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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1:14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거 쓸 땐 시시오 누에 그냥 가죽이고 진검필살 연출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줄 알았는데 하나마루 봐도 살아있는 거 같더라고요...그 전에 쓴 거니까 용서해주시면 좋겠습니다ㅠㅠ)




-조금은 시끌벅적해졌다. 카슈, 오오쿠리카라, 츠루마루, 하세베, 시시오, 사요, 우라시마. 조금씩 이 혼마루는 혼마루로서의 기능을 갖춰가고 있다. 아침에는 다들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한 뒤 가볍게 아침체조를 하고 아침당번이(보통은 하세베+1명)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각자 밭일을 한다. 최근에는 실적에 대한 보상으로 말을 받아 빈 마굿간에 넣어두었기에 말도 돌봐야 한다. 밭에서 작물을 따고 남은 줄기나 잎을 주곤 했다.아침을 먹고 나면 도검들끼리 알아서 출진할 인원과 가까운 곳에 원정을 갈 인원을 나누어 움직이고, 나는 카슈랑 같이 남는다. 카슈는 자기도 싸우고 싶다고 아쉬워하지만 나랑 있는 게 더 좋다고 납득해준 덕분에 말없이 남아서는 나를 돌봐준다. 이럴 때는 시설의 방에서 지내던 시절이 떠오른다. 카슈랑 같이 도검들이 쓸 도장을 만들고 가볍게 청소를 하거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도검들이 돌아온다. 다친 인원이 있는지 확인하고 치료해주고 나면 시간이 남는다. 그 동안은 다들 자유롭게 하고싶은 일을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누군가가 술이나 차를 들고 나를 찾아오곤 한다. 그럴때는 대화를 나누고, 아닐 때는 정부에 쓸 보고서를 쓴다. 다른 사니와들과 달리 나는 출진이나 실적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도검들의 회복상태를 더 길게 썼다. 본업이 그쪽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면 잠에 든다. 요즘은 전보다는 일찍 잠들수 있게 됐다. 누워서 한참을, 어둠과 싸우면서 지금 같이 있는 도검들을 생각하고, 그들이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안도하고 나면 천천히 잠이 찾아온다. 대충 한시간 정도 걸리면 잠이 드니까, 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이다.

-모두는 제법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덜 고쳐진 부분들은 보이곤 한다. 오오쿠리카라는 아직도 수리실에 들어가기 전에 식은땀을 흘린다. 츠루마루에게서는 적에게 입은 상처가 아닌 다른 사소한 상흔들이 보인다. 시시오는 아직도 누가 다가오기만 하면 발도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기 전에 일단 이름을 불러 안심을 시켜야 한다. 우라시마는 아직 고기를 먹지 못한다. 그것들이 보이는 이유는, 내가 아직 그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일수록 잘 알 수 있다.

-주인, 내가 말하는 것도 뭣하지만 이런 도검들로 정말 괜찮은가? 
츠루마루의 의견에는 사실 동의한다. 병자들끼리 모여서 멀쩡한 척 하고 있다는 느낌은 언제나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도실에 못박아 고정시킨 판자를 뜯을 생각은 없다.
츠루마루.
응?
츠루마루 100명이 모여서 99명이 빨간 옷을 입고 있으면 하얀 옷을 입은 한 명이 이상해보일 거 아냐.
츠루마루의 웃음에 나도 피식 따라 웃었다. 여기에 아무 해입은적 없이 마냥 올곧기만 한 도검이 들어오면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출진을 다녀오는 검들은 종종 현현되지 않은 검을 한두개씩 들고 돌아오곤 한다. 그것이 창고를 채워간다. 도해는 하루 두체씩.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정해진 절차를 밟아 검에 깃든 분령이 무사히 본령으로 돌아가도록 기도한다. 사무적으로 하루에 몇십자루씩도 해치울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가끔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도검이 있을 때는 하루에 한체. 그것만으로도 몸이 떨리기 때문이다.

-도해실에는 언제나 향을 피운다. 그것만은 다른 도검들에게 시키지 않았다. 혼자 향을 피우고, 한쪽 벽에 걸린 빈 칼집을 한참이나 바라본 뒤에 도해실을 나간다. 하루 일과에서 빼놓지 못하는 것중 하나였다.

-카슈는 언제나 내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 우리는 전보다 오히려 대화가 줄었다. 그저 가만히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정도다. 긴 말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 날은 드물게 카슈가 물었다. 주인은 행복하냐고. 
네가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할 텐데. 
카슈는 행복하다고 웃었다. 손에는 얼마 전에 새로운 네일아트를 연습해서 발라준 빨간색 프렌치 네일이 까지지도 않고 말끔히 발려 있었다.
잠은 이제 잘 자?
이제는 인형...솜이 없어도 괜찮아. 그런데 있지, 주인이 없으면 안될거 같아.
내가 인형 대신인가.
그런 걸로는 대신할 수 없는 정말 소중한 사람인걸. 주인, 너무 좋아해.

-지급품 중에 낯선 물건을 보고 도검들이 눈을 빛냈다. 이게 뭐냐고 어린아이처럼 선향불꽃을 들고 갸웃거리는 츠루마루를 보고 도검들에게 각자 하나씩 쥐어준뒤 마당으로 데리고 나와 불을 붙여주었다. 놀라면서 신기해하는 도검들을 보고 여름에는 이게 없으면 안된다고 설명해주었다. 계절은 봄이지만. 츠루마루가 신나게 어둠속에서 불꽃을 휘두르면서 이게 있으니 이케다야를 신나게 뛰어다닐 수도 있을 거 같구나, 라고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건 참아줬으면 한다.

-이쯤이면 당연히 또 싫은 기억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 애는 축제를 좋아한다고 해서 불꽃을 선물해줬었다. 그 불꽃이 터진 장소는 딱히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 회복속도도 더뎌지기에 일주일을 꼬박 누워만 있었다. 즐거운 일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 때를 기억해버린다. 무엇을 해도 내게는 그 때의 그림자가 눌어붙어 있다. 상대에 대한 호의로도, 새로운 애정으로도 떨궈내지를 못하고 나를 잡아끌어 버린다. 모두에게 나는, 진실하지 못한 거짓말쟁이. 위선자. 상대에게 호의를 주고 호의를 바라고, 무해함을 보여주며 그 무해함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한 위선이다. 진실된 마음으로 대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카슈가 한쪽에서 선향불꽃을 가지고 놀다가 나를 보고 불꽃을 흔들어보이더니 불꽃으로 하트모양을 그려보였다. 어둠 속에서 죽 그어지는 눈부신 궤적은 내게 주어지기는 너무 이쁘고 순수한 것이었다.

-현재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는 화이트 혼마루이다. 도검들은 매일 출진을 가고 나는 그 성과를 매일 보고해 올리고 있다. 담당자는 슬슬 새 도검을 받으러 현세로 나오라고 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이 상태가 좋다. 평온하고, 익숙해진 도검들과 같이 있으면 외롭지도 않거니와 괴롭지도 않다. 도검들도 많이 편해진 눈치다.

-그렇다, 그게 놀라운 일이었다. 도검들이 두려웠던 나도, 인간이 싫고 무서웠던 도검들도 서로를 많이 용인해가고 있다. 이 혼마루의 몇 없는 도검들은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지만 나를 주인으로 인정해주고, 다른 혼마루에서처럼 출진과 내번을 담당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괜찮다, 나는 그들이 이렇게 지낼수 있는 것이 만족스럽다.

-고무적인 결과로 시시오는 이제 누가 다가온다고 무턱대고 발도해 찔러 들어오지는 않게 됐다. 여전히 조금 흠칫거리기는 하지만 제법 자주 웃게 됐고 먼저 다른 도검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일을 할 수도 있게 됐다. 시시오는 이 혼마루가 좋다고 몇번이나 말했고, 나에게 고맙다고도 말했다. 그럴필요 없다. 나는...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이제는 시시오를 봐도 누에가 뱃가죽 사이로 주둥이를 처넣고 살과 내장을 한입 가득 파먹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쓰다듬어줄 수 있고, 장난도 칠 수 있었다. 시시오는 내가 뒤에서 갑자기 덥석 붙잡고 간지럼을 태워도 주먹하나 날리지 않고 그저 간지럽다고 깔깔거리며 버둥거릴 뿐이다. 그런 시시오가 유일하게 놀란 순간은, 누에의 모피를 내가 들어올려 먼지가 많이 묻었으니 빨아야겠다고 말했을 때 뿐이다.

-슬슬 담당자 말마따나 이 혼마루의 업무에 충실할 때도 됐다. 현계로 나가봐야겠다. 그 전에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현재 받아올 수 있는 도검에 대해 문의했다. 담당자는 반색을 하며 메일을 보내왔다. 혼자서 읽기엔 조금 무서운 일이기에 내가 당한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카슈랑 츠루마루를 옆에 두고 같이 메일을 읽는다.

-가장 시급한 정화와 정신적 치유를 요하는 도검으로 표시돼 있는 것은 하치스카 코테츠였다. 음, 우라시마가 좋아할지도. 그 생각이 가장 먼저 스치고 지나갔다. 카슈가 괜찮느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말하자 츠루마루가 내 옷처럼 새하얀 얼굴을 하고선 무슨 소리냐, 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치스카는 나를 벤거 말고는 별로 한 일이 없었는데. 그 때문에 내 영력이 자가치료 위주로 굳어진 감은 있지만.
츠루마루, 카슈. 괜찮아.
거짓말 잘해서 못믿어, 주인은.
그래그래, 신선조의 꼬마 말이 맞다. 너는 워낙 감추고 없는 척하기를 잘하니까.
하지만 정말인데. 베이는 정도라면 이제 익숙하고, 하치스카는 예리하니까 베인 자리도 금방 잘 붙어.
카슈는 화를 내며 내 볼을 꼬집었고 츠루마루는 말리지 않았다.

-"지금 보관중인 하치스카 코테츠요?"
"그래, 제일 상태가 안좋다며. 난 원래 맛없는 것부터 먹어치우는 타입이야."
"그런가...하지만 곤란할 텐데, 메일 안읽었어요? 그 하치스카는..."
메일을 읽기야 읽었다. 그 하치스카는 우라시마를 원한 사니와에 의해 전장에 몇번이나 내몰려야 했다. 깊은 중상이 아니고서야 치료를 해주지 않는 사니와에 의해 언제나 피를 흘리며 부대의 선두에 서서 케비이시의 창에 찔리고 상처입고, 그러기를 몇백번을 반복해 겨우 우라시마를 데려온 하치스카를 보고 사니와는 웃으며 이 시간을 진짜 기다렸다고, 겨우 데려온 사랑하는 동생의 손에 찔리는 너를 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우라시마에게 하치스카를 찌르도록 명령했다고 했다. 그뒤 언령에 제압당한 우라시마는 그 언령에 저항하면서도 며칠, 몇십일이나 하치스카를 찔러댔고 결국 끝까지 저항하다 견디지 못하고 하치스카의 앞에서 부러졌다. 언령에 불복한 대가로.
그런 하치스카가 우라시마를 보면 뭐라고 할까, 불안했다. 그렇지만 내 의무이다. 우라시마가 형제를 보고 싶어하는 것도 이루어주고 싶었고, 하치스카가 본래라면 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우라시마를 두려워하거나 한다면 그것또한 치유해주고 싶다.
"그건 됐으니까 내놔."
"와, 모르는 사이 훌륭하게 M이 돼가고 있네요."

-하치스카를 바로 현현시킬 수는 없었다. 괜찮다고 거짓말은 했지만 본능적인 공포가 영력이 제대로 작용하는 것을 막는다. 대신 본체 모습인 하치스카에 손을 얹었다. 이번엔 내 과거 같은거 안 읽히도록 최대한 마음을 감추고서 혹시라도 우라시마에 대해 미움이 있는지를 물었다. 검이 울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우라시마와 나는 코테츠다. 진품의 긍지를 가진 형제이다, 어찌 그 아이를 미워하겠는가, 요사스러운 말에 묶여 그 아이가 나를 얼마나 찌르더라도 미워하지 않는다. 그 아이가 나 때문에 부러진 것이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다.
다행이다, 우라시마랑 만나게 해도 문제없을거 같았다. 나는 하치스카에게 남은 재액을 정화한 뒤 조용히 방을 나왔다.

-우라시마를 불러 하치스카를 데려왔다고 말했다. 기뻐할줄 알았는데 우라시마는 오히려 바들거리고 있었다. 당황한 내가 손을 뻗으려 하자 무릎을 꿇는다. 죄송해요, 주인님, 제발,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형만은 제발, 잘못했어요, 더 이상, 살려주세요, 형 대신에 차라리 나를...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본인의 입으로 듣고 싶지 않은 사실확인이었다. 우라시마 앞에 쪼그려앉아서 우라시마를 안아주었다. 그러지 않아, 나는 네가 형과 행복하게 있었으면 해. 그래서 데려온 거야. 나가소네 코테츠도, 하치스카 코테츠도 꼭 네 옆으로 데려다줄께, 카메키치한테도 손대지 않아. 그러니까 잊어버려도 괜찮아.

-주, 주인님.
응. 괜찮아.
......흑.
울어도 돼. 그만큼 힘들었는데 어떻게 울지 않겠어.
한참 우라시마를 다독였다. 겨우 울음을 그친 우라시마는 형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솔직히는 말할수 없으니까 정화를 마치면 바로 현현시켜주겠다고 했다. 만나고 싶어했으니까, 그러니까 만나서...전에는 못했던 말도 하고, 같이 있고 싶어했으니까 같이 있고 그렇게 있었으면 좋겠다.
형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싶어.
아마 지금 혼마루에 있는 네 형은 그걸 원하진 않을 거야.
그래도, 나는 형한테 미안하다고, 아무리 몰랐다고 해도, 내가 형을...
응, 그래. 꼭 하치스카랑 만나게 해줄 테니까 둘이서 이야기하는거야. 알았지?

-남은 일은 내가 조금 더 정신줄을 다잡는거 뿐이다. 조금 찔린것쯤, 하루이틀도 아니니까, 하치스카만 그랬던 것도 아니니까 별일 아니니까, 조금만 있으면 바로 익숙해질 거다. 뜯어먹혔던 것도 이제 크게 힘들지 않잖아, 별거 아니니까 빨리 우라시마에게 하치스카를 만나게 해줘야지.

-깊게, 조금만 더 깊게. 별거 아니잖아, 금방 아물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데. 괜찮다. 여기서 조금만 더 깊게, 됐다. 아프고,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도 딱 이정도만 찔렸다. 그대로 가만히 보고 있는 동안에 천천히 갈라진 살이 붙고 피부가 아문다. 그때만큼이나 별거 아니다, 이정도로는 난도질해봤자 생명에 실오라기만큼도 위협이 가지 않는다. 나는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 이 정도가 아니면 오히려 안도하지 못한다. 그 때처럼 아프고, 그 때처럼 낫는다는 확신이 없으면 무서워서 마주할 수가 없다.
다시 하치스카 코테츠를 생각해봤다. 이정도로 난도질당한 거랑, 단도실에서 배가 갈린 정도밖에 없다. 하나도 무섭지 않다. 그나저나 내 배, 왠지 운이 없다. 다른 사람이 주인이었다면 칼빵 한 번 안맞았겠지......아하하.
됐으니까 하치스카를 데리러 가자.

-우라시마를 데리고 하치스카가 있는 방에 들어왔다. 우라시마는 피묻은 옷을 보고 놀라서는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지만 일단 입을 다물게 했다, 다른 도검들이 알면 시끄러우니까. 그리고는 하치스카의 본체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아무리 내가 글러먹은 사니와라고 해도 도검의 현현은 기본중의 기본. 익숙한 금색 갑옷과 길다란 연보라색의 머리카락이 보인다. 하치스카는 약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다가 곧 옆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우라시마에게 거의 들이받히다시피 안겼다.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하치스카를 꼭 안고서는 우라시마가 서럽게도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형...정말,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그 울음에 하치스카는 조용히 우라시마를 마주 안아주었다.
이런, 진품 코테츠가 이게 무슨 기품없는 모습이니, 우라시마.
으흑, 끅, 혀, 형....
괜찮으니 그만 울거라. 아...이렇게나 눈물범벅이 되어서는. 이걸 어째야 하지.
조용히 하치스카에게 휴대용 티슈를 건네주고는 방을 나왔다.

-피범벅이 된 옷을 일단 갈아입은뒤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에 태워버렸다, 음, 이제 남들 몰래 하나 더 주문하면 증거인멸은 완성이다.
아무튼 새로 데려온 도검도 나름대로 케어 성공인거 같다. 트라우마가 지워지고 흉터가 낫기까지는 얼마나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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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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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1:06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의 행복도, 그들의 행복도 땅에 묻힌지 오래다. 여기 있는 것은 새로이 찾아낸 작은, 정말 조그만 행복. 잃었던 것과는 다른 것이기에 이것은 이것대로 소중하고 덧없고 허무하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시시오가 오오쿠리카라랑 싸웠다. 오오쿠리카라가 시시오 앞에서 손을 들어올린 것을 시시오가 공격으로 오해하고 발도했다고 했다. 기습으로 중상을 입은 오오쿠리카라도 화가 나서 마주 발도해 진검필살을 썼고 결국 둘다 중상이다. 정말로 오랫만에 수리실을 썼다. 그리고 진짜 오랫만에 피를 보고 기절했다.나중에 왜 그랬냐고 시시오를 야단치자 무서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오쿠리카라, 무섭고...아무말도 안하고, 손부터 들어올려서 때리려는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먼저 베어버리면 공격받지 않고 아프지도 않잖아. 그렇게 불만스러워하는 시시오를 보고 느꼈다. 훌륭한 병자 하나가 더 들어왔다.

-시시오에게 아무도 너를 때리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고 오오쿠리카라에게는 사과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본체는 내가 맡아두겠다고 했다. 싫어하는 시시오를 달래 본체를 맡아둔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오오쿠리카라를 찾아가는 시시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뒤 머리에 혹을 단 시시오가 속였어, 주인! 때리잖아! 하고 울면서 돌아왔다. 그건 때린게 아니라 혼난거지, 잘못한 건 너잖아. 빼액 하고 우는 시시오를 달래느라 애를 먹는 나를 보고는 하세베가 다가오더니 새 식구가 늘었으니 저녁은 닭요리가 어떻겠습니까?라는 말로 바로 울음을 그치게 해주었다.

-오오쿠리카라를 찾아갔다. 잘 수리됐는지 확인한 뒤 시시오랑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복슬해 보이는 털가죽을 쓰다듬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거라면 큰 곰인형이라도 사줄텐데. 슬쩍 물어보니까 그리 싫진 않은거 같아서 나중에 같이 곰인형이라도 사러 가자고 했다.그러고 보니 시시오의 그것은 그저 털가죽이다, 그 누에 원래는 살아있는게 맞는 걸까, 아니면 그냥 가죽이 맞는 걸까. 어느 쪽이든 나는 뜯어먹혔지만.

-자다가 추워서 깼다. 그 혼마루에서 구출된 뒤 유독 추위를 잘 타게 된 것은 그곳이 언제나 겨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서 처음본 아이는 새로운 사니와라고 나를 반기며 겨울은 추워서 싫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혼마루를 정화한 뒤에는 봄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정화하지 못했으니까, 약속은 지킬수 없었다. 겨울처럼 그 혼마루도 차가웠고, 그 아이처럼 모두가 따뜻하지는 않았다. 말보다는 검이 돌아올 때가 많았고 차가운 땅에 심심하면 피를, 나의 일부를 흩뿌려야 했다.

-생존본능은 간사한 것이다. 혼마루를 정화하기 위한 영력은 살아남기 위한 자체치유로 돌려졌다. 단도실에서 그 애를 앞에 두고 그 애의 형이 내 배를 가르며 한번 여길 정화해보지 그러느냐, 라고 웃었던 때 나는 내장과 피로 더러워진 바닥에 손을 짚고 단도실을 정화하려고 했다. 손바닥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화하려고 내뿜은 영력은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내 갈라진 뱃가죽을 도로 붙이고 헤집히고 조각난 내장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그 애는 슬픈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좋은 기억 중에 그나마 조금 괜찮은 기억이었다. 그 애는 형이 나간 뒤를 쫓으려다가 나를 부축해 일으켜선 별채까지 데려다주었다. 여기 있으면 다른 애들이 공격할지도 몰라. 별채에서 쉬어. 라고 다정한 목소리까지 곁들여서. 작은 친절은 쓸데없이 크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것을 잊지 않으면 다가오는 다른 모멸과 아픔에 독으로 바뀐다. 나는 그 애의 작은 호의까지 잊어야했다. 그 애는 상냥했는데, 라고 괜히 아픔을 늘릴 필요는 없다.

-사실 지금도 영력으로 다른 일은 잘 못한다. 그나마 나를 치유하는 거랑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도검들을 고쳐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나는 거기서 내 필요까지도 잃어버렸다. 지금 여기가 그나마 쓸모없는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 혼마루의 우라시마 코테츠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도해됐어요. 그렇게 말하는 담당자에게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거라곤 생각했지만. 다시 볼 수는 없구나. 미안해, 우라시마. 봄을 주고 싶었는데. 나는 이제서야 겨우 봄을 가지고 있는데 너에게 나누어줄 수가 없구나. 그래서 충동적으로 우라시마 코테츠를 데려왔다. 그 아이가 아닌 것은 알지만.

-현현전에 일단 매뉴얼을 읽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사람에게서는 어떤 맛이 나는지, 그것을 씹어 삼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이 막연한 괴로움만이 전해져오는 매뉴얼이었다. 당분간 식단은 야채 위주로 짜야겠다고 모두에게 말하자 오오쿠리카라가 약간 시무룩해졌다. 하세베한테 몰래 간식이라도 만들어주라고 말해줘야겠다.

-오래된 흉터를 한가득 달고 우라시마 코테츠가 현현됐다. 여느 블랙혼마루가 다 그렇듯이 작은 거북이는 달고 있지 않았다. 떨고 있는 우라시마의 어깨를 가만히 잡고 힘을 불어넣어 보았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영력이 흘러들어갔고, 흉터가 하나 둘씩 사라지며 어느새 어깨 위에는 작은 거북이 하나가 느긋한 표정을 짓고 올라가 있었다. 우라시마는 그것을 꼭 쥐고서는 바들거리며 짐승같은 오열을 토해냈다.

-우라시마는 나와도, 다른 도검들과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서 거북이에게만 말을 걸었다. 도검들에게 일단 그렇게 두라고 했고 도검들은 그걸 이해해주었다. 아마 다들 그랬던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서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가끔은 그걸 혼자 헤집어보기도 하고, 가끔은 손으로 꾹 누르기도 하는 시간. 누구에게나 쉬는 시간은 필요하다.가만히 앉아있자니 우라시마가 와서 옆에 앉았다. 고맙다고 말하기에 대답 대신 먹고 있던 당고를 나누어주었다. 고기가 아니니까 먹을 수 있지? 라고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이고 한입 베어물었다.
사실은 먹는거, 싫어해. 요리도 싫어. 그렇게 만들어놓으면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는걸. 그렇게 만들어버리지 않았다면 알아봤을 텐데, 먹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 우라시마의 독백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거 알지, 나도 내 고기인줄 알았으면 안 먹었을 게 제법 많으니까. 속으로 그렇게 대답하면서.

-형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고 우라시마는 울었다. 조금 참으면, 불가능할 건 없지 않을까? 나가소네한테는 그저 두개골이 골절되도록 맞은 거 뿐이고, 하치스카가 벤 자리는 날카로운 것으로 깔끔하게 베여서 그랬는지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무섭기는 하지만 나는 울고 있는 우라시마를 달래주고 싶었다. 나가소네를 먼저 데려와주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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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1:02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혼마루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겨울은 싫어서 언제나 봄으로 유지시켜두고 있다. 그럼에도 뭐든 잘 자라고 잘 열매를 맺는 것이 그저 신기하다. 감나무 아래에서 사요가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길래 무엇을 보느냐고 물어보니 꽃을 본다고 말했다. 이쁘지는 않지만 작고 귀여운 감꽃이 벌써 한가득 피어있다. 얼마 안있으면 꽃이 지고 감이 열리겠지, 단감을 먹을 수 있을거 같다.

-콩을 심는 오오쿠리카라와 츠루마루를 보았다. 풋콩 앙금을 떡 위에 올리던 검은 장갑낀 손을 기억한다. 내 피가 말라붙어도 티가 잘 나지 않는 검은 장갑낀 손. 갈라진 살틈을 멋대로 파헤치는 손. 조용히 밭에서 발길을 돌렸다.

-도검들은 현세의 간식거리가 제법 맘에 들었는지 열심히 나를 졸라대고 있고, 나는 쓸곳이 없이 쌓이기만 하는 돈을 간식거리나 다른 먹거리에 조금씩 쓸수 있게 됐다. 이 일의 유일한 장점이 그거다, 급료가 많다는것.
사요만이 어리둥절해서 도검들이 내게 뭘 말하는 건지 모르는 눈치이길래 택배 사이에 끼어있던 과자와 차를 가지고 도검들이랑 간단히 다과회를 가졌다. 조용히 과자만 오물거리고 있기에 마음에 안드는 걸까 고민했지만 연신 과자를 입으로 가져가는 걸 보고 안도했다. 다들 먹고만 있는 덕분에 옆에서 과대포장된 과자를 연신 까서 쟁반위에 놓아줘야 했다. 내 찻잔만 차가 줄지 않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싫지 않으니까.

-카슈는 알록달록하니 이쁜 사탕이나 모양새가 이쁜 케이크 등, 맛보다는 생김새가 이쁜 간식을 좋아한다. 오오쿠리카라는 의외로 그렇게 달지 않은 팥이 들어간 만쥬 같은 간식을 좋아한다. 츠루마루는 대체로 신제품 위주로 뭐든 일단 먹어보는 타입이고, 하세베는 그렇게 안생겨서는 달콤한 마카롱이나 초콜릿 등을 즐긴다.
사요는 무엇을 좋아할지, 미리 이거저거 생각해보는 시간이 그리 싫지 않다.

-사요에게 새 삿갓을 선물했다.

-처음으로 도검들과 같이 밭일을 했다. 게으른 주인이 무슨 일이냐면서 츠루마루가 웃었다. 너희랑 같이 있으니까, 밭에 묻힐거 같은 느낌은 없어서. 농담으로 말한 거였는데 다들 움찔했다. 카슈가 그럴리 없으니까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쪼그려앉아 잡초를 뽑던 내 머리에 꿀밤을 놓았다.

-모두에게 그냥 대충 매우 생략해서 말한 내 이야기에 뒤늦게 츠루마루가 관심을 갖는거 같길래 정말로 그 이야기를 듣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떠올리는 건 좀 괴롭긴 한데, 정말로 알고 싶어하는 눈치이길래 몇가지만 이야기했다. 그렇잖아도 하얀 그 얼굴이 완전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너는, 너 자신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도움받아야 할 상황이 아니더냐. 이런 놀라움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츠루마루에게 그래서 손목을 긋는 거라고 대답해주었다. 아마 이해하기 힘들지도. 츠루마루의 자해가 자기의사를 강하게 호소하는 수단이었다면, 내 자해는 내가 잊고 싶어하는 것에서 시선을 돌리려는 도피다. 츠루마루는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듯 인상을 찡그렸지만 꿀밤을 놓지는 않았다.

-카슈가 안아주는 거랑 츠루마루가 안아주는건 느낌이 다르다. 일단 카슈와 츠루마루의 키 차이가 제법 나기도 하지만 그거 말고도, 왠지 어른이 안아주는 기분이었다. 키는 거의 비슷한데.

바보같은 아이로구나. 주인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츠루마루가 안타까워 하는 것 같았다. 글쎄, 모르겠다. 다들 자기 아픔이 더 큰거니까 츠루마루도 자신이 더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은데. 나보다는 츠루마루가 훨씬 더 고통스러웠을 텐데.

-출진의 할당량을 다 채우지 못해 도검들에게 출진을 부탁했다. 카슈는 여전히 어딘가 보내기 애매한 상황이다. 혼자서만 연도가 너무 높다. 부루퉁해진 카슈를 달래려고 내 옆에 네가 없는게 싫으니 곁에 있어달라 부탁하자 그제서야 카슈는 얼굴이 활짝 펴서는 다들 다녀오는 동안에 우리끼리 놀자면서 매니큐어를 발라달라고 졸랐다. 빨간색 계열이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가끔은 잡지나 티비에서 본 것처럼 이쁜 네일아트...? 같은건 어떨까. 미용잡지를 인터넷쇼핑 장바구니에 추가했다.

-큰맘을 먹고 혼마루에 케이블 티비 안테나를 달아보았다. 온갖 채널이 나와서 흐뭇하다. 모두 모여 저녁을 먹으며 채널을 돌리다가 살색 화면과 신음소리만 안나왔어도 하루종일 흐뭇했을 텐데.
다들 딱히 고집하는 채널이 없어서 일요일 오전만 빼면 마음대로 티비를 보도록 말해두었다. 일요일 오전은 사요와 카슈의 시간이다.

-카슈가 진지한 얼굴로 레드가 나을까 블랙이 나을까를 고민하길래 옷이나 매니큐어의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사요와 전대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쩐지 티비 앞에 나란히 앉아 있더라니. 장난감을 사주면 좋아하겠지.

-하세베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물리적 거리가 아닌 정신적인 무엇인가이다. 그것을 아는지 내게 물어온 하세베에게 나는 사과했다. 그건 하세베가 받아야할 감정이 아니다, 내가 불합리한 감정을 휘두르는거 뿐이다. 그 하세베는 지금 내 앞의 하세베와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생각에 매인 것도 모자라서 하세베가 눈치챌 정도로 드러내보인 내가 나쁘다.
그렇게 말하자 괜찮다고 했다. 모두가 모두에게 그러던 곳에서 지내고 있었으니, 이해한다고. 하긴, 여기 있는 애들은 다 그 모양이었지. 그렇게 생각하고 혼자 납득하고 있으니 하세베는 말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은 오오쿠리카라이지만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주명이라면 무엇이든지 내리십시오. 라고.
인정받은 걸까.

-츠루마루가 시시오의 본체를 들고 티비가 있는 방에 가선 좋은구경을 시켜준다며 성인채널을 틀다가 걸렸다. 시시오는 충격이었는지 의사소통을 거부중이고 츠루마루는 하세베에게 혼나서 벌을 서고 있다. 카슈가 어디서 목에 걸 팻말을 또 구해와서는 붓으로 죽죽 그어 츠루마루의 목에 걸어주었다. '성욕의 노예가 되지 맙시다' 라고 쓰여 있어 결국 폭소를 터뜨려버렸다.

-오오쿠리카라가 밭에서 따왔다고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주었다. 다같이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니까 처음 딴 거라고만 대답했다. 맛있었다. 오오쿠리카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가 실수로 먹다가 즙을 흘린 옷을 벗겨선 무덤덤하게 빈 접시랑 같이 수거해갔다. 도중에 상처투성이인 등판때기를 보고 잠깐 움찔했지만 고맙게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시시오가 처음으로 현현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유를 묻자 그 음란한 영감탱이의 궁둥이를 걷어차주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츠루마루의 엉덩이에 일단 애도를 표한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대답했다. 아직도 종종 배가 뜯겨나가는 듯 아플때가 있어서였다. 나는 아직 다 잊지도, 다 극복하지도 못했나 보다.

-익숙해지려면 꺼내서 들여다보는 시간도 있어야겠지. 일부러 여러번 떠올리고 기억해보고 내장이 헤집히는 느낌도 다시 생각해보고. 그러고 괜찮지 않을까 하고 시시오를 현신시키기로 했다. 카슈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다. 눈 앞에 선 시시오는 나를 올려다보다가 뭐야, 조금 더 멋있는 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라고 씩 웃었다. 그 겨우 만든 웃음이 어느새 눈물로 변해서는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머리에 갖다대자, 움찔하면서도 물러나거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가만히 시시오가 그칠 때까지 쓰다듬어 주었다.

-본체의 모습인 도검과 이야기를 할때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말이 아닌 마음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걸 좋아하지 않는데, 지금같은 상황이 있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잊어버린 주제에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꺼내서 그 도검의 앞에 늘어놓는 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시오는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읽었을 거고, 나를 조금은 가엾게 생각해줬을지도 모른다.

-나는 도검들을 치유하는게 아니다, 그저 그들보다 더한 피해자를 가장해 화낼곳도 없게 만드는거 뿐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학대받고 인간을 미워하다가도 다른 상처받은 인간을 위해 울어줄수 있는 이 상냥한 신들에게 기대는 것이다. 내 상처를 보여주면서 가엾게 여겨달라고 호소하면서, 미워하지 말고 곁에 있어달라고 애원하면서.
그저 외롭기 싫어서 모두를 이용하고 기만하는 것이다. 이 따뜻하고 다정한 공간을 나 자신으로 더럽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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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0:59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시오를 안정시키는 동안 돌봐줄 다른 도검을 받으러 현세로 가겠다고 하니 카슈가 따라오겠다고 졸랐다. 오오쿠리카라는 관심없는 눈치였고 그래서 자연스레 하세베도 아웃. 츠루마루는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는데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다. 다음엔 츠루마루를 데리고 가기로 하고 일단 이번엔 카슈랑 왔다. 겸사겸사 나와 카슈의 정신감정도 받기로 했다.

-멀쩡한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담당자 놈이 건성으로나마 나한테 사과했을 정도면 내 상태가 지금 말이 아니란 뜻인데 좀 당황스럽다. 이제 자살시도도 안하고 자해도 안하고 밥도 세끼 잘먹고 있는데. 암튼 그래서 약을 받아왔다. 그냥 세끼 식후에 먹어주라고 하는데 굳이 약까지 먹어야 되나? 나는 괜찮은데. 아프지 않으니까 미치지 않았는데.
카슈의 결과에 대해서는 따로 서류로 받았다. 카슈는 내가 그걸 받는 걸 보고 나는 몰라도 상관없으니 대신 주인이 잘 읽고 나를 더 알아주고 귀여워해달라고 웃었다.

-담당자에게 사요 사몬지를 받았다. 시시오는 역시 심했다고 장난이 지나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데 때리고 싶었다. 카슈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칼자루에 손을 가져가는걸 열심히 제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사요 사몬지에게 심한 일을 당한 적은 없다. 초기에 먹고 있던 빵을 나눠준게 도움이 됐는지 그 혼마루의 사요 사몬지는 가끔은 나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요 사몬지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어라.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가? 뭔가 잊고 있지 않나?
게이트까지 마중나온 츠루마루에게 부탁한 게임기를 건네주었다. 오오쿠리카라와 하세베는 딱히 원하는게 없다길래 난감해하다가 현세의 간식거리를 사왔다. 다행히 둘 다 맛있게 먹어 주었다.

-사요 사몬지를 현현시키기 전에 카미다나의 시시오와 다시 교감을 나누어 보았다. 처음보다는 약간 안정되어 있었다. 영력을 부어 재액을 떨궈낸뒤 천천히 쉬라고만 말해주었다. 시시오는 전처럼 심하게 떨지 않았다. 아직은 시시오가 무섭지만, 이 시시오는 나와 아무 관련이 없으니까. 조금은 안타깝고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났다. 아. 곤란한데. 담당자...나쁜 놈.

-사요 사몬지를 현현시켰다. 삿갓이 없었다. 나중에 장을 보러가면 삿갓을 사다줘야겠다. 상처투성이로 나타난 사요를 수리한뒤 따로 방을 내주고 쉬게했다. 아, 그전에 사요를 앉혀두고 미리 말해두었다.
딱히 위해를 끼칠 생각도 없고 행동을 강제할 생각도 없다. 네가 편한대로 지내도 좋다. 다만, 형들을 만나고 싶다면 곤란할 것이다. 나는 단도를 하지 않고, 전장에서 얻은 검을 가져오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본성의 코우세츠 사몬지라면 데려올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우자 사몬지는 데려올 수 없다.
그말에 사요는 갸웃거리다가 어째서냐고 물었다. 대답하려다가 목까지 올라온 말이 틀어막혔다. 겨우 기억난 조각난 이미지들. 빨간 피, 뼈, 파헤쳐진 근육, 드러난 발목, 걷지 못하고, 일으켜진 채 부러지고, 만신창이, 아픔, 슬프게 웃는 입매, 다른 색의 눈동자, 단절, 암전, 단편적인 수십개의 이미지가 목을 틀어막는다. 사요는 가만히 입을 틀어막고 구역질을 참는 나를 바라보다가 당신은, 형에게 복수하고 싶은 거구나. 이해했어. 의견을 존중하지. 라고만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그것에게는 복수조차도 할 수 없다. 이렇게나 두려운데. 무서운데, 기억조차도 가라앉아 숨어버릴 정도로 두려운데.

-숨도 못쉴 정도로 두려울때는 다른 곳으로 신경이 쏠리게 하는게 낫다. 이럴때는 치유력이 고맙다. 아무리 그어대고 찢어대도 멀쩡해지니까 아무도 모른다. 손목을 몇십번 정도는 그어야만 익숙한 기분이 든다. 바람도 칼날도 다 춥던 그 곳에 있는 것 같은 익숙한 기분이 든다.

-하루종일 야단맞고 벌을 섰다. 모를줄 알았느냐며 옷자락에 튄 피를 가리키며 츠루마루가 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 팔도 다 걷었었는데. 다음부터는 손목을 긋기 전에 옷을 다 벗어야겠다. 하세베를 뺀 나머지가 다 돌아가며 잔소리를 하고 나서는 대표자인 츠루마루가 손들고 벌을 서고 있는 내 목에 '몸을 소중히 하겠습니다' 라고 쓴 팻말을 걸어주었다. 창피하다.

-점심 메뉴는 고기였다. 유독 내 앞에만 고기가 많다. 하세베를 원망을 담아 바라보자 무덤덤하게 피를 많이 흘리셨으니까요. 철분이 많은 요리를 준비할까 해서 간을 사왔습니다만, 주인께서는 아마 못 드실거 같아서. 대신 다른 음식을 준비하고 정부에 철분제를 요청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세베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안쓰는줄 알았는데. 열심히 다 먹었다. 당분간 고기는 패스.

-나 진짜 멀쩡하다고 왼팔을 흔들어 보였는데 아무도 안 믿어줬다. 치유력 있다고 말했잖아....카슈가 대경실색하며 방으로 나를 밀어넣더니 따라들어와선 문앞에 버티고 앉았다. 누워서 자. 안그러면 기절시켜서 재울거야. 농담이 아닌거 같아서 누워서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을 깼다. 문가에 기대 잠든 카슈가 화들짝 놀라 깨어나더니 내게 다가왔다. 괜찮아? 하고 걱정스레 들여다보는 붉은 눈동자. 땀으로 흠뻑 젖어서 깨어난 나를 바라보다가 자기 소매로 이마를 닦아주면서 바보야. 아픈 꿈은 그만꿔야지. 라고 말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면 나는, 악몽도 기억도 그렇게 쉽게 없어진다면, 나는.
카슈를 끌어안고 누웠다. 미안, 땀냄새 날텐데. 라고 사과하자 카슈는 대답대신 자자. 우리 주인. 하고 그냥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치유력이 대단한 모양이지만, 이대로 치유시켜봤자 다 부서진 다리밖에 남지 않을 텐데. 자르고 다시 돋아나게 하는게 낫겠지요?
꿈속에서 그 한마디가 기억났다. 소우자 사몬지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가는 실톱을 던져주었다. 내 앞에 놓인 휠체어에 앉아있는 소우자 사몬지의 무릎 밑으로는 살이 없다. 뼈 뿐이다. 정강이뼈는 잘렸다 다시 붙은 자국이 있었고, 그나마도 묘하게 굵기가 달라 어긋난 접합부가 보인다. 아, 정말로....새의 가느다란 다리 같구나. 분홍색, 피눈물을 흘리며 우는 새장안의 새.
자, 어서.
나는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울어도 저며진 살과 박살난 뼈가 원래대로 멀쩡히 회복되진 않는다. 시간은, 애원은, 눈물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타는듯이 아프다.
나는 머뭇거리며 허벅지 위에 톱날을 세웠다. 힘을 줘서 당기지 못해 빨간 줄만을 허벅지 위로 자꾸 그어대면서.

-아침에 일어나다가 눈앞이 깜깜해져서 넘어졌다. 도검들한테 또 새삼 혼났다. 그러게 왜 피를 그렇게 많이 흘리냐며 절대 피흘릴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방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엄명을 받았다. 내가 주인인데.

-자기들끼리 알아서 출진을 나간 도검들이 성과를 보고해왔다. 검을 주워오지 말라는 부탁을 들어주어 다들 약간의 자원만을 들고 들어왔다. 연도가 유난히 높은 카슈만이 혼자 내가 나갈 만한 곳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달래주고 대신 원정이라도 다녀올래? 라고 물어보았다. 주인이랑 같이 가는거면 몰라도, 혼자는 싫어. 하고 카슈는 웃었다.

-오늘치 약은 다 잘 먹었나. 고개를 끄덕이자 오오쿠리카라는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케이크 상자를 내게 주었다. 츠루마루가 주라더군. 하고 말하면서. 츠루마루는 나보다 더 정부몰을 잘 쓰는거같다.
몽블랑 케이크는 맛있었다.

-카슈가 같이 자 주었다. 꿈은 꾸지 않았다.

-츠루마루가 몽블랑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쿠리 꼬마도 참 재미있는 면이 있단 말이지, 라고 말하면서.

-밭 옆에 감나무 묘목을 심었다. 밭에 영력을 불어넣으면 겸사겸사 감나무도 쑥쑥 자란다. 사요가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츠루마루가 함정을 파다가 사요를 보고 깜짝 놀라서 자기가 함정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직접 봤다면 나는 웃었을까, 웃을수 있었을까.
흙구덩이, 차갑고, 깊고, 위로는 차가운 조소가. 기억하는 것은 이렇게도 힘든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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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0:58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데리고 있는 네 도검들에게는 내 사니와명조차도 말하지 않았다. 그건 전의 혼마루에서 쓰던 이름이라서 계속 그 이름으로 나를 칭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다른 이름을 짓지 않은 것은 내가 이름을 짓는 센스가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이름은 나의 초기도에게서 받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용모도 언동도 우아함이 없으니 하다못해 임시 이름이라도 우아하면 어떨까.' 그렇게 말하면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노래(謠), 연꽃(蓮). 둘다 나한테는 웃기도록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카센이 그렇게 지어준 이름을 불러주는 동안에는 내가 정말로 그런 것이 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카센에게 어울리는 그런 주인이 된 것만 같아서. 그래서 행복한 기분이 드는 이름이었다.

-갑자기 왜 이름에 대해 이야기했느냐면 카슈가 이름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너, 그 다음에는 주인.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더 알고 싶은 거냐고 묻자 카슈는 그치만 주인은 내 이름을 알잖아. 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거 같기도 하고. 살짝 카슈를 쓰다듬어주며 본명이 아니어도 괜찮느냐고 물어본뒤 괜찮다 해서 말해주었다. 카센이 몇십번이나 쓰게 해서 겨우 익힌 한자도 손바닥에 써서 가르쳐주자 묘한 표정을 짓다가 이상해, 안 어울려. 라고 말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대체 왜 웃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카슈는 약간 부루퉁하게 있다가 슬쩍 사니와명으로 나를 불렀다.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오랫만이다. 가만히 있다가 카슈에게 말했다. 네가 말하니까 우아함이 없이 들리네. 카슈는 그 말에 볼을 부풀리더니 주인은 원래 우아함이 없어. 라고 맞받아쳤다. 다시 웃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본 너는 피투성이로, 헤시키리 하세베에 꿰뚫린 채로 웃으면서 내 이름을 불렀었다. 피섞인 목소리로 부른 내 이름은 너무도 낯설고, 듣는 것만으로도 아프고, 그러면서도 이끌리는 이름이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슬픈 생각만 나는 날이다. 나를 왜 부른 걸까. 데려가 주려고?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네가 걱정한 것처럼 재액이 들어차 신역이라 부를 수 없는 공간에서라도 나는 너와 둘이 있다면 행복했을 텐데.
하필 이럴때 하세베가 눈에 띄어서 움찔했지만 하세베는 나를 흘깃 보고선 그냥 오오쿠리카라 못봤느냐고만 물었을 뿐이다. 저 녀석이 저 따위라서 다행이었다.

-간만에 컴퓨터를 켜서 사니와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글들을 읽다가 문득 충동에 우리집 하세베는 주명의 주자도 입밖에 안꺼낸다라고 말하자 갑자기 리플이 후두둑 달렸다. 야 그거 엄청 심각한거 아니냐/히이익 어디 블랙혼마루냐/주명맨한테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등등이었다. 내가 왜 그걸 생각을 못했지. 저 녀석, 멀쩡해 보이는데 지금 여기서 가장 이상한 놈이었다. 슬쩍 하세베를 불러서 내가 주명으로 오오쿠리카라랑 떨어지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하자 웃으면서 바르지 못한 주명이라면 따를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주인의 목을 쳐서 그 그릇된 주명을 철회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놈 정말 미친놈 아냐. 아 원래 그랬었지.

-저녁을 먹고 나서 혼자 방에 있으니 츠루마루가 술을 마시자고 찾아왔다. 다른 도검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기에 같이 마시기로 했다.

-다시는 츠루마루랑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아침에 일어나니 츠루마루가 해장국을 끓여다주며 어제 했던 말들은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이래서 도검남사들과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 고개를 젓자 츠루마루는 웃으면서 그래그래, 가끔은 솔직해지기라도 해야지. 라고만 말했다. 궁금해 죽을거 같았다.
국물을 한술 떴다가 그대로 뿜어내버렸다. 츠루마루는 어라 하는 표정으로 그 네모상자에서 설탕은 좋은 조미료라 팍팍 써야 맛이 난다고 하였는데, 아닌가? 라고 말했다. 그래...이 영감탱이한테 뭔가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다.

-그러고 보면 그때는 카센이 요리를 해줬었지. 지금은 카센이 없다. 사실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를 다시 보는 것만큼 카센을 다시 볼 자신이 없다. 단도실에 못질을 한 건 그런 의미였다.
요리는 나와 하세베가 하게 되었다. 사실 하세베가 거의 다하고 나는 밥짓기나 그외 야채를 써는 등 자잘한 도움 정도가 고작이지만. 하세베의 요리실력은 굉장했다. 다만 오오쿠리카라가 좋아하는 음식만 하고 있어서 그렇지. 오오쿠리카라가 밥을 먹으며 벚꽃잎을 하나 둘씩 날리고 있으니 뭐 좋은게 좋은 거라고 하자. 덧붙여 나는 고기보다 야채반찬이 좋지만.

-카슈를 뺀 나머지 세 도검에게 하코다테의 출진을 부탁했다. 슬슬 정부에도 어느정도로는 실적을 올려야 하니까, 아직 연도가 부족한 츠루마루와 오오쿠리카라,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은 하세베도 그 정도면 성과를 거둬올 것이다. 도검들이 없는 동안 각 도검들의 상태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카슈가 놀아달라 조르길래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보고서를 다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보니 카슈가 잠들어있길래 그냥 도검들이 돌아올 때까지 있었다.

-오오쿠리카라가 적장을 베었다고 자기일처럼 들떠선 신나게 이야기하며 오오쿠리카라를 칭찬하는 하세베를 보고 있으니 참 묘한 기분이었다. 오오쿠리카라도 마냥 싫지는 않은 거 같았다.

-오오쿠리카라가 주웠는데 어떻게 할 테냐고 작은 단도를 하나 내밀었다. 이때만은 도검 모두가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혼마루의 도검들은 내가 겪은 일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 낯익은 단도다. 그 수많은 단도들이라도,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사용되냐에 따라서 다 구분할수 있다. 나는 이 단도가 몇번이나 오른쪽 팔에 박힌채 살을 찢고 근육을 끊으며 휘저어지던 걸 기억한다. 흐트러지는 물결같은 날.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뒤 조용히 단도를 들고 도해실로 들어갔다. 한쪽에 놓인 제단에 단도를 놓고 공양한뒤 도해했다.
그 때 영력에 이상이 생겨 회복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흔적은 남아 나는 자주 오른손으로 든 물건을 떨어뜨리곤 한다.

-저녁을 먹지 않았다. 벌어진 피부 속으로 보이는 빨간 살만이 생각난다. 카슈가 괜찮느냐고 걱정스레 묻길래 그냥 식욕이 없다고 말하고는 쓰다듬어주었다. 그래도 불안한 표정으로 계속 올려다보길래 결국 밥상머리로 끌려갔다.

-오오쿠리카라가 사과했다. 당연한 일을 한거 뿐이니까, 내가 나쁜 거니까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타일렀다. 그러자 고개를 저으며 이제 검은 되도록 가져오지 않겠다고 했다.

-담당자와 대화했다. 딱히 검을 단도하거나 전장에서 검을 얻는것에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도검들에게 전장에서 얻은 검은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겠다.
지금 케어를 기다리는 도검들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 말하는 담당자의 목소리가 놀랍게도 무겁다. 그 희귀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미카즈키 무네치카까지도 블랙혼마루에서 구출되고 있다는데 참 말세다.

-"그래서 슬슬 또 하나 받아갈때 됐잖아요, 코우쨩."
"내 정신건강을 신경써줬으면 좋겠는데. 사니와한테는 복지도 없냐 복지. 그리고 그 복지의 시작으로 그 애칭부터 좀 관두고."
"에에 코우쨩은 코우쨩인데. 나말고는 이름 이렇게 다정하게 불러줄 사람도 없잖아요. 아, 지금 카슈가 그렇게 불러줄 거라고 말할려고 했죠? 츠쿠모가미한테 이름, 생일 발설 금지인건 코우쨩이 가장 잘 알거니까 그런일은 없을걸요."
"아......너 진짜 싫다."
"뭘 새삼스럽게. 아무튼, 그러니까 한번 현세로 좀 나와서 사람도 좀 만나고 그래요, 이번엔 코우쨩 트라우마가 좀 덜한 애로 데려가도 되니까."

-이 사기꾼이. 확실히 시시오 자체는 나한테 큰 상처를 입힌적은 없다. 하지만 그 어깨에 두르고 있는 누에는 별개다. 한입만에 배가 반정도 날아갔었다. 트라우마가 덜하다니 개뿔. 담당자 자식이 내가 전 혼마루에서 쓴 보고서를 안봤거나 아니면 그냥 사기꾼이거나 둘중 하나다.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어질거 같은 기분이었다. 간만에 또 토했다.

-사실 동물관련으로 가장 무서웠던건 고코타이였다. 크게 한입 먹히는 것보다 작게 지속적으로 뜯어먹히는게 더 고통스럽다.

-카슈가 괴로우면 현현시킬 필요 없다고 다독여주었다. 착한 아이다. 하지만 카슈를 볼수록 그럴 수가 없다. 카슈같이 고통받은 다른 도검을 받아와놓고 그냥 내버려두는건 여러가지로 뒷맛이 나쁘다. 그대로 카슈에게 말해주자 카슈가 짜증을 내면서 왜 나한테 해준대로 남한테까지 해줘야 하냐고 투덜거렸다. 주인은 나한테만 잘해줘도 되는데, 라면서.

-시시오의 현현은 잠시 미루는 대신 본체에 직접 소통을 시도해보았다. 본체에 손을 대고 영력을 흘려넣자 극심한 거부감이 전해져왔다. 시시오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손길에 극도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현현한 몸이었다면 손을 갖다댈 때마다 움찔 놀라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거의 애원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서류에는 그저 케어 이유가 폭력으로만 기재되어 있었는데, 뭘 얼마나 때렸길래 이모양인지. 안타까웠다. 본체가 그럴 의도가 생길 때까지는 현현하지 않을 생각이고, 카미다나에 모셔두고 부정을 정화하기만 하겠다고 전한 뒤 담당에게 보고하고 다른 도검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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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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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0:49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혼마루는 혼돈과 파괴의 나날이었다. 원래 자상벽이란 게 함부로 고쳐질 게 아니라는 건 나도 해봤으니까 안다. 요즘은 카슈가 울고 화내니까 안그럴 뿐이지. 그래서 나도 츠루마루에게, 카슈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해주기로 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칼자루에 손만 대도 난리를 피우면서 나도 똑같이 자해할거다 하고 공갈협박을 걸었다. 나같은 게 울어봤자 카슈처럼 귀엽긴 커녕 징그러울테니 울진 않았다.

-귀찮아서였는지 츠루마루의 자해 횟수는 좀 줄어들었다. 천만다행이다. 그 하얀 옷에 피가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특수세제를 요청해야겠다.

-이러고 있으니 우스운 일인데 오오쿠리카라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냥 추측이지만 자기가 깊은 죄책감을 안고 있던 츠루마루가 툭하면 나한테 귀를 잡혀 끌려와서 수리받는걸 보면서 안도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그래도 이 혼마루에서 그나마 오오쿠리카라 정도는 일반 도검들이랑 비슷하게...음, 무리하게라도 그렇게 봐주려면 못 봐줄 건 아니다. 나중에 출진을 보냈을때 다쳐 돌아오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츠루마루를 마루에 무릎꿇려 손들게 했다. 옷이 온통 새빨갛길래 눈을 뗀 사이 할복이라도 한줄 알았더니 염료를 가지고 장난친 거였다. 대체 물품 신청할때 언제 빨간색 염료를 끼워넣은 건지. 그래도 이정도 장난이면 양호하지 않을까.
문득 전의 혼마루가 생각났다. 그 혼마루에 있던 츠루마루는 상당히 이상한...음, 정정하자. 끔찍한 장난을 즐기는 편이었지. 이지메당하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칼에 찔리는 게 나았을 텐데. 속이 안 좋아지니까 그 때 일은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오오쿠리카라가 발도하고 츠루마루를 쫓아가고 있었다. 둘다 상당히 사이가 좋아진거 같아서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까 혼마루에 콘노스케가 없다. 지금 우리 혼마루에는 딱히 콘노스케를 오체분시할 도검도 없는거 같아서 도검들의 의견을 들은뒤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보들보들한 털달린 동물은 모든 인생에 필요하다, 나같이 굴곡진 인생에는 더더욱 필요하다.

-단도실에 못질을 했다. 도검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만나고 싶지 않은 것들이 한가득, 만날 수 없는 것이 하나.

-낯익은 여우꼬리가 살랑거린다. 동시에 안좋은 소식도 하나 가져왔다. 카슈와 오오쿠리카라, 츠루마루에게 헤시키리 하세베에 대한 안좋은 추억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을거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츠루마루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는 주인은 어떠한지? 웃는 얼굴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츠루마루는 자기 자신을 챙긴뒤 남을 챙겨, 주인이나 우리나 병든건 마찬가지다. 라고 말했다. 과연 할배라인...제법 날카롭다.

-잊으려면 무엇을 잊어야 하는지를 짚어내야 한다. 그러니까 결국 잊으려면 생각해내야 하고, 생각해내면 괴로워진다. 그래도 일단 결정된 일인 이상 서류를 보고 있으면 그 혼마루의 헤시키리 하세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지옥에서 헤시키리 하세베는 내게 손끝 하나 대지도 않았고, 내게 적의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카센을 부순 것은 헤시키리 하세베였다.
어쩌면 나는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육체적으로 내게 손상을 가장 많이 준 것은 호타루마루였고, 가장 큰 고통을 준 것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였다. 하지만 나에게서 가장 많이 빼앗아간 것은 헤시키리 하세베였다.

-이 자 때문에 제게 주명을 내려주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아니야. 너희는, 내게서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지, 굳이 말하면 내가 전임의 죄를 짊어지고 그가 받을 고통을 받는거 뿐이었겠지, 너도 내 주명 같은거, 필요 없으면서.
내 검이 아닌데, 내 검은 카센 뿐인데, 그걸 알면서 너는 내 앞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숨이 막힌다. 숨을 쉴수록 고통스럽다. 흐린 시야 너머로 모란꽃이 떨어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나는 거기서 떨어져야 했다.
나는 너와 피안에 가지 못해 고통스러운 것이다.

-천장에 천을 달아 카센의 칼집을 가로로 매어 보았다. 제법 튼튼할 거 같다. 천으로 고리를 만드는게 훨씬 더 제대로 죽을 확률이 높겠지만 이게 좋다. 카센의 칼집에 목이 졸린다면, 카센의 손으로 목이 졸리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카센에게 죽는다면 그것도 공열지극이다.

-카센 대신에 카슈에게 혼났다. 매어둔 칼집을 떼어선 그걸로 때렸고 나는 그냥 맞고 있었다. 맞을 일을 했다는 자각은 있다. 계속 울면서 아무렇게나 칼집을 휘두르더니 결국 지쳐서 주저앉아선 카슈가 주인 같은거 정말 싫다고 소리쳤다. 미움받을 짓을 한건 사실이니까.

-오오쿠리카라가 방을 찾아왔다. 버거운 침묵이 한참이나 이어진 뒤 오오쿠리카라가 말했다. 혼자 죽는 건가. 그러고 싶지만 죽진 않을 거라고 대답하자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니나가를 만나게 해준 주인이다, 혼자 죽게 두지 않아. 그렇게만 말하고 자리를 떴다. 황망한 상황이었다. 절대로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살시도에 대해 화내는 거라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다른건 몰라도 츠루마루에게 혼나는건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도 카슈에게 사과하라고 한 충고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카슈는 곰인형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 잔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혹시 그건 나를 그렇게 해버리고 싶다는 의사표시인지를 슬쩍 물었다가 자기 본체를 던지는 바람에 이마에 혹이 났다.
카슈가 안겨왔길래 얌전히 안고 토닥여주자 울면서 말했다. 나는 주인에게 귀여움받는게 좋아. 주인이 주인이라서 좋은 거야. 그러니까 주인이 죽는건 싫어. 주인이 없으면 나는 또 자꾸 떠올려 버리는데.
처음부터 이런 관계는 좋을게 하나도 없다. 아픈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를 치유하라니, 다들 자기가 가장 아픈데 누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카슈는 말했다. 첫번째가 아닌건 알아, 그래도 주인의 검으로 삼아줘. 부탁이야.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연신 훌쩍거리더니 새끼손가락만 편 왼손을 내민다. 약속해.

-약속했다. 미친. 츠쿠모가미랑 함부로 약속같은거 하면 안되는데, 아무리 작은 거라고 해도.
그래서, 나, 카센하고도 약속 하나 한 적 없었는데.

-그 난리를 피운지 조금 지나 결국 헤시키리 하세베를 받아왔다. 그 전날은 하루종일 그 혼마루에 있던 것과 여기 올 것은 다르다고 자기세뇌를 해야만 했다. 혹시 모르니 다 같이 모여서 현현시켜야 한다고 카슈가 떼를 쓰는 바람에 모두 모였다. 혹시 몰라서 연도가 어떻게 되는지를 묻자 카슈 외에는 의외로 다들 연도가 낮은 편이었다. 오오쿠리카라는 사니와가 괴롭히느라, 츠루마루는 사니와가 너무 아끼느라 출진을 거의 시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슈는...아마 '실전' 으로 연도가 높아진 거겠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카슈가 옆에서 흉흉한 기세로 금방이라도 발도를 하려는 자세를 하고 있는 가운데 헤시키리 하세베를 현현시켰다. 지친 청보라색의 눈으로 방안을 둘러보던 하세베는 한참을 오오쿠리카라를 바라보다가 비틀거리며 다가가서는, 그자리에서 오오쿠리카라를 끌어안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같이 받은 서류를 보니 그 혼마루에 있던 도검들은 다른 도검과의 성교를 지속적으로 요구받았다고 한다. 하세베의 상대는 도파적으로 연관이 있던 오오쿠리카라였고, 약물이나 암시를 섞은 지속적인 행위 끝에 오오쿠리카라를 사랑한다고 착란을 일으킨 상태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전 혼마루에도 제법 있었지, 힘드니까 서로 지탱하는 녀석들. 그런 거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오오쿠리카라에게 하세베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오오쿠리카라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했다.

-사실 하세베가 나한테 주명 운운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하세베는 주인은 안중에도 없고 오오쿠리카라에게만 신경쓰는 타입이라고 한다. 오오쿠리카라의 정조를 걱정했는데 딱히 그렇게 찐득한 관심도 아니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많이 말랐구나, 이 상처는 무엇이냐, 등등 그냥...가족같은 느낌이었다. 헤시키리 하세베의 탈을 쓴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오오쿠리카라가 안 보일 땐 마치 우구이스마루가 오오카네히라 찾듯 오오쿠리카라를 찾는다. 혼자 있는걸 즐기는 녀석한테는 정말 고통이 따로 없을 테지만, 일단 나는 안심이다.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나름 편안하다. 츠루마루가 표정이 많이 폈구만, 하고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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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0:48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카슈는 아직 나에게 먼저 다가오지는 않는다. 나도 카슈를 자주 부르지는 않는다. 도검남사가 눈앞에 보이면 머릿속에서는 마음대로 기억이 되살아난다. 손가락을 마디마디 잘라버리던 칼, 배에 쑤셔박히는 칼, 눈을 천천히 도려내는 칼, 귀를 자르는 칼. 그런 기억들을 조용히 가라앉히고서 겨우 카슈를 부를 때마다 초조해하던 표정의 카슈는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온다. 올려다보는 카슈를 쓰다듬어주면서 나는 카슈의 칼이 나를 찌르던 것을 떠올려보았다. 전처럼 생생하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큰 곰인형의 배를 가르고 솜 속에 얼굴을 처박은채 잠든 카슈를 보며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아마 전의 혼마루에서는 절대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다음날 자기 전에 카슈를 살짝 불러보았다. 당황하며 나? 하고 당연한 소리를 하더니 안절부절 못한다. 그래도 돼? 하고 물어보았다. 카슈는 내가 그렇듯 나의 트라우마를 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적어도 같이 잠든 도검에게 칼을 맞은 기억은 없다.
카슈는 내 팔베개를 베고서 불편한듯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어느샌가 미동도 없이 곤히 잠들었다. 색색거리면서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카슈는 나 대신에 바늘과 실을 신청했다. 곰인형의 배를 수리해줄 거라고 말하면서. 잠을 못잘 텐데 괜찮으냐고 묻자 주인이 팔베개를 해줄 테니까 괜찮다고 했다. 싫지는 않았다. 나도 카슈가 옆에 있는 동안은 잠을 설치지 않았다.

-카슈의 바느질 솜씨는 최악이었고, 나는 바늘을 들지도 못한다. 결국 카슈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을 보다 못해 시설 직원에게 부탁해 곰인형을 꿰맸다. 직원이 곰인형을 꿰매주는 동안 나는 바늘에 잔뜩 찔려 핏방울이 맺힌 카슈의 손가락을 치료했다. 이런 작은 일로 치료받는거 처음이야, 라고 바늘에 찔렸던 손가락을 바라보며 카슈가 웃었다.

-내가 아닌 카슈의 요청이라면 내게 허락되지 않는 것도 반입되는 건지도 모른다. 상상력이 부족한 터라 바늘로 어떻게 죽어야 할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지금은 죽을 생각이 없다.

-환지통에 시달렸다. 환지통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사지는 손가락 하나 모자람 없이 붙어 있으니까. 다만 잘렸던 적이 있는 몸은 그것을 기억하고, 새로이 돋아난 손가락은 그때 잘렸던 것처럼 아파온다. 눈물과 목소리를 참고 이불을 덮고 있으면 이불위로 카슈가 나를 토닥여 왔다. 울지 마, 아프지 마.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검인 이상 물을 별로 좋아하진 않을 텐데도 카슈는 내 목욕을 종종 도와주었다. 그때마다 카슈는 어디 하나 덧그을데 없을 만큼 잔뜩 난 흉터위로 조심스레 거품낸 스폰지를 문질러 몸을 씻어주었다.
목욕이 끝나고 미안하다고 말하기에 네가 낸 상처가 아닌데 왜 사과하느냐고 말하며 바나나우유를 입에 물려주었다. 같이 앉아서 바나나우유를 마셨다.

-방은 6인실이다. 나와 카슈 둘이서만 쓰기는 넓은 방. 이유를 묻자 직원이 반색하며 이제 카슈랑 제법 친해지신거 같아 그렇잖아도 말을 꺼내려고 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엔 현현한 도검이 아닌 본체를 받았다는 것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수리조차도 하지 못해 금이 가고 부서져가고 있었다.
검을 본 카슈도 불안한 표정이었다. 혹시 다른 도검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그런건 없다고 했다.

-도해는 싫어하니까 할 수 없고, 일단 현현시켜 수리하기로 결심했다. 낯익은 금안은 잔뜩 지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갈색 피부. 검은 용의 문신 위로는 깊이 베인 자국과 어설프게 맺힌 피딱지들이 용의 몸뚱이를 여러 조각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소슈덴의 히로미츠가 만들었다, 원주인은 다테 마사무네. 이름의 유래는 새겨진 쿠리카라용.
그 밖에는 할 말이 없군, 어차피 무명도니까. 오오쿠리카라는 그렇게 말하며 나와 카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오쿠리카라는 치료를 거부했다. 내가 설득하려 하자 검을 뽑아들었고, 카슈가 그 앞을 가로막으며 검을 뽑았다. 내가 그걸 막은 것은 오오쿠리카라의 무사를 위해서였다. 저 꼴로 싸우면 오오쿠리카라는 부러질 게 분명했다. 일단 오오쿠리카라를 설득하기로 했다.

-오오쿠리카라가 있던 혼마루에서는 치료를 받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보통 블랙혼마루를 처리하는 사니와가 수리를 해주기 마련인데, 그것도 거부한 것인가. 이유를 묻자 오오쿠리카라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오오쿠리카라는 도해해달라고 말했다. 오오쿠리카라가 자기 의지로 치료를 거부한다면 나는 내 의지로 도해를 거부할 자격이 있다. 나는 누군가의 생사를 선택할 수 있는 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야기를 들었다. 사니와는 오오쿠리카라를 거의 파괴 직전의 상태로 만들어둔 뒤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와 츠루마루 쿠니나가에게 둘이 서로를 상처입히는 만큼 오오쿠리카라를 치료해주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 둘이 어떻게 됐는지 오오쿠리카라는 몇번이고 입을 열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오오쿠리카라는 어느정도 중(中)상까지 회복했으나 그 둘은 파괴됐다고 한다. 그 뒤로도 연이 있는 다른 도검들이 나오면 그것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쇼쿠다이키리는 일곱자루까지, 츠루마루는 두자루까지 더.
혼자 살고, 혼자 죽고 싶었는데. 나 때문에 둘이 죽었다. 몇번이나 그 둘이 죽는다. 계속 혼자 살아남았다. 그러면 이제 혼자서 죽을 때가 아닌가. 그렇게 무심하게 말하는 오오쿠리카라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말없이 손을 잡아 영력을 불어넣었다. 손을 뿌리치려는 것을 더 꼭 잡고서 겨우 한마디만 했다. 너도 똑같이 했을 테니까, 네가 나쁜게 아니야.

-오오쿠리카라는 완전히 회복됐다. 직원이 와서 보고 만면의 미소를 띄고 무엇인가를 차트에 끄적거렸다. 이놈의 정부, 부숴버리고 싶다.

-생각보다 정부 쪽의 행동은 빨랐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동시에 받았다. 나쁜 소식을 먼저 말하자면 내가 다시 사니와로서의 본업에 복귀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좋은 소식은 그나마 새로운 혼마루를 받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거절은 거절이라고 한다.
담당자에게 항의하자 내 자질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건 알바 아니고, 나는 이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그러면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는 저 두 도검은 어쩔 셈이죠? 라고 말했다.

-일단 고민을 시작했다. 하나씩 정리해보자.
나: 환지통, 선단공포증(약), 우울증.
카슈: 불면증. XX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내가 팔베개로 해결). 사과받는 것을 두려워함. 심각한 의존성.
오오쿠리카라: 수리공포증. 아무리 다쳐도 수리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그나마 내가 애걸복걸해서 중상 정도는 치료받기로 합의했다)
이 둘이 나를 주인으로 여기고 있으면, 내가 없으면 저 녀석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카슈에게 슬쩍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 거 같느냐고 물었다. 3초만에 그 행동을 후회했다. 우느라 숨도 제대로 못쉬는 카슈를 달래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은 무리라고 판단내렸다. 오오쿠리카라에게 혼자 살고 혼자 죽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오오쿠리카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본인의 캐치프레이즈를 잊어버릴 만큼 망가진 도검을 두고 떠나는 것도 힘든 일이다.
결국 결정을 내린 나는 초기도는 필요없다고 담당자에게 통보했다. 초기도의 초 자를 꺼내는 순간 카슈의 눈이 흔들리면서 또 울기 직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새 혼마루는 사람이 산 흔적도 무엇도 없이 깨끗하고 넓었다. 셋이서 지내기는 지나치게 넓었기에 본채의 내 방을 같이 쓰기로 했다. 자원은 단도실과 도장실에 한가득 쌓여 있었고 필요한 물건은 정부에 요청하면 불온한 물건이 아닌 이상은 다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필요한 출진 수도 일반 사니와의 절반이었다. 오히려 불안했다.

-
"대체 무슨 꿍꿍이야, 이거?"
"아니 뭐...좋은게 좋은거 아니에요?. ■■■씨가 다시 재활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지령이고요."
"그거 믿을 줄 알아? 블랙 혼마루에 있을 때도 출진명령을 받았었고, 그때조차도 지금보다 필요한 출진횟수가 많았는데."
"사실은 말이죠..."

-차라리 정부에 쳐들어가서 난동을 부리는게 낫지 않을까. 대신 정부 쪽에서 붙인 조건은 카슈나 오오쿠리카라처럼, 문제를 가진 도검을 주기적으로 받아 케어하는 일이었다. 나를 케어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서 무료 카운셀러로 쓰고 앉아있다. 나부터가 문제가 한가득인데 이런 카운셀러로 괜찮은가. 정부가 블랙임이 분명하다.해당 도검은 일주일 뒤에 보낼 예정이니 그동안은 편안히 지내도 좋다고 했다. 출진은...아직 나도 두 도검남사도 그럴 정신이 아니다. 일단 나름 혼마루 취임축하를 하기 위해 담당자를 닦달해 치킨을 시켜 같이 나눠먹었다.

-일주일 동안 뭘 하지 하고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사니와로서의 업무를 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수리랑 정화 정도인데 여긴 수리할 것도 정화할 것도 없다. 먹먹해져서 티비를 보며 뒹구는 나를 오오쿠리카라가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출진하고 싶느냐고 물어보자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내 앞에 진지한 표정으로 정좌하길래 나도 얼떨결에 정좌했다. 한참을 내 눈을 바라보던 오오쿠리카라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거절할 수가 없는데 나로서는 상당히 거절하고 싶은 제안이었다.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와 츠루마루 쿠니나가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두려웠다. 나는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웃는 얼굴로 내 이를 모두 뽑아냈던 것을 기억한다. 다시 자랐으니 결과적으로야 문제가 없다고 쳐도 이의 재생은 느리다. 나는 일주일 동안 입안에 차오르는 피를 삼키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었다. 만약 내가 단도를 시도해서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내가 너무 떨고 있었는지 오오쿠리카라가 당황했다. 그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러지 않아도 좋다는 말만 남기고 오오쿠리카라는 방을 나가려 했다. 나가려는 오오쿠리카라를 잡고 정부의 제안에 대해 설명한 뒤 츠루마루 쿠니나가를 이 혼마루에 데려오겠다고 말했다. 오오쿠리카라는 알 수 없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감사한다고만 짧게 말했다.

-담당자에게 케어가 필요한 도검 중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있는지 물었다. 얼마 전 블랙혼마루에서 수거해 보관중인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1체 있다고 했다. 원래 오기로 한 도검보다 그 츠루마루를 우선해 받고 싶다고 요청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대답을 받았다.

-카슈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혹시 너도 만나고 싶은 도검이 있느냐 묻자 카슈는 고개를 저었다. 전 주인은 나랑 단둘이 있기를 원해서, 다른 도검을 다 내가 죽이게 했어. 단도로 얻은 도검이든, 출진에서 얻어온 도검이든. 나는 모두의 앞에서 다른 검의 목을 쳤고, 또 목을 치고, 바라보고 있던 도검들은 점점 줄어가고, 머지 않아 나 혼자 주인과 남았을 때 주인은 단둘이 남았으니 재미있게 놀자고 했고. 나는...아무와도 만날 자격이 없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카슈를 꼭 안아주었다. 그래도 나 귀여워? 하고 올려다보는 카슈는 귀엽고 안타까웠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라고 대답해주었다.

-정부의 담당자가 츠루마루 쿠니나가를 데려왔다. 수리는 받았다 했지만, 그 옷은 새빨갛게 물든 채로다. 방금 자해를 했기 때문에 수리한 뒤 데려온 것이라 했다. 한숨이 나왔다. 붉은 학은 처음 보지 않나? 어때, 놀랍지? 웃는 얼굴의 츠루마루를 보고 말을 잃었다. 일단 츠루마루의 흰 옷을 다 벗겨서는 세탁기에 넣었다. 피가 잘 지워져야 할 텐데. 정말이지 인간의 고충을 모르는 안타까운 도검이다. 유카타 차림의 츠루마루가 뒤에서 유쾌하게 웃으면서 싫은 일을 열심히 하는 인간이군, 하고 말을 걸어왔다. 날카로운 도검이다. 그냥 당신을 데려온건 오오쿠리카라의 부탁이라고만 말해주었다.

-서류를 받아들고 방으로 돌아와 혼자 읽어보았다. 츠루마루는 자기가 있던 혼마루에서 사니와의 극진한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그 혼마루의 모든 것이 사니와와 츠루마루의 사랑을 위해, 그랬기에 다른 도검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수리를 위한 옥강 한개조차도. 그렇게 소모되고 상처입고 깨져가는 도검들을 보다못한 츠루마루는 사니와의 앞에서 자해를 해가면서 그녀의 잘못된 행동을 깨닫게 해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효과였다고. 저것들이 없어야 츠루마루가 멀쩡하게 있겠구나. 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남은 상처입은 도검들이 다 깨져나갔고 그 자리에서 츠루마루는 정신이 무너져내린 채로 블랙혼마루 인수자가 찾아올 때까지 울며 자기를 치료하는 사니와 앞에서 몇번이고 배를 가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나마 지금은 나아진 상태라고.

-드디어 오오쿠리카라와 대면시켜주었다. 오오쿠리카라는 츠루마루를 보고 한참동안 복잡한 표정으로 말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다가 츠루마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건 무슨 일이지, 쿠리 꼬마? 하고 묻는 츠루마루의 앞에서 오오쿠리카라는 입을 열었다. 쿠니나가, 나는 미츠타다와 너를 못본척 하고 죽게 만들고 몇번이나 살아남았다. 혼자서 살아남는 것은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니, 죄인인 몸이지만 죽는 장소와 방법만은 내가 고르고 싶었다. 네 앞에서, 너의 손으로. 가만히 오오쿠리카라를 내려다보는 츠루마루의 눈빛은 텅 비어있었다. 칼자루에 가져간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원한다면, 뜻대로 해주지. 놀라운데. 고통이 배어나오는 목소리로 대꾸하며 츠루마루가 칼을 뽑아들어 내리쳤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참 오랫만이다, 이 아픔도. 조금이라도 의식을 놓치면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만 같다. 깊게 베인 상처를 움켜쥐며 그 아픔으로 정신을 차리고선 내 검을 함부로 베지 말라고 츠루마루에게 외쳤다. 오오쿠리카라는 내 검이니, 내 허락없이는 벨 수 없다고. 너도 내 검이니, 네 몸을 함부로 베지 말라고까지 말하는게 한계였다. 쉬는 동안 영력은 거의 원상복귀되어 있었는지 대충 이틀 정도 누워있으니 회복되었다. 그 동안 옆에서 죽지 말라고 울면서 츠루마루를 베어버리겠다는 카슈를 달래느라 애를 써야 했다. 나는 어차피 나으니까 딱히 그렇게 과민반응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설득시키는 건 힘들겠지만.

-암튼 서로 여러가지로 어색하긴 하지만 일단 오오쿠리카라는 죽는건 보류한 모양이었다. 츠루마루는 아직은 자해한 적이 없다. 카슈는 내 옆에 꼭 붙어서는 오오쿠리카라와 츠루마루를 위험분자로 분류해두고 날카로운 눈길을 보낸다. 나는 셋 모두가 제발 사고만 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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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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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활용 혼마루(前) 2018. 11. 16. 10:44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15~2016년 사이에 쓴 글이라 당시의 이벤트나 추가캐릭터들을 반영하는 부분들이 지금 보면 혼란스러울지도 모릅니다...

※일부 에피소드에 자해 및 자살시도 묘사가 있습니다, 읽을 때 주의해주세요.

 

 

 

 
-몇번이나 죽을 뻔하고, 죽으면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 앞에서 카센이 깨졌다. 그 때 나는 죽은거나 다름없다. 정부에서 왔다는 사람이 그 뒤에 나타났고, 나를 향해 내리쳐지던 칼을 막아주었다. 나는 도검들을 막아선 그를 보고 울었다. 살아났다는 기쁨은 없었다. 카센과 같이 가주지 못한 고통만이 있었다.
 
-그 혼마루의 일은 그 사람이 대신 맡게 되었고 나는 현계로 돌아갔다. 돌아가자마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남들보다 운이 좋았다는 것은 알고있다. 보통 블랙혼마루에 들어가서 제대로 정화도 하지 못한채로 살아나오는 사니와는 거의 전무하다.
 
-영력만큼은 남들보다 훨씬 강하다고 들었다. 그것도 치유와 정화에 특화되어 있다고. 하지만 결국 바닥은 있던 모양이었다. 베이고 찔리고, 그대로 휘저어지고 잘리고. 그걸 반복하다 보니 혼마루나 도검들의 정화는 커녕 내 회복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게 고작이었다.
 
-상처가 대충 아물고서 샤워실에 갔다. 누군가가 검붉은 펜으로 가득 그어둔 것만 같은 몸뚱어리. 하나하나 모두 기억한다. 가장 크게 난 것은 옆구리에 깊이 난 흉터였다. 치유력이 재생까지 시킬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지금도 아마 움푹 패여 있을 것이다. 떼어낸 살은 내 앞에서 발에 밟혀 으깨졌고 나는 그 위로 얼굴을 처박혔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결계를 치고 잠들고서, 몇번이나 깨어난다. 눈이 뜨이거나 악몽을 꾸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그들을 구해주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구해주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나를 구해준 사람이 찾아왔다. 블랙혼마루 대책반이라는, 도시전설인 줄만 알았던 부서가 실재하는 줄은 몰랐다. 그렇게 말하자 일손이 바쁘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곳에도 금방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블랙혼마루는 대책반이 투입되기 전에 예비대책으로 새 사니와를 보내두는게 고작이라고. 나는 운이 좋았으면서, 운이 나빴다.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고, 거기서 가져온 것을 쥐어주었다. 카센의 검집이었다.
 
-혼자 남겨지면 유일하게 내 편이었고, 내 것이었던 카센을 떠올렸다. 나에게는 가족이고, 형이고,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것은 생애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 카센은 저 피안에 있다. 어딘지 몽롱한 듯한 목소리로, 녹아들 듯이 웃으면서, 피안을 보면서 떠나가버렸다. 웃는 얼굴로 카센은 사니와명이 아닌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의 끝은 차오른 피에 잠겨 완성되지 않았다. 어떤 의도였든, 다 부르지 못한 이름만을 남겼다.
 
-자해를 시도했다가 간호사들에게 막혔다. 구속복을 입게 되었다.
 
-주사를 맞는 것이 무서웠기에 링겔도 맞지 못하고, 투약도 직접 복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뾰족한 그 끝은 마치, 배를 뚫고 들어오던 단도와도 같았다. 자, 손잡이까지 박혔다. 증오와 원한이 가득하던 그 목소리. 떠올리는게 아니었다. 토사물을 치우는 사람에게 미안했다.
 
-자해를 시도하지 않은것은 죽기를 포기해서가 아니다. 카센의 검집을 돌려받고 싶어서였다. 겨우 구속복에서 풀려났다. 건네받은 검집을 꼭 끌어안았다.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다. 개인병실에서 나는 혼자서 텅 빈 검집만을 들여다보았다.
 
-그 사람이 찾아왔을때 고맙다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 사람이 조금 빨리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죽은 뒤에 혼마루에 왔어야 했다.
 
-특별시설로 옮겨지게 되었다. 어디든 상관없다. 음식과 물을 먹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
 
-다른 사람과 같은 방을 써야 한다고 했다. 나를 참을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텐데. 내가, 나같은게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
 
-방에 들어가자마자 구토하고 기절했다. 하지만 모두 나를 이해해줄 것이다. 그 손끝의 붉은 색이, 웃고 있는 입가의 점이.
그 혼마루에서 나는 그 미소를 보면서 손톱이 뽑힌 자리 위로 사포질을 당했었다. 내가 당한 거니까 그만큼만 되갚아줘도 되지? 라는 웃음섞인 목소리와 함께. 그 아이를 보는 순간 그 빨간 기억이 다 되살아난다.
 
-항의할 기운도 없이 설명을 들었다. 학대당한 사니와나 도검들이 서로에 대한 공포증을 치료해나가기 위해 모이는 시설이라고 했다. 그런걸 바로 말해줬다면 나는 이틀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하자 미안하다는 사과가 돌아왔다. 공포증을 치료하다니 웃기는 이야기다. 너무도 뻔한 목적이었다. 망가진 것은 고칠수 있다면 고쳐 쓴다는 사고방식.
 
-어쨌든 나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부권이 없다. 나는 어딘가에서 학대받았을 카슈 키요미츠와 같이 시설생활을 하게 되었다. 긍정적인 것은, 이전의 혼마루에서 나를 가장 심하게 다룬게 카슈 키요미츠가 아니라는 사실뿐이었다. 아마 같이 생활하는게 호타루마루나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였다면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카슈 키요미츠에게 아까는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이번에는 카슈 키요미츠가 벌벌 떨면서 잘못했다고 울기 시작했다. 놀라서 그를 한참이나 달래야했다. 전 주인은 언제나 학대하기 전에 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겨우 울음을 그치며 말하는 카슈 키요미츠의 눈가가 빨갛다.
 
-카슈 키요미츠는 내게 귀여워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카슈 키요미츠에게 아무 말도 걸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직 공포이다.
 
-무언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죽는 것은 잠깐 미뤘다.
 
-카슈 키요미츠가 내 침대맡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거기에는 카센의 검집이 있다.
 
-무엇인가 필요한 것을 요청하는 기간이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요청하지 못했다. 카슈 키요미츠는 큰, 아주 큰 곰인형을 요청했다. 인형을 좋아하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인형의 용도는 빨리 밝혀졌다. 카슈 키요미츠는 인형을 꼭 끌어안고 배에 얼굴을 묻고서야 겨우 잠들었다. 나는 그가 잠든 것을 그때에서야 처음 보았다. 두 개의 침대 위에서 한명은 발작하듯 팔자리를 퍼덕이며 깨어나고 한명은 잠들지 않는 날을 반복하다가 그 날에서야.
 
-카슈 키요미츠의 손톱은 매니큐어를 바른지 오래된 듯, 거의 벗겨져 있었다. 어째서인지 하늘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 엉망으로 해진 손에 발린 매니큐어가 슬펐다. 너는 그래도 사랑받고 싶어했구나. 그 애는 너덜너덜해진 손을 감추지도 않고 그 손으로 나를 때렸는데.
 
-사실 우스운 일이다. 카슈 키요미츠는 인간을 무서워하고 나는 도검남사를 무서워한다. 둘이서 같이 지내면서 공포증을 극복하라는건 교정강간이나 다름이 없다.
 
-날붙이류를 주지 않으니 손쉬운 자살법이 없다. 목을 매달아봤자 죽기 전에 들통나서 아프기만 하고 비효율적이다. 죽고 싶은 주제에, 이렇게나 가리는게 많다. 어떻게 죽을지를 생각해보다가 문득 생각이 미쳤다.
 
-카슈 키요미츠에게 말을 걸자 멈칫하면서 무슨 볼일이냐고 물었다. 불편한 룸메이트에게 나는 본체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시설 직원들이 따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걸 왜 묻느냐고 손을 덜덜 떨며 묻는 카슈 키요미츠에게 나는 너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그저 내가 죽을때 좀 빌려줄수 있을까 해서 물었다고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뒤로 카슈 키요미츠는 나를 보고 조금은 덜 두려워한다.
 
-너는 그 혼마루의 나에게서 무슨 일을 당했어? 라고 물어왔다. 네가 당한거랑 비슷한 일일 거라고 대답했다. 나는 카슈의 상처를 헤집을 생각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카슈도 그래주기를 바란다. 그 대답에 카슈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불쌍하다고, 불쌍한건 누군데. 결국 나도 울었다.
 
-카슈는 그 혼마루의 사니와를 죽였다고 했다. 그 혼마루에는 사니와와 도검남사들의 잔해, 그리고 카슈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미친 혼마루에서 어느 날은 카슈의 손을 믹서기에 쑤셔넣고 돌린 뒤 치료하고, 또 어느 날은 못박힌 판자위에 꿇어앉히고, 또 어느 날은 묶어선 물속에 던져버리고, 할수 있는 것은 다 해본것 같다. 그런데도 도검은 사니와의 영력이 흘러들어오는 이상은 죽지 않는다. 그 나날을 견디다 못한 카슈가 어떻게든 사니와를 죽인뒤에 정부에 확보된 것이다.
 
-주인은, 내가 주인을 찔렀을때 웃으면서 그 얼굴도 귀엽구나, 라고 말하고 죽었어. 코를 훌쩍이며 카슈는 계속 울었다. 카슈는 손길을 두려워한다. 손을 내밀어도 좋을까. 망설이다가 우는 카슈를 안아주었다.
지쳐서 잠들 때까지 카슈는 품에서 계속 울었다.
 
-다음날 카슈는 본체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그저 상처입은 사니와랑 도검남사끼리 상처나 핥아주라는 의미로 같이 두고 있는줄 알았는데. 영력이 아주 조금씩 흘러나가고 있었다. 그 전에 본체를 가져간건 임의로 카슈를 현현시키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본체를 돌려준 것이고.
카슈는 나를 보고 주인, 하고 웃었다.
 
-당연히 거절해야한다. 나는 그 싸늘한 날이 무섭고, 거기에 흐르던 내 피가 무섭고, 눈에 틀어박히던 칼끝이 무섭다. 카슈가 내게 칼을 들이대느냐 아니냐 이전의 문제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래, 라고 대답했다. 카슈는 그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고 있으니까.
 
-또 다시 물품을 요청하는 날이었다. 서로 비밀로 하고 무엇인가를 써낸뒤 며칠뒤 나는 카슈랑 멀뚱히 마주보다가 웃어버렸다. 손에는 둘 다 빨간 매니큐어를 들고서. 그날, 카슈는 나를 만나고 처음으로 웃었다.
내가 발라준 손톱을 몇번이고 들여다보며 카슈는 주인은 뭐 하나 제대로 못 하게 생겨서는 의외로 손재주가 있구나, 라고 웃었다. 의외로 가차없는 녀석이다. 웃는 카슈를 내려다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왜 초기도, 내가 아니었어? 라고 물었다. 난감한 질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네 첫인상이 무서워서라고 대답했다. 상처받은 표정이 되길래 지금은 아니라고, 제일 귀여운 도검이 너라고 생각한다고 한참을 달래줬다.
카센을 고른 것은 상냥해 보여서였다. 물론 그는 상냥했지만, 동시에 거침없고 가차없기도 했다. 떠나갈 때조차 등돌리지 않고 시원스러웠던 남사였다. 표정이 우울해졌는지 카슈가 안절부절 못하다가 나는 주인을 절대 떠나지 않을 테니까 울지 말라고 나를 꼭 안아주었다. 고목나무에 매미가 매달리는 모양새로 보일 것이다.
 
-왜 곰인형을 안고 자야 잠이 오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카슈는 대뜸 엉뚱하게 언령이란 것을 믿느냐고 물었다. 사니와인 이상 주술적인 부분을 안 믿을 수는 없다. 고개를 끄덕이자 카슈는 한참 또 머뭇거리다가 솜으로 대신하는 거라고 말했다. 전에 있던 혼마루에서 잘 때는 꼭 필요한게 있었는데 여기에는 그게 없으니까 솜으로 대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긴, 솜과 내장은 독음이 같다. 뱃속에 있는 것도 같다. 너는 거기에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잠들었을까.
 
-카슈는 하늘색을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자꾸 생각나서 싫은 거라고 했다. 도와주지 못했던 친구가, 친구들이 떠올라서. 그럼에도 카슈는 다 벗겨져가는 하늘색 매니큐어를 지우지 않았었는데.-정부는 아마 나와 카슈의 상태가 더 안정된다면 다시 어느 혼마루에든 보낼 생각일 것이다. 아직도 날카롭고 뾰족한 것을 무서워하고 틈만 나면 죽고 싶어지는 사니와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도검을 아직도 그렇게나 알뜰살뜰하게 써먹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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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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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카테고리 없음 2017. 7. 18. 22:36


-또 쓴지 한 달이 돼가는군요ㅇㅁㅇ 게으른 나새기여...

사실 아이젠이 극을 달았다고 보낸 순간 나는 아 내 혼마루 아이젠이 아직 극을 안 달았구나 하고 깨달았고 뒤늦게 보냈지만 아직 렙업중인 다른 아이들이 있어서 극 아이젠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인 것이다...

사실 연성중의 아이젠은 좀 성격이 다르긴 하니까 그냥 써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사실 전부터 쓰고싶던 게 있긴 한데 그냥 사채에 쓸까...

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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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혼마루(改) 2016. 5. 28. 01:02

Q&A 1/50

Q: 이름은?
A: 사니와로서? 아니면 그냥 사람으로서?
Q: 편한 대로 대답해 달라.
A: 요우렌. 요쿄쿠(謠曲 노가쿠(能樂)의 사장(詞章)에 가락을 붙여서 부르는 것. 또는 그 사장.) 요우(謠)에 연꽃(蓮)을 쓴다.
Q: 제법 운치있는 이름이다.
A: 지어준 사람 취향이 취향이라 그렇다.




내 전직, 어쩌면 현직은 사니와다. 신의 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신직. 지금은 역사를 바꾸려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역행군에 대처하기 위해 일종의 신인 도검에 깃든 츠쿠모가미들, 도검남사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불러내 시간역행군과 싸우게 한다는 계획에 없어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사니와가 없다면 도검에 무엇이 깃들어 있다 한들 불러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중요성에 비해 의외로 수는 많다. 억대에 달하는 시간역행군에 한 명의 사니와와 정부에서 사용을 허가한 몇십여자루의 도검으로는 수적으로 대항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정부는 신토를 응용해 시스템을 완성했다. 본래 존재하는 하나의 신을 여러 신사에서 모시기 위해 그 신을 모시는 유명한 신사에서 제신을 권청해 다른 신사에 모시는 것처럼 하나의 도검이 있다면 그 검을 하나의 신으로 삼아 수많은 분체에 그 신을 무한히 분령하여 여러 사니와가 각각 불러내어 싸움을 청할 수 있게.
사니와가 되며 기초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신이라 해도 결국 물건. 인간이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에 깃들어있는 츠쿠모가미. 신이 인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보다 격이 낮은 인간을 주인이기에 따르고 사랑한다. 그 결과는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어찌됐든 인간은 엇나가기 쉬운 존재다. 그런 존재에게 자신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르는, 본래라면 자신보다 훨씬 위의 것을 마음대로 손바닥 위에 놓고 가지고 놀 수 있게 했을 때는 어떻게 될까.
그 수가 크든 적든 길을 벗어나는 사니와는 생겨난다. 거기에서부터 하나 둘 씩, 지옥을 만들고. 고통이 생겨나고.
고통은 새로운 희생자의 목줄기를 물어뜯는다. 

"식사를 안하셨네요."
"네."
"네가 아니라, 삼일째에요. 몸도 성하지 않은 분이 이렇게 고집부리시면 어떻게 해요?"
"고집부린 적 없어요. 물은 마셨잖아요."
간호사의 걱정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간호사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살짝 흘겨보다가 결국 한 발짝 물러서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는 말없이 침대에 상반신을 일으켜 앉은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간호사는 어쩔수 없이 오늘도 내게 입원중의 주의사항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일반적인 환자라면 하나하나 다 잘 지켜야 완쾌에 도움이 될 수칙들이다. 내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핏물에 처박혀서도 크게 벌어진 상처 입구는 아물고, 칼에 꿰뚫린 구멍으로 반대쪽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상처도 이윽고 닫혀버리는데 어째서 굳이 병원에 입원시키고 있는지는 대략 짐작이 간다. 정부는 사니와의 은퇴를 거의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기라도 하면 그 때는 더 잡아둘 수 없으니 순직으로 인정해주겠지만 나는 내가 죽을 수 있는지 가끔 의문이 든다. 그 혼마루에서 내 목을 베었던 것은 누구였더라. 뭐, 아무리 치유력이 좋대도 목이 베였을 때의 일까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무튼, 식사는 제때 하셔야 해요. 아셨지요?"
내게 진 간호사가 나가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잘리고 찢어져도 재생되는 몸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잘 모르겠고 그 혼마루에 있었을 때는 살아야 할 이유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시도하지 않았던 여러 방법을 하나씩 시도해서 죽어보는 게 맞지 않은가. 물론 각오가 아직 어설프다는 생각은 든다. 내일부터는 물도 그만 마실까.
손목을 내려다봤다. 며칠 전에 몰래 숨겼던 숟가락을 조금씩 갈아내서 깊게 쑤셔박았던 자리는 눈썹같이 새빨간 곡선의 흉터로만 남아 있었다. 그 완만한 곡선은 나를 비웃는 것처럼 끝을 치켜올리고 있다. 분명 보통 사람이었다면 즉사였겠지. 우습다. 나는 어차피 카센 카네사다를 잃었던 순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왜 아직 여기 남아있는 걸까. 빈 껍데기만이 남아서 늘어만 가는 흉터를 보고 헛수고라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연인을 따라 죽지조차 못하는 허무한 몸뚱아리가 비겁하게도 배고프다고 꼬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목이 탄다. 손 닿을 만한 거리에 물병과 잔이 놓여 있었다.
물병을 들어서 병실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 물통이 벽에 부딪쳐 일그러지고 충격에 뚜껑이 열리며 물이 왈칵거리며 쏟아져나온다. 상처구멍에서 터져나오는 피 같은 기세로.
내 초기도. 내가 처음으로 기댈 수 있었던 존재. 그것이 없는데 어째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 걸까. 
"죽고 싶은데 말이야."
누구한테든 말하고 싶었던 말을 중얼거려 보았다. 당연히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 혼마루는 내 첫 혼마루였고 나는 평범한 신참 사니와였다. 당연히 목을 베여도 죽지 않는 괴물도 아니었다. 영력 기준치는 남들보다 높은 편이었다 해도 평범한 인간이었고 같이 교육을 받았던 다른 사니와들처럼 이제부터 시작될 시간역행군과의 전쟁에 기대를 품고 있었을 뿐이다. 내 혼마루가 이미 다른 사니와가 부임해 있던 곳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블랙혼마루라는 은어는 사니와들 사이에서는 도시전설 같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니까. 대체 어느 사니와가 자신이 다루어야 하는 소중한 도구이자 모셔야 하는 신을 그런 식으로 다루겠는가? 아무도 그런 것은 상상조차도 하지 않았으니까 진짜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마 어느 정도의 입단속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부임해 있던 혼마루라는 말에도 어떤 불안감 하나 없이 들어갔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불길하고 음침한 혼마루에 도착해서야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고,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 날 지옥은 나를 안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겨우 그 혼마루에서 나올 수 있었다. 더 일찍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카센이 없었다면 나는 거기서 1년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인간에 대한 적대심으로 뒤틀어진 재앙들의 사이에서 나는 그들에게 뺏긴 카센을 찾아 액기로 뒤덮인 혼마루를 찾아 헤매며 바늘꽂이처럼 꽂히는 적의와 갈곳없는 화를 받아들이기를 3년, 카센을 찾아낸 뒤에는 그를 구해내기 위해 또 2년을 반복하고 마지막은 겨우 옆에 돌아와준 카센을 모두에게서 지켜내기 위해 1년을 보냈다.
악몽같은 5년과 그래도 행복했던 1년의 끝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카센은 내 앞에서 부러졌고 나는 죽기 직전에 구출됐다. 도와준 사람들에게 피투성이가 된 채 운반되면서 나는 잘린 혀가 아직 재생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혀가 재생돼 있었다면 나는 그들에게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다. 어째서 하나가 살아있을 때에서야 왔느냐고. 둘 다 살아있거나, 둘 다 죽은 뒤에 오지 않고서. 왜 필요없는 나를 살려냈냐고.
그 뒤로 이 꼴이다. 비밀이 엄수된 정부 소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겨우 몸을 일으켜 앉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몸은 회복되었다.
몸 만큼은.
살짝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아까 그 간호사였다. 조금 전에 던졌던 물통이 문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는 나를 노려보는 것을 시선을 돌려 회피했다. 물통을 주워 테이블에 올려놓고서 그녀는 내게 면회가 있다고 말했다.
"면회라니요?"
나를 만나러 올 사람은 없었다. 나는 고아였고 친구도 없다. 약간의 궁금증과 언제나 상황에 휩쓸리며 몸에 배인 무기력함에 이끌려 나는 면회를 허락했다. 부러진 다리는 이제 겨우 뼈가 붙었기 때문에 내가 일어나서 나가지는 한다. 침대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간호사가 누군가를 안내해왔다.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몸은 많이 나았어요?"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 혼마루에서 나를 구해준 사람이었다. 나보다 키도 작고 훨씬 어려보인다. 20대 초반 정도일까. 고마워하고, 그 뒤로는 정말로 원망했던 사람.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덕분에. 감사합니다."
일단은 고맙다는 생각도 진심이기는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더 일찍 갔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사정은 다 있는 거니까."
대접할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다. 아까 던졌던 그 물통이다. 민망해하는 내 기색을 알아챘는지 그는 고개를 저으며 오래 있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블랙혼마루 대책반(존재 자체가 농담같게만 들리는)은 현재 상당히 바쁘기 때문에 지금 여기 오는 것도 꽤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나를 보러 온 거지요?"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레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꽤 긴 길이의 그것을 들키지 않고 가져오기 위해 아마 주술 같은 것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내 손에 쥐어주고서 그는 말했다.
"유품이라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인사를 남기고 그는 병실을 떠났다. 그 날, 나는 그가 전해주고 간 낯익은 검의 칼집을 쥐고 하루종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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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0개로 끊어쓸 거 같은데 과연 분량이 맞춰질까

Posted by 대나무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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