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숯 2018. 11. 16. 10:59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시오를 안정시키는 동안 돌봐줄 다른 도검을 받으러 현세로 가겠다고 하니 카슈가 따라오겠다고 졸랐다. 오오쿠리카라는 관심없는 눈치였고 그래서 자연스레 하세베도 아웃. 츠루마루는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는데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다. 다음엔 츠루마루를 데리고 가기로 하고 일단 이번엔 카슈랑 왔다. 겸사겸사 나와 카슈의 정신감정도 받기로 했다.

-멀쩡한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담당자 놈이 건성으로나마 나한테 사과했을 정도면 내 상태가 지금 말이 아니란 뜻인데 좀 당황스럽다. 이제 자살시도도 안하고 자해도 안하고 밥도 세끼 잘먹고 있는데. 암튼 그래서 약을 받아왔다. 그냥 세끼 식후에 먹어주라고 하는데 굳이 약까지 먹어야 되나? 나는 괜찮은데. 아프지 않으니까 미치지 않았는데.
카슈의 결과에 대해서는 따로 서류로 받았다. 카슈는 내가 그걸 받는 걸 보고 나는 몰라도 상관없으니 대신 주인이 잘 읽고 나를 더 알아주고 귀여워해달라고 웃었다.

-담당자에게 사요 사몬지를 받았다. 시시오는 역시 심했다고 장난이 지나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데 때리고 싶었다. 카슈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칼자루에 손을 가져가는걸 열심히 제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사요 사몬지에게 심한 일을 당한 적은 없다. 초기에 먹고 있던 빵을 나눠준게 도움이 됐는지 그 혼마루의 사요 사몬지는 가끔은 나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요 사몬지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어라.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가? 뭔가 잊고 있지 않나?
게이트까지 마중나온 츠루마루에게 부탁한 게임기를 건네주었다. 오오쿠리카라와 하세베는 딱히 원하는게 없다길래 난감해하다가 현세의 간식거리를 사왔다. 다행히 둘 다 맛있게 먹어 주었다.

-사요 사몬지를 현현시키기 전에 카미다나의 시시오와 다시 교감을 나누어 보았다. 처음보다는 약간 안정되어 있었다. 영력을 부어 재액을 떨궈낸뒤 천천히 쉬라고만 말해주었다. 시시오는 전처럼 심하게 떨지 않았다. 아직은 시시오가 무섭지만, 이 시시오는 나와 아무 관련이 없으니까. 조금은 안타깝고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났다. 아. 곤란한데. 담당자...나쁜 놈.

-사요 사몬지를 현현시켰다. 삿갓이 없었다. 나중에 장을 보러가면 삿갓을 사다줘야겠다. 상처투성이로 나타난 사요를 수리한뒤 따로 방을 내주고 쉬게했다. 아, 그전에 사요를 앉혀두고 미리 말해두었다.
딱히 위해를 끼칠 생각도 없고 행동을 강제할 생각도 없다. 네가 편한대로 지내도 좋다. 다만, 형들을 만나고 싶다면 곤란할 것이다. 나는 단도를 하지 않고, 전장에서 얻은 검을 가져오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본성의 코우세츠 사몬지라면 데려올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우자 사몬지는 데려올 수 없다.
그말에 사요는 갸웃거리다가 어째서냐고 물었다. 대답하려다가 목까지 올라온 말이 틀어막혔다. 겨우 기억난 조각난 이미지들. 빨간 피, 뼈, 파헤쳐진 근육, 드러난 발목, 걷지 못하고, 일으켜진 채 부러지고, 만신창이, 아픔, 슬프게 웃는 입매, 다른 색의 눈동자, 단절, 암전, 단편적인 수십개의 이미지가 목을 틀어막는다. 사요는 가만히 입을 틀어막고 구역질을 참는 나를 바라보다가 당신은, 형에게 복수하고 싶은 거구나. 이해했어. 의견을 존중하지. 라고만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그것에게는 복수조차도 할 수 없다. 이렇게나 두려운데. 무서운데, 기억조차도 가라앉아 숨어버릴 정도로 두려운데.

-숨도 못쉴 정도로 두려울때는 다른 곳으로 신경이 쏠리게 하는게 낫다. 이럴때는 치유력이 고맙다. 아무리 그어대고 찢어대도 멀쩡해지니까 아무도 모른다. 손목을 몇십번 정도는 그어야만 익숙한 기분이 든다. 바람도 칼날도 다 춥던 그 곳에 있는 것 같은 익숙한 기분이 든다.

-하루종일 야단맞고 벌을 섰다. 모를줄 알았느냐며 옷자락에 튄 피를 가리키며 츠루마루가 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 팔도 다 걷었었는데. 다음부터는 손목을 긋기 전에 옷을 다 벗어야겠다. 하세베를 뺀 나머지가 다 돌아가며 잔소리를 하고 나서는 대표자인 츠루마루가 손들고 벌을 서고 있는 내 목에 '몸을 소중히 하겠습니다' 라고 쓴 팻말을 걸어주었다. 창피하다.

-점심 메뉴는 고기였다. 유독 내 앞에만 고기가 많다. 하세베를 원망을 담아 바라보자 무덤덤하게 피를 많이 흘리셨으니까요. 철분이 많은 요리를 준비할까 해서 간을 사왔습니다만, 주인께서는 아마 못 드실거 같아서. 대신 다른 음식을 준비하고 정부에 철분제를 요청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세베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안쓰는줄 알았는데. 열심히 다 먹었다. 당분간 고기는 패스.

-나 진짜 멀쩡하다고 왼팔을 흔들어 보였는데 아무도 안 믿어줬다. 치유력 있다고 말했잖아....카슈가 대경실색하며 방으로 나를 밀어넣더니 따라들어와선 문앞에 버티고 앉았다. 누워서 자. 안그러면 기절시켜서 재울거야. 농담이 아닌거 같아서 누워서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을 깼다. 문가에 기대 잠든 카슈가 화들짝 놀라 깨어나더니 내게 다가왔다. 괜찮아? 하고 걱정스레 들여다보는 붉은 눈동자. 땀으로 흠뻑 젖어서 깨어난 나를 바라보다가 자기 소매로 이마를 닦아주면서 바보야. 아픈 꿈은 그만꿔야지. 라고 말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면 나는, 악몽도 기억도 그렇게 쉽게 없어진다면, 나는.
카슈를 끌어안고 누웠다. 미안, 땀냄새 날텐데. 라고 사과하자 카슈는 대답대신 자자. 우리 주인. 하고 그냥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치유력이 대단한 모양이지만, 이대로 치유시켜봤자 다 부서진 다리밖에 남지 않을 텐데. 자르고 다시 돋아나게 하는게 낫겠지요?
꿈속에서 그 한마디가 기억났다. 소우자 사몬지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가는 실톱을 던져주었다. 내 앞에 놓인 휠체어에 앉아있는 소우자 사몬지의 무릎 밑으로는 살이 없다. 뼈 뿐이다. 정강이뼈는 잘렸다 다시 붙은 자국이 있었고, 그나마도 묘하게 굵기가 달라 어긋난 접합부가 보인다. 아, 정말로....새의 가느다란 다리 같구나. 분홍색, 피눈물을 흘리며 우는 새장안의 새.
자, 어서.
나는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울어도 저며진 살과 박살난 뼈가 원래대로 멀쩡히 회복되진 않는다. 시간은, 애원은, 눈물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타는듯이 아프다.
나는 머뭇거리며 허벅지 위에 톱날을 세웠다. 힘을 줘서 당기지 못해 빨간 줄만을 허벅지 위로 자꾸 그어대면서.

-아침에 일어나다가 눈앞이 깜깜해져서 넘어졌다. 도검들한테 또 새삼 혼났다. 그러게 왜 피를 그렇게 많이 흘리냐며 절대 피흘릴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방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엄명을 받았다. 내가 주인인데.

-자기들끼리 알아서 출진을 나간 도검들이 성과를 보고해왔다. 검을 주워오지 말라는 부탁을 들어주어 다들 약간의 자원만을 들고 들어왔다. 연도가 유난히 높은 카슈만이 혼자 내가 나갈 만한 곳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달래주고 대신 원정이라도 다녀올래? 라고 물어보았다. 주인이랑 같이 가는거면 몰라도, 혼자는 싫어. 하고 카슈는 웃었다.

-오늘치 약은 다 잘 먹었나. 고개를 끄덕이자 오오쿠리카라는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케이크 상자를 내게 주었다. 츠루마루가 주라더군. 하고 말하면서. 츠루마루는 나보다 더 정부몰을 잘 쓰는거같다.
몽블랑 케이크는 맛있었다.

-카슈가 같이 자 주었다. 꿈은 꾸지 않았다.

-츠루마루가 몽블랑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쿠리 꼬마도 참 재미있는 면이 있단 말이지, 라고 말하면서.

-밭 옆에 감나무 묘목을 심었다. 밭에 영력을 불어넣으면 겸사겸사 감나무도 쑥쑥 자란다. 사요가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츠루마루가 함정을 파다가 사요를 보고 깜짝 놀라서 자기가 함정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직접 봤다면 나는 웃었을까, 웃을수 있었을까.
흙구덩이, 차갑고, 깊고, 위로는 차가운 조소가. 기억하는 것은 이렇게도 힘든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