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데리고 있는 네 도검들에게는 내 사니와명조차도 말하지 않았다. 그건 전의 혼마루에서 쓰던 이름이라서 계속 그 이름으로 나를 칭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다른 이름을 짓지 않은 것은 내가 이름을 짓는 센스가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이름은 나의 초기도에게서 받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용모도 언동도 우아함이 없으니 하다못해 임시 이름이라도 우아하면 어떨까.' 그렇게 말하면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노래(謠), 연꽃(蓮). 둘다 나한테는 웃기도록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카센이 그렇게 지어준 이름을 불러주는 동안에는 내가 정말로 그런 것이 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카센에게 어울리는 그런 주인이 된 것만 같아서. 그래서 행복한 기분이 드는 이름이었다.
-갑자기 왜 이름에 대해 이야기했느냐면 카슈가 이름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너, 그 다음에는 주인.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더 알고 싶은 거냐고 묻자 카슈는 그치만 주인은 내 이름을 알잖아. 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거 같기도 하고. 살짝 카슈를 쓰다듬어주며 본명이 아니어도 괜찮느냐고 물어본뒤 괜찮다 해서 말해주었다. 카센이 몇십번이나 쓰게 해서 겨우 익힌 한자도 손바닥에 써서 가르쳐주자 묘한 표정을 짓다가 이상해, 안 어울려. 라고 말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대체 왜 웃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카슈는 약간 부루퉁하게 있다가 슬쩍 사니와명으로 나를 불렀다.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오랫만이다. 가만히 있다가 카슈에게 말했다. 네가 말하니까 우아함이 없이 들리네. 카슈는 그 말에 볼을 부풀리더니 주인은 원래 우아함이 없어. 라고 맞받아쳤다. 다시 웃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본 너는 피투성이로, 헤시키리 하세베에 꿰뚫린 채로 웃으면서 내 이름을 불렀었다. 피섞인 목소리로 부른 내 이름은 너무도 낯설고, 듣는 것만으로도 아프고, 그러면서도 이끌리는 이름이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슬픈 생각만 나는 날이다. 나를 왜 부른 걸까. 데려가 주려고?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네가 걱정한 것처럼 재액이 들어차 신역이라 부를 수 없는 공간에서라도 나는 너와 둘이 있다면 행복했을 텐데.
하필 이럴때 하세베가 눈에 띄어서 움찔했지만 하세베는 나를 흘깃 보고선 그냥 오오쿠리카라 못봤느냐고만 물었을 뿐이다. 저 녀석이 저 따위라서 다행이었다.
-간만에 컴퓨터를 켜서 사니와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글들을 읽다가 문득 충동에 우리집 하세베는 주명의 주자도 입밖에 안꺼낸다라고 말하자 갑자기 리플이 후두둑 달렸다. 야 그거 엄청 심각한거 아니냐/히이익 어디 블랙혼마루냐/주명맨한테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등등이었다. 내가 왜 그걸 생각을 못했지. 저 녀석, 멀쩡해 보이는데 지금 여기서 가장 이상한 놈이었다. 슬쩍 하세베를 불러서 내가 주명으로 오오쿠리카라랑 떨어지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하자 웃으면서 바르지 못한 주명이라면 따를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주인의 목을 쳐서 그 그릇된 주명을 철회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놈 정말 미친놈 아냐. 아 원래 그랬었지.
-저녁을 먹고 나서 혼자 방에 있으니 츠루마루가 술을 마시자고 찾아왔다. 다른 도검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기에 같이 마시기로 했다.
-다시는 츠루마루랑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아침에 일어나니 츠루마루가 해장국을 끓여다주며 어제 했던 말들은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이래서 도검남사들과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 고개를 젓자 츠루마루는 웃으면서 그래그래, 가끔은 솔직해지기라도 해야지. 라고만 말했다. 궁금해 죽을거 같았다.
국물을 한술 떴다가 그대로 뿜어내버렸다. 츠루마루는 어라 하는 표정으로 그 네모상자에서 설탕은 좋은 조미료라 팍팍 써야 맛이 난다고 하였는데, 아닌가? 라고 말했다. 그래...이 영감탱이한테 뭔가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다.
-그러고 보면 그때는 카센이 요리를 해줬었지. 지금은 카센이 없다. 사실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를 다시 보는 것만큼 카센을 다시 볼 자신이 없다. 단도실에 못질을 한 건 그런 의미였다.
요리는 나와 하세베가 하게 되었다. 사실 하세베가 거의 다하고 나는 밥짓기나 그외 야채를 써는 등 자잘한 도움 정도가 고작이지만. 하세베의 요리실력은 굉장했다. 다만 오오쿠리카라가 좋아하는 음식만 하고 있어서 그렇지. 오오쿠리카라가 밥을 먹으며 벚꽃잎을 하나 둘씩 날리고 있으니 뭐 좋은게 좋은 거라고 하자. 덧붙여 나는 고기보다 야채반찬이 좋지만.
-카슈를 뺀 나머지 세 도검에게 하코다테의 출진을 부탁했다. 슬슬 정부에도 어느정도로는 실적을 올려야 하니까, 아직 연도가 부족한 츠루마루와 오오쿠리카라,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은 하세베도 그 정도면 성과를 거둬올 것이다. 도검들이 없는 동안 각 도검들의 상태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카슈가 놀아달라 조르길래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보고서를 다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보니 카슈가 잠들어있길래 그냥 도검들이 돌아올 때까지 있었다.
-오오쿠리카라가 적장을 베었다고 자기일처럼 들떠선 신나게 이야기하며 오오쿠리카라를 칭찬하는 하세베를 보고 있으니 참 묘한 기분이었다. 오오쿠리카라도 마냥 싫지는 않은 거 같았다.
-오오쿠리카라가 주웠는데 어떻게 할 테냐고 작은 단도를 하나 내밀었다. 이때만은 도검 모두가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혼마루의 도검들은 내가 겪은 일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 낯익은 단도다. 그 수많은 단도들이라도,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사용되냐에 따라서 다 구분할수 있다. 나는 이 단도가 몇번이나 오른쪽 팔에 박힌채 살을 찢고 근육을 끊으며 휘저어지던 걸 기억한다. 흐트러지는 물결같은 날.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뒤 조용히 단도를 들고 도해실로 들어갔다. 한쪽에 놓인 제단에 단도를 놓고 공양한뒤 도해했다.
그 때 영력에 이상이 생겨 회복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흔적은 남아 나는 자주 오른손으로 든 물건을 떨어뜨리곤 한다.
-저녁을 먹지 않았다. 벌어진 피부 속으로 보이는 빨간 살만이 생각난다. 카슈가 괜찮느냐고 걱정스레 묻길래 그냥 식욕이 없다고 말하고는 쓰다듬어주었다. 그래도 불안한 표정으로 계속 올려다보길래 결국 밥상머리로 끌려갔다.
-오오쿠리카라가 사과했다. 당연한 일을 한거 뿐이니까, 내가 나쁜 거니까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타일렀다. 그러자 고개를 저으며 이제 검은 되도록 가져오지 않겠다고 했다.
-담당자와 대화했다. 딱히 검을 단도하거나 전장에서 검을 얻는것에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도검들에게 전장에서 얻은 검은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겠다.
지금 케어를 기다리는 도검들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 말하는 담당자의 목소리가 놀랍게도 무겁다. 그 희귀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미카즈키 무네치카까지도 블랙혼마루에서 구출되고 있다는데 참 말세다.
-"그래서 슬슬 또 하나 받아갈때 됐잖아요, 코우쨩."
"내 정신건강을 신경써줬으면 좋겠는데. 사니와한테는 복지도 없냐 복지. 그리고 그 복지의 시작으로 그 애칭부터 좀 관두고."
"에에 코우쨩은 코우쨩인데. 나말고는 이름 이렇게 다정하게 불러줄 사람도 없잖아요. 아, 지금 카슈가 그렇게 불러줄 거라고 말할려고 했죠? 츠쿠모가미한테 이름, 생일 발설 금지인건 코우쨩이 가장 잘 알거니까 그런일은 없을걸요."
"아......너 진짜 싫다."
"뭘 새삼스럽게. 아무튼, 그러니까 한번 현세로 좀 나와서 사람도 좀 만나고 그래요, 이번엔 코우쨩 트라우마가 좀 덜한 애로 데려가도 되니까."
-이 사기꾼이. 확실히 시시오 자체는 나한테 큰 상처를 입힌적은 없다. 하지만 그 어깨에 두르고 있는 누에는 별개다. 한입만에 배가 반정도 날아갔었다. 트라우마가 덜하다니 개뿔. 담당자 자식이 내가 전 혼마루에서 쓴 보고서를 안봤거나 아니면 그냥 사기꾼이거나 둘중 하나다.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어질거 같은 기분이었다. 간만에 또 토했다.
-사실 동물관련으로 가장 무서웠던건 고코타이였다. 크게 한입 먹히는 것보다 작게 지속적으로 뜯어먹히는게 더 고통스럽다.
-카슈가 괴로우면 현현시킬 필요 없다고 다독여주었다. 착한 아이다. 하지만 카슈를 볼수록 그럴 수가 없다. 카슈같이 고통받은 다른 도검을 받아와놓고 그냥 내버려두는건 여러가지로 뒷맛이 나쁘다. 그대로 카슈에게 말해주자 카슈가 짜증을 내면서 왜 나한테 해준대로 남한테까지 해줘야 하냐고 투덜거렸다. 주인은 나한테만 잘해줘도 되는데, 라면서.
-시시오의 현현은 잠시 미루는 대신 본체에 직접 소통을 시도해보았다. 본체에 손을 대고 영력을 흘려넣자 극심한 거부감이 전해져왔다. 시시오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손길에 극도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현현한 몸이었다면 손을 갖다댈 때마다 움찔 놀라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거의 애원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서류에는 그저 케어 이유가 폭력으로만 기재되어 있었는데, 뭘 얼마나 때렸길래 이모양인지. 안타까웠다. 본체가 그럴 의도가 생길 때까지는 현현하지 않을 생각이고, 카미다나에 모셔두고 부정을 정화하기만 하겠다고 전한 뒤 담당에게 보고하고 다른 도검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