐른다. 현세에 나갔다가 겸사겸사 초콜릿을 한보따리 사와서 남사들에게 돌렸다. 카슈랑 츠루마루가 유독 기뻐했다. 그런 뜻으로 준 건 아니니까 오해 없었으면. 작은 초콜릿이 하나 남았길래 벽에 걸려있던 칼집 안에다 넣어보았다. 


-꼭 죽기 전에 신변정리하는 거 같...아야!

왜 극복하고 일어나려는 사람한테 그런 불길한 말을 하는 거야!

이번에는 하치스카도 우라시마 실드를 쳐주지 않았다.


-담당자가 바뀌었다. 이전 담당자의 행방에 대해서는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았고 알고 있던 연락처로도 연락은 되지 않으니까 알 수 없었다. 그냥 일전에 그녀가 했던 말로만 겨우 유추가 가능할 뿐이었다. 그 날은 왠지 조금 울적해졌다.

나는 그녀를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공적인 일이니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거라고만 생각했지만 그래도 거의 마지막쯤엔 어떻게든 그런 마음이 좀 누그러지고 살짝 우정 비슷한 걸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했었지.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새 담당자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 혼마루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인수인계받은 자료를 다 읽어보고 납득해준 모양이었다. 현재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시설들에 대해서는 그건 그것대로 납득해주고, 일부러 하지 않는 업무에 대해서는 납득하지 않아 주었다.

전 담당자와는 친했나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곳에서 잘 지내줬으면 해요.

그 말에 새 담당자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다. 전 담당자와 의논했던 일 중 타 혼마루와의 교류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 당신이 맡은 혼마루랑 기본적으로는 같습니다. 그리고...전 담당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으니 이야기는 빠르네요, 권장하지는 않겠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내가 괜찮다고 한다면?

말리지는...못하겠군요.


-우리 혼마루에도 대태도가 필요할 것 같아 남사들과 의논했고, 한 명을 데려오기로 했다. 다들 대태도가 없어도 괜찮다고 말렸지만 효율적인 전투에 대해서도 고려해보는 것이 좋고, 가능하다면 남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이 언제든 옳기 때문에 열심히 남사들을 설득했다. 끝까지 가장 격렬하게 말리던 츠루마루와 카슈가 두 손을 들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혹시 진짜 죽을 때가 다 된거 아니지? 주인이랑은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단 말야.

너의 평생에 기준을 둔다면 그건 무리가 아닐까...

그나저나 정말 왜 그러는 거냐. 서두르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는데.

노력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인대.

누구한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대답은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멋있게 보이는 것보단 어울려 보이고 싶다.

너희들의 주인이라는 자리에 어울려 보이고 싶고, 지금은 없는 내 첫 검에게 어울리는 주인으로 보이고 싶다.


-도검남사들은 말석일지언정 신이지만, 살아있는 몸을 가지고 있기에 완전한 신이라기에는 다소 열화된 존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콜중독 같이 정말로 생물이나 가질 법한 문제까지도 공유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로타치는 일단 빈 방에 따로 격리하고 본체를 뺏았다. 술을 허락해야 하는지 아닌지는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기로 했다. 술 같은거 싫다고 고개를 저으면서 울음까지 터뜨리면서도 곧바로 술이 없다고 떨리는 손으로 여기저기를 뒤지고 끄집어내면서 찾고 있는 모습이 보기 안타까웠다.

생각만큼 전 혼마루의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모두 같이 모여 저녁을 먹다가 그냥 가볍게 여기서 쉴 만큼 쉬고, 여기에 더 있고 싶지 않아진 남사가 있다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을 꺼냈다.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하치스카가 입을 열었다.

상처는 나았고, 인간 모두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지금 주인을 믿는 것도 충분히 도박이었으니, 그런 도박을 여러번 할 만큼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주겠어?

다른 도검들도 비슷한 의견인 것 같았다. 더 좋은 혼마루로 갈 수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건데, 그게 아직 다 낫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는 발언이 될 수도 있었구나. 반성해야겠다.


-가지고 있던 본성번호에 연락을 넣었다. 

우연이란 이런 걸까. 그 혼마루의 사니와는 나를 전 혼마루에서 구해줬던 사니와였다. 내 용건에 대해서는 급할 것은 없고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몇 번이라도 고려해본 뒤에 말을 해주면그렇게 해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전에, 별도의 이유로 한 번 만나기로 했다. 약속장소에서 나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사람은 키도 나보다 훨씬 작고, 어려보였다. 

사니와 카루메루(甲乙)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사니와 요우렌입니다. 구해주신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아마 거기서 죽었다면 나는 이렇게 눈물나게 행복한 시간을 허락받지 못했겠지.

단말기로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칼에게 알콜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권하는 건 묘한 느낌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말야, 다 기억나거든, 마치 베어도 벤 거 같지 않은, 줄지어 선 단도들의 가는 목을 베는 느낌이 말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충혈된 눈으로 두리번거리면서 술을 찾고 있었다.

오빠야는 나쁜 애는 아닌거 같구나? 하지만 아무나 함부로 믿으면 안되는거, 알거든. 그 전 주인도 처음에는 착한 애였으니까 말야, 헤헤.

처음부터 믿을 필요 없어, 의심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편하게 있어. 술은...지금은 조금 줄이는 게 좋겠네.

지로타치는 딱히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필요한 물건을 신청하는 날이 또 돌아왔다. 남사들이 말해준 물건을 리스트에 적은 뒤에 내게 필요한 것을 생각해보았다.

마지막 칸에 톱과 망치를 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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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1:56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찍 이부자리를 펴고 눕는 것은 잠을 일찍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면증은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누워있다가 눈을 떠 확인하면 누운지 두 시간이 지나있을 때도 있다. 떠나버린 너에 대한 모든 기억은 의식을 지나칠 정도로 선명하게 만든다. 지친 표정 위로 녹아내리듯 상냥하게 웃던 너, 나를 안고 등을 토닥여주던 너, 잘린 내 팔을 주워들고 다시 붙을 때까지 말없이 환부를 맞춰주고 있던 너.
고통을 끝내고 싶지는 않냐면서 내 목에 맘에도 없는 칼날을 들이대다가 거두던 너.
너는 끝까지 나에게 그렇게 상냥했다. 마지막까지도 웃어 주었다.

-오늘 반찬은 입에 맞으십니까?
하세베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밥을 더 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반응이 저것이었다. 너무 많이는 못 먹으니까 조금만 더 달라고 했다. 별 이유는 없다, 그저 조금 더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식사 시간은 훨씬 오래 걸렸지만 남기지는 않았다. 고기도 조금 더 먹었다. 우라시마도 먹는데 내가 못 먹을 것도 없지.

-뭐든 한 번에 하려고 하면 당연히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잊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카센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센에 대한 정리하지 못한 마음과 죄책감과 사랑과 다른 여러 가지.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덩어리가 그 곳에서 베이고 잘려가며 만들어진 형태가 지금의 나이다.
그러니까 나를 천천히 바꾸어나가면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노력해서 과거에 조금 덜 얽매이는 나를 만들어나가고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쳐다보지만 말고 할 말이 있으면 해.
......
한참 침묵하고 있던 오오쿠리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 마디만을 남겼다.
시간이 많이 흘렀군, 네 죽은 고등어 같은 눈에서도 생기가 도는 걸 보니.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다.

-방에 결계를 쳤다. 사실 내 결계래봤자 혼마루에 있는 남사라면 누구든지 종잇장처럼 찢고 들어올 수 있다. 그러지 않는 것은 그들이 나를 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방에서 남은 도구를 몇 개 꺼내봤다. 자루에 피딱지가 엉겨붙은 조각칼이나 작은 집게, 재봉가위, 녹슨 커터칼 같은 것들. 보고 있으면 피부 밑이 뜨겁게 아픈 느낌이 든다. 망설임없이 찔러넣던 전이랑 다르게 그것들이 조금 멀게 느껴진다. 아픔이 삶에 달라붙어 있던 전이랑은 다르기에 그런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전처럼 자해를 도피의 수단으로 삼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로 좋다. 도망치는 방법이 꼭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근시인 마에다를 불렀다. 피가 묻은 도구들을 보고 인상을 찡그리더니 마에다는 물었다.
어디에 쓰신 겁니까?
여기랑, 여기랑. 여기. 여기. 티는 안나지?
그런 걸 여쭙는 게 아닙니다. 몸은 괜찮으세요?
옛날보다는 조금 덜 경직된 어조였다. 앞에 놓아둔 물건들을 집어드는 마에다에게 이제는 다 나았고, 거의 쓰지 않는 물건이니 몰래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은 쓰지 않으신다니 다행입니다만, 부디 이런 일을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안해. 이제는. 너희가 아팠던 것만큼 나도 아팠고,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으니까.
아픔이 당연한 것일 리가 없다. 일부러 그게 당연한 거니까, 하면서 현재의 평온을 애써 부정할 필요도 없다. 마에다의 손에 들린 채 익숙한 도구들은 내 방을 떠나갔다. 이제는 기껏해야 이빨이나 손톱 정도밖에 없다. 벽에 걸린 카센의 칼집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제는 따라가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가져온 거니까. 
미안해. 그런 용도로는 이제 쓰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만난다면 화내지 말아줘.

-주인님! 다녀왔어요!
모노요시가 기운차게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벚꽃잎을 하나 둘 날리고 있다. 모노요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공을 세우면 언제나 내게 자랑을 하러 오곤 했다.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과자를 쥐어주었다. 날리는 꽃잎이 더 늘어난 거 같다.
연도도 올랐어요, 이걸로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에요!
그러지 않아도,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고 기뻐지지만. 뭐, 검인 모노요시는 검으로서 싸우고 내게 공적을 가져다주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 충동적으로 모노요시의 머리를 다시, 이번에는 한참 쓰다듬어 보았다. 
고마워.
그 말 속의 의미는 어디까지 닿을까. 모노요시는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다가 웃었다.

-오래된 흉터들은 약간씩 희미해졌다. 아직도 몸 전체를 얼룩덜룩하게 만들고 있는 검붉은 자국들 중에 몇개는 제법 연해진 것도 있다. 바로 없어지지 않더라도 사라져간다면야. 그것만으로도 훨씬 나아져가고 있는 거겠지.

-그저 아프지 않은 지가 오래돼서 역치가 낮아진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그냥 무덤덤하게 대답하자 담당자는 웃었다.
인간으로서는 그게 정상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배에 칼을 쑤시는 쪽이 훨씬 비정상인걸요. 지금까지야 코우쨩에겐 그게 정상이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웬일로 제대로 된 말도 하는구나, 너.
실례네요. 코우쨩같이 재기불능으로 보이던 사람도 제대로 재활하고 있는데, 누구는 한번 잘못된 채로 끝까지 살아갈 줄 알았어요?
그건 그런가. 미안.
됐어요, 아. 그리고 나 사니와 복직할 거에요. 아마 코우쨩이 제대로 멀쩡하게 혼마루 꾸리고 나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죽으러 간다고 하는게 더 맞을 거에요. 내가 만든 블랙 혼마루로 갈 거니까. 아마 거기, 도검들이 나를 죽이고 나서야 다른 사니와가 들어갈 수 있을 거라서요.
갑자기, 왜?
자기가 지은 매듭은 자기밖에 못 푼다더라고요. 그냥 누가 꼴사납게 버둥거리는거 보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싶어서. 벌써 사표도 냈고 반년 뒤엔 수리될 거에요.

-싫고 무서운 사람이지만, 헤어지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게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리고 이거, 코우쨩의 옛 혼마루에 있던 도검남사 중 몇 체를 공양중인 신사...겸 혼마루에요. 나중에 연락해봐도 좋을지도.
뭐......?
나도 이거 고민했거든요, 코우쨩이 알게 되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을것 같긴 했지만, 사람이 폐인되는 꼴 보기는 싫어서 감춰뒀는데 지금은 괜찮겠죠. 나키기츠네랑 코우세츠 사몬지에게는 나쁜 감정이 없다고 했었죠?
나키기츠네는 나를 구해준 적이 있고, 코우세츠 사몬지는 혼마루 내에서 내가 당하는 일들에 대해 반대하며 나선 적이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아마 그들을 만나면 반가워할 것이다.
아, 마지막 한 자루가 문제려나.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거 알죠...? 재액에 너무 오염된 도검을 그대로 도해하면 본령에까지 영향이 가는 거. 그래서 그런 도검들은 따로 정화과정을 거친 뒤 도해하게 돼요. 그런 도검이 하나...더 있어요, 거기에는.
나한테 웬만하면 다 말할 건데 못하는 거 보니까 내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둘 중 하나겠네.
눈치 빨라졌네요.

-드디어 마주할 때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잡고 놓지 않는 미련과 두려움 중, 전자와는 이미 마주보고 있다. 후자는 이제서야 나를 따라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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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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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1:53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세에 다녀오는 날이다. 혼자 다녀오겠다고 말했는데도 다들 죽어도 안된다며 누구 하나를 데려가라고 말하길래 제비뽑기를 시켰다. 모노요시가 당첨됐다. 왠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건가, 행운인가.
담당자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기왕 올거면 한 번에 다 같이 진단해보게 블랙혼마루산 도검을 데려오지 그랬냐고 하는 걸 한대 쥐어박았다. 진짜 담당자 좀 안 바뀌나.
"아야...코우쨩, 폭력은 나쁜 거에요.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시끄러워. 아무튼 결과는 나중에 혼마루로 보내주고, 볼일은 끝났지?"
"에이, 그러지 말고요. 요즘 도검 받아간 적 없잖아요. 이번에는 제대로 별로 안 무서운 애로 준비했으니까."
음, 마에다랑 히라노가 좋아하려나. 그때도 이야기했었는데. 아무튼 그래서 하카타 토시로를 받게 되었다. 혹시 모노요시도 나랑 같이 있으면서 악영향을 받았을지 모르니까 검진을 부탁했다. 밖에서 하카타 토시로의 본체를 만지면서 모노요시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역시 매개체 하나만 있으면 추억? 악몽? 아무튼 과거가 밑바닥에서 피어오른다.
'내가 댁 칼침을 놔서 어따 쓰노, 댁이 우리 옛 주인도 아닌데 그래서 뭐가 우예된다꼬.'
하카타는 나를 해치지 않던 얼마 안되는 남사 중 하나였다. 딱히 따뜻하게 대해주지는 않았다. 치료와 정화를 부탁해왔고, 치료는 수리실의 힘을 빌어 겨우 해줬지만 정화는 한번에 되지 않자 노골적으로 실망하면서도 도움을 받은 대가는 꼭 치르겠다고 말했었다. 그 말대로, 나마즈오가 나를 거름 구덩이 속에 던져넣고 그대로 묻어버렸을 때 나를 찾아내 파내준 것도 하카타였다. 당연히 내가 받은 것은 그 하카타가 아니지만 안도감이 든다.

-모노요시는 멀쩡하다고 했다. 다행이다. 나같은 주인이랑 같이 있으면서 똑같이 이상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볼일을 마치고 나가려는 나를 담당자가 잠시 불러세웠다.
"연련 못한다고 했죠?"
"왜."
"여기 보기 싫은 도검 좀 적어놓고 가요. 연련상대 매칭 시스템에 입력해서 그 도검들이 없는 부대랑 매칭되게 해줄 테니까."
"오늘 뭐 잘못 먹었어?"
"담당자로서 줄 수 있는 당연한 특혜에요. 오히려 왜 이제서야 적용시켜주냐고 화내는 게 맞을 걸요. 사실 처음엔 상태가 좀 나아졌나 보고 싶어서 일부러 적용시키지 않았거든요."
"......"
"화 안 내네요."
아직 보고 싶지 않은 몇몇 남사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나중에 그 남사들이 무섭지 않아졌을 때는 그것도 적용시켜주는 것 같다.

-현세에 돌아올 때마다 필요한 물건을 사가는 게 관례가 됐다. 모노요시가 장바구니를 들어주고 있어서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사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나보다 키도 작고 힘도 없어 보이니까 신경쓰여서 그랬는데 알아챘나 보다. 도움이 되고 싶으니 뭐든 편하게 시켜달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뭔가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결국 필요한 만큼만 사게 되었다. 다른 때는 종종 충동구매도 하게 되는데.
모노요시는 돌아오는 길에 주인의 도움이 되고 있냐고 물었다. 당연한 일을 굳이 물어 확인하게 할 만큼 내가 불안하게 만든 걸까, 역시 좋은 주인 실격일지도.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표정이 조금 밝아진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나중에 이야기라도 나눠봐야 될 것 같다.

-돌아와서 검진 결과와 담당자와의 면담내역을 남사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연련 이야기를 듣고 남사들이 눈에 띄게 안도하는 것을 보니 역시 다른 혼마루의 도검들과 실력을 겨루고 스스로를 다듬는 것은 남사들에게도 중요한 일 같다. 그런걸 나 때문에 못하고 있을 수는 없지. 그리고 왠지 별 근거 없지만 지금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해보았다.
부대를 꾸려 연련장에 나가보았다. 정말로, 아직 많이 무서운 남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종종 옛날 일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이제 그 정도는 어떻게든 버틸 수가 있다. 3전 2승을 거두었다. 남사들이 한번 진 것을 신경쓰길래 반올림해서 전승이라고 말했더니 카슈가 그게 아니라고 핀잔을 줬다. 왠지 다들 의욕이 충만해 보인다. 그 생각을 뒷받침하듯 다음날 오전에 다들 모여 밥을 먹을 때 앞으로는 연도를 올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하세베가 말을 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것보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 훨씬 빨랐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니까.
주인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시합에서 패배하고 싶지 않습니다.
맞아맞아, 나도 동감.
지는 건 싫기도 한데, 혹시라도 우리 주인이 얕보일지도 모르잖아?
결국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오늘부터는 열심히 도장을 만들어야겠다.

-하카타를 잠시 방치해둔 것이 미안해서 현현 전에 서류를 봤다. 희귀 도검을 얻겠다고 마구 단도를 감행해 자원을 낭비하던 사니와에게 충고를 했다가 그대로 형제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수단으로, 고통스럽게 도해되어 자원으로 변하는 것을 봐야 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여러가지로 정신적 학대를 받은 것 같다.
아픈 이야기는 눈이 닿는 곳에도, 그렇지 않은 곳에도 언제나 가득하다. 현현 전에 아와타구치의 단도들을 불러 형제를 데려왔으니 따스하게 맞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카타는 현현되자마자 떨리는 눈으로 형제들을 바라보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달려가 안겼다. 어린아이가 큰 소리로 우는 모습을 본 것은 오랫만이다, 왠지 나까지 눈물이 날 것 같다.

-하카타는 언제나 자기 형제들이랑 같이 다니며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연도가 낮다 보니 출진은 같이 하지 못하지만 원정 정도는 같이 다닐 수 있겠지 싶어서 아와타구치의 모두를 원정부대로 편성했다. 느긋하게 소풍가는 느낌으로 다녀오라고 도시락이랑 후식을 쥐어주었다.

-같이 놀 친구가 늘어날 줄 알았는데.
너도 처음에는 저랬으니까.
아이젠은 제딴엔 심각한 표정으로 끄덕이면서 다들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왔을 땐 말도 안하고 아무 반응도 없는 인형같던 애가 이렇게 밝아졌으니까, 마에다랑 하카타도 그렇게 되어주지 않을까.

-밝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말수가 많아지고 언성도 높일 줄 알게 되긴 했지만 그게 우리 혼마루의 금화 잔고가 계기가 될 줄은 몰랐는데. 낭비하지 말고 적절히 쓰라고 야단맞았다.
자원은 많이 안 쓰는 편이라 쌓여있다 보니 그나마 잔소리는 덜 들은거 같다. 앞으론 조심하겠다고 말하자 오히려 자기가 놀란 얼굴을 하더니 화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화를 왜 내겠느냐고 말하자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작 날붙이가 건방지게 입을 놀린다고는 생각 안하나?
맞는 말인데 뭐, 전에 다른 남사를 데려오느라 좀 많이 쓰기도 했고, 나중에 필요한 일이 있을 테니까 아껴야 되는 것도 맞고.
......
전 혼마루의 사니와한테도 이렇게 말했다고 들었어.
니, 그거 사생활 침해다.
미안. 아무튼 네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잖아. 그때도, 지금도.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과소비에 대해 지적한 게 아닐까. 마치 이 정도면 화낼까? 하고 부모의 관대함을 시험해보는 어린애처럼. 나도 그 사니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고.

-제법 시끌벅적해졌지 않느냐. 우리같이 비뚤어진 것들도 많아지고, 애초에 그런걸 모르는 녀석들도 늘어나고.
그렇지, 이제 좀 다른 혼마루들처럼 보이려나?
그러려면 단도실도 여는게 좋지 않겠느냐.
정말 끈질기네. 내가 단도실을 열어야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봐.
카센 카네사다가 그립지 않느냐.
......
한숨이 터져나오는 것을 겨우 막고 말을 조심스럽게 골랐다.
잘 들어, 츠루마루. 나는 아무것도 아직 극복해낸 게 없어. 아직도 카센이 보고 싶고, 아직도 카센을 좋아해. 카센을 보게 되면 나는 너희의 좋은 주인으로 있을 자신이 없어.
그렇게나 사랑했느냐. 마음에 다른 것을 들이지 못할 정도로.
아직은 그래. 그런데 그렇지 않은 순간도 언젠가는 올 거 아냐? 그 때가 되면 나는 다른 사니와들처럼 단도도 하고, 너희가 데려오는 다른 도검을 무서워하지 않고 현현시킬 수도 있을 거고, 카센이 사무치게 그립지도 않아질거야. 아마 그게 옳은 일일 거야.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잊어버릴 때가 오는 것이 두려워, 지금 이 상태로 카센을 만나면 안돼.
......
잊을 준비를 하게 해줘.

-그 날 이후로 츠루마루가 나를 피한다. 나는 굳이 츠루마루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혹시 싸운게 아니냐고 다른 남사들이 걱정했지만 나와 츠루마루 모두 그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츠루마루는 기다리는 거다.
가끔은 옳은 말을 듣더라도 마음 한구석에 앙금이 남을 때가 있다.
가끔은 틀린 말임을 알더라도 부정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했던 말과 서로에게 들은 말을 곱씹고 있다.
츠루마루의 말은 옳다. 나의 말은 아마 틀리겠지.

-카슈가 저녁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들고 들어왔다. 종종 따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남사들은 술이든, 코코아든 과자든 아무튼 뭐든 가지고 들어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대체로 무거운 이야기였기에 그런 이야기를 술기운으로, 혹은 입안에 남는 단맛으로든 털어버리려는 생각들일 것이다. 카슈의 경우엔 주인이 잘 잤으면 좋겠다며 대화하고 싶을 때마다 따뜻한 우유를 가져와 내게 먹였다.
츠루마루에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앞으로 비겁자마루라고 불러버릴 것이다.
이 혼마루는 주인의 혼마루고, 우리는 모두 주인의 검이야. 주인의 뜻대로 하면 돼.
그렇지만.
단도실이 있어야만 정상적인 혼마루가 되는 건 아니야.
아니, 그건 실제로 정상적이지 않으니까.
주인이 마음속에 누구를 언제까지 담고 있더라도 괜찮으니까.
......
카슈가 나가고 누웠다. 눈을 감을 때까지 두시간이 넘게 흘렀다. 카슈도 기다려주고 있다.

-이대로여서는 안 되는 이유는, 카슈의 말대로 이 혼마루가 나의 혼마루이고 모두 나의 검이기 때문이다.
나를 구심점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세계는 내가 바뀌지 않는 한 미묘하게 뒤틀린 그대로이다. 나 혼자서라면 그대로도 상관없지만.
나는 나의 상냥한 검들의 주인으로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싶었다.

-기억이라는 건 정말 자기 마음대로다. 비겁하게도 싫은 건 멋대로 잊으려고 하고 좋은 것은 죽어도 잊으려고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죽어도 잊지 않겠다고 꼭 쥐고 있던 기억을 이렇게 잊으려 하고, 언젠가는 잊어버린 것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멋대로다.
나는 절대로, 죽어서 원혼이 되더라도 너와의 기억만은 절대 놓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는데. 잊어도 좋은지, 정말로 괜찮은지.
나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으니까, 이 이상 너를 잊어버리는 게 싫다, 놓고 싶지 않다. 너를 잊어버리면 다시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네가 나에게 줬던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도해실에 있던 칼집을 가져와서 방에 두었다. 칼집을 가져오는 길에 츠루마루와 마주쳤다. 츠루마루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엇다.

-며칠 동안 혼마루의 일을 하세베에게 맡기고 방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와카를 읽어보았고, 서예도구를 가져다가 붓글씨를 써봤다.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그런 먹물 향 나는 추억 대신 피냄새만을 한가득 묻히고 살았었지. 어찌됐든 카센을 기억나게 하는 일을 하나씩 해보았다.
나중엔 붓을 내던지고 혼자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중에 방을 더럽혔다고 솔직히 근시였던 니혼고에게 사과하고 청소를 도와달라고 부탁해 청소를 했다.

-생필품을 주문하는 날, 나는 혼자 모란 모종을 주문했다.

-오랫만에 꿈을 꾸었다. 꽃이 가득 핀. 이 곳이 아닌 다른 혼마루. 나무밑에서 눈을 떴다. 언제나 보던 모란 꽃이 가득 펴 있던 벚나무의 가지는 앙상했다.
자고 있던 내 위로 꽃잎이 한가득 덮여 있었다. 색색의 꽃들이 모란 꽃잎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짙은 꽃향기 속에서, 꿈 속에서 소리를 내 울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던 내 뒤통수에 손길이 닿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의 주인을 확인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우는 동안 손길은 그저 따뜻하고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곧 나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리운 목소리는 노이즈가 낀 것처럼 잘 들리지 않았다.
꿈을 깼다. 어슴푸레한 새벽, 젖은 베개를 베고 누워있었다.

-도해실 옆에 모란을 심었다.

-잊지 못하면 망집이 되는 거다, 어린 녀석아.
알아.
웬 일로 솔직하구나.
잊겠다고 말했잖아.
츠루마루는 손을 뻗어선 거칠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법 길어진 머리카락이 마구 엉켰다. 그걸 손가락으로 빗어내고 있는 동안 츠루마루가 말했다.
망집도, 집착도. 그 대상에게는 곤란한 일이지 않겠느냐, 이래봬도 그 때문에 험한 일도 제법 당했으니.
무덤에 들어갔다고 했었지.
그래. 그래서 네가 무덤에 들어가진 않았으면 좋겠구나.
......
입을 다물면 어색하니까 뭐라도 말해보거라.
잊는 거, 어렵네.
......못 잊겠다고 하지는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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