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련을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사니와님?
대롱여우의 가벼운 권유에도 나는 고민했다. 우리 혼마루의 남사들은 다른 도검에 대한 트라우마는 적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다만 내가 거기 참관해야 한다고 하면 조금 다르다. 아무튼, 시도 자체는 해봐도 좋을지 모르겠다.
-연련을 해보기로 했다는 말에 남사들이 다들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시시오였다.
다 좋지만, 주인은 아직 겁이 많으니까 무리 안해도 괜찮아.
다른 좋은 말을 두고 하필 겁이 많다니. 한숨이 나오는 걸 참고 있자니 그 말에 우라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의 하치스카도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그런 도검들의 생각을 대변하듯 입을 연 것은 언제나처럼 하세베였다.
시시오의 말이 맞습니다. 아직 주군께서는 모든 종류의 도검남사들에 대해 평범하게 대하실 수 없지 않습니까?
하세베는...생각보다도 훨씬 날카롭다. 설득의 말을 한참 골라서 겨우 피하기만 하면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하자 듣고만 있던 츠루마루가 경악하며 제대로 된 소리를 할 수 있었느냐고 또 놀렸다.
-발상은 좋지만, 웬만한 사니와라면 성능이 좋은 대태도 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치를 가진 호타루마루를 거의 최고연도까지 키워 내보낼 거라는 걸 잊었다.
나는, 아마 저렇 게 잘 리고 베여 죽을 뻔하고 아프고 아프고 아파서 아
휘두른다
앞에 카센이 있는데도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한테 화내도 좋으니까 제발 돌려주세요. 나한테는 뭐든 해도 좋으니까, 팔을 잘라도 좋고 다리를 토막쳐도 좋아요. 눈을 터뜨려버려도 좋고 코를 베어내도 귀를 갈기갈기 찢어도 좋아요. 뱃속에 있는 것도 다 마음대로 하세요, 끄집어내도 되고 잘라도 돼요.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요, 어떻게 해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카센을 돌려주세요.
-눈을 뜨자 낯익은 풍경이었다. 카슈가 울며 나를 끌어안고 매달렸다. 연련장에서 기절한 걸 남사들이 데리고 왔다고 한다. 사니와의 참관 없이 연련이 가능한지 나 대신 남사들이 문의를 넣었다고 했다. 카슈를 달래는 대신 가만히 안겨있었다. 나는 분명 그 플래시백을 더듬어 정말로 그리운 얼굴을 잠시나마 봤던 것 같다. 가장 소중하고 그리운 것을 잃을 뻔한 수백번의 상황 중 하나를, 이런 식으로나마 다시 한번 그를 보고 싶었다.
-조금 아쉽다. 당연한 일이지만 남사들 전원이 연련을 거부했다. 역시 사니와가 동석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양이었다. 슬쩍 가장 말을 잘 들어줄 것 같이 보이는 아이젠에게 다가가 구슬러보았지만 원정도 출진도 원하는 대로 해주겠지만 그건 안되겠다고 딱 잘라 말하니 나도 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주인이 힘들었다는 건 들었어.
그렇지만.
그러면 할 필요없어!
너 꽤나 단호해졌구나.
주인을 지키기 위해 애염명왕의 가호를 두른 몸이니까, 헤헤.
많이 밝아진 작은 아이를 슬쩍 끌어안고 다독였다. 음...하기 싫다는 일은 억지로 시키면 안되는 거겠지, 역시.
-혼마루의 분위기가 다소 침울해졌다. 역시 나 때문이겠지. 미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있다.
그러던 중 시기적절하다고 해야 할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정부에서 연도가 낮은 도검들의 육성을 위한 기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가장 나중에 혼마루에 와서 아직 연도가 낮은 고토가 눈을 빛내면서 열심히 옆에서 나를 잡아 흔들고 있다.
가자, 가자고 대장! 여기서면 나도 금방 다른 녀석들만큼 연도도 높아질 거고, 어쩌면 키도...
연도가 높아진다고 키가 커지나...뭐, 많이 다치지 않는 지역이라면 괜찮겠지...?
아무튼 그렇게 되어 최근에 혼마루에 오게 된 단도와 와키자시들을 중심으로 부대를 편성해 보냈다. 초반 멤버들이 갈 곳이 없어 심심해하는거 같아 은근히 연련 이야기를 꺼내봤다가 츠루마루에게 야단맞았다. 눈가리개를 하면 참관할 수 있다고 나름 생각한 대로 말해봤지만 참관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는 대답만 돌아왔다.
-다행히 그리 위험한 지역은 아닌거 같다. 부상을 입고 돌아오는 남사도 까진 상처나 날에 살짝 스친 정도가 전부이니까. 그럴때마다 바로바로 수리한 뒤 쉬고 나서야 재출진하게 했다. 다른 사니와들이라면 연도가 낮은 도검들로 여러 부대를 편성해 돌아가며 출진하게 할 테지만 우리 혼마루,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
다만 쉬게 된 도검들이 더 싸울수 있다며 의욕을 내비쳐오는게 문제다. 마에다와 히라노까지도 주군에게 더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나서는데 뭐라고 해줘야 할지.
-남사들이 웬 말을 하나 끌고왔다. 저번 오사카성에서 받은 것같이 영 시원찮고 체구도 작은 말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귀여운거 같다. 마구간 옆에 만들어둔 작은 울타리 안에 방목하기로 했다.
-현계는 겨울을 맞았다고 하기에 계절을 겨울로 바꿔보았다. 좋은 기억이 없는 계절이지만 기억속에 남은 핏자국투성이의 흰 눈 쌓인 땅 대신 아침 눈당번이 열심히 쓸어낸 자국이 남은 땅과 한쪽으로 쓸어 모아둔 눈더미들이 보이는 것은 나쁘지 않다.
눈더미 옆에는 그럴듯하게 만든 작은 눈사람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오늘 눈당번은 시시오였지. 눈사람을 세어보니까 남사들 숫자보다 한 개가 많다. 몇번이나 다시 세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키 순서대로 늘어서있는 눈사람 중에, 미카즈키 옆에 있는 특징없이 평범한 눈사람이 누구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츠루마루와 하세베가 눈으로 커다랗게 집을 만들었다. 단도들이 눈집 안으로 들어가 옹기종기 모여 떠들썩하게 놀고 있었다. 마에다랑 히라노는 제법 잘 웃게 됐다. 골목대장같은 고토 덕분일까. 한쪽에서는 오오쿠리카라가 또 쌓인 눈을 쓸어내고 있었다. 처마에 고드름이 한가득 달려있는 것을 보고 미카즈키가 즐거워하며 손을 내밀어 큰 고드름 하나를 꺾어내 입에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입에 넣기 직전에 겨우 말렸다.
날이 추우니 방 안에 화로를 놓고 고구마를 구워 다 같이 나눠먹었다.
-출진장소는 샛길이 많아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는 옆길로 새기 일쑤라고 남사들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굳이 적 대장을 칠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더니 카슈가 눈을 빛내면서 우리 혼마루엔 창이 없으니 이참에 삼명창 중 하나라는 니혼고를 꼭 잡아오겠다고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우리 혼마루의 남사들은 새 도검을 얻을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눈에 불을 켜는거 같다. 모든 도검들이 다 모노요시 같은 케이스라고 생각하는 걸까. 실제로 내가 있던 혼마루는 니혼고가 데이터베이스에 추가되기 전이었으니 니혼고를 실제로 본 적도, 니혼고에게 다친 적도 없긴 하지만.
-그 뒤로는 그럭저럭, 다른 때와 같았다. 어떤 검은 부대장의 손에 들려와 도해실에 놓여 순서대로 도해되고, 어떤 검은 아예 혼마루로 가지고 오지도 않는다. 니혼고를 굳이 가져올 필요는 없다고 말했는데도 다들 너무 열심이다.
돌아오면서 춥다고 투덜거리는 카슈의 코끝이 빨갛다. 다시 계절을 바꿔야 할까 하고 생각했는데 겨울이 신기한지 마냥 눈밭을 뛰어노는 우라시마를 보고 잠시만 더 눈과 얼음을 즐기기로 했다.
-눈이 그치지 않고 내리는 늦은 오후, 남사들이 돌아왔다. 커다란 털이 달린 막대기로 눈을 치우면서. 그게 창이란 건 남사들 모두가 안에 들어온 뒤에야 알았다. 어떻게든 니혼고를 구해온 집념이 고맙고 대단하다.
니혼고는 현현시키자마자 정삼품을 가지고 눈이나 치우는 바보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니혼고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진 않는다. 술을 마시고 좋은 꼴을 본 적이 있어야지. 그래서 가끔 남사들이 저녁에 같이 마시자고 찾아올 때도 이야기에 맞장구 쳐주며 한두잔, 나머지는 언제나 안주로 때우고 있었기에 찾아오는 남사들은 대부분 안주거리를 잔뜩 챙겨오곤 했었다.
대작상대가 되어줄 만한 다른 남사들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아무튼 내가 술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언제나처럼 신참을 반기기 위해 주기적으로 신청하는 필요물품에 술을 종류별로 신청해보았다.
-의외로 우리 혼마루의 주당은 단도들이었다. 특히 아이젠의 주량이 놀라웠다. 역시 축제에선 술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걸까.
손사래를 치며 연신 잔을 거절하는 시시오에게 물어보니 주사가 걱정돼서 그렇다며 멋적게 웃었다. 뭘 걱정하는지 알 거 같아서 대신 쥬스캔을 갖다 쥐어주었다. 니혼고의 옆에서는 고토와 츠루마루가 신나게 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이미 뻗어버린 오오쿠리카라가 누워있고 그 옆에선 카슈가 오오쿠리카라의 배를 베고 누워있었다. 강 밑의 아이라고 그런것도 잘 안다고 말한 녀석이 몇 잔이나 마셨다고.
조심스레 자리를 피하려다가 츠루마루에게 붙들렸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과도한 음주를 삼가라고 하세베에게 꾸중을 들었다. 옆에서는 마에다가 츠루마루에게 주군에게 술을 너무 많이 권하면 안된다고 타이르고 있었다.
둘만 남았을때 츠루마루를 노려보자 장난스럽게 웃으며 너는 원래 술이라도 먹여야 덜 갑갑해지는 타입이라며 얼버무렸다. 대체 내가 술을 마시면 무슨 소리를 하길래. 숙취에 시달리고 있으니 미카즈키가 잔이 세 개 놓인 쟁반을 가져와 나와 츠루마루에게 따뜻한 꿀물을 건넸다. 왜 세 개지,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미카즈키가 남은 잔을 집어들고는 달고 따뜻해서 좋구나. 라고 웃으며 꿀물을 호록거렸다.
-오늘 밭일 당번인 하치스카가 숙취로 누워있다기에 대신 니혼고를 당번으로 세웠다. 나중에 일어나면 코테츠 진품의 품위는 어디갔냐고 놀려야지. 정작 우라시마는 팔팔하구만.
니혼고가 적재적소라는 말을 모르느냐고 약간 어이없어하길래 정삼품에 삼명창정도 되면 밭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느냐고 대답해보았다. 영 비리비리한 주인이 말은 그나마 조금 한다면서 니혼고는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세게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마구 흐트러졌다.
과연 삼명창이라는 이름이 안 아깝게 일도 잘한다고 말했더니 술병을 기울이던 니혼고는 영 복잡한 표정으로 애매하게 웃어보였다.
-다른 삼명창들은 없냐길래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재생속도보다 빠르게 찔러대던 오테기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나, 아니면 톤보키리에게 당했던 말로 하기 좀 힘든 이야기를 해야 되나. 좀 있다가 데려올 테니까 그동안 우리 혼마루의 이름높은 창으로 있어달라고만 말했다. 뭐, 언젠가는 어떻게든...데려오지 않을까.
-하세베랑 니혼고는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일단 니혼고한테 하세베를 부러뜨리면 안된다고 말해두는 게 좋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