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숯 2018. 11. 16. 10:49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혼마루는 혼돈과 파괴의 나날이었다. 원래 자상벽이란 게 함부로 고쳐질 게 아니라는 건 나도 해봤으니까 안다. 요즘은 카슈가 울고 화내니까 안그럴 뿐이지. 그래서 나도 츠루마루에게, 카슈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해주기로 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칼자루에 손만 대도 난리를 피우면서 나도 똑같이 자해할거다 하고 공갈협박을 걸었다. 나같은 게 울어봤자 카슈처럼 귀엽긴 커녕 징그러울테니 울진 않았다.

-귀찮아서였는지 츠루마루의 자해 횟수는 좀 줄어들었다. 천만다행이다. 그 하얀 옷에 피가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특수세제를 요청해야겠다.

-이러고 있으니 우스운 일인데 오오쿠리카라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냥 추측이지만 자기가 깊은 죄책감을 안고 있던 츠루마루가 툭하면 나한테 귀를 잡혀 끌려와서 수리받는걸 보면서 안도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그래도 이 혼마루에서 그나마 오오쿠리카라 정도는 일반 도검들이랑 비슷하게...음, 무리하게라도 그렇게 봐주려면 못 봐줄 건 아니다. 나중에 출진을 보냈을때 다쳐 돌아오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츠루마루를 마루에 무릎꿇려 손들게 했다. 옷이 온통 새빨갛길래 눈을 뗀 사이 할복이라도 한줄 알았더니 염료를 가지고 장난친 거였다. 대체 물품 신청할때 언제 빨간색 염료를 끼워넣은 건지. 그래도 이정도 장난이면 양호하지 않을까.
문득 전의 혼마루가 생각났다. 그 혼마루에 있던 츠루마루는 상당히 이상한...음, 정정하자. 끔찍한 장난을 즐기는 편이었지. 이지메당하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칼에 찔리는 게 나았을 텐데. 속이 안 좋아지니까 그 때 일은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오오쿠리카라가 발도하고 츠루마루를 쫓아가고 있었다. 둘다 상당히 사이가 좋아진거 같아서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까 혼마루에 콘노스케가 없다. 지금 우리 혼마루에는 딱히 콘노스케를 오체분시할 도검도 없는거 같아서 도검들의 의견을 들은뒤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보들보들한 털달린 동물은 모든 인생에 필요하다, 나같이 굴곡진 인생에는 더더욱 필요하다.

-단도실에 못질을 했다. 도검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만나고 싶지 않은 것들이 한가득, 만날 수 없는 것이 하나.

-낯익은 여우꼬리가 살랑거린다. 동시에 안좋은 소식도 하나 가져왔다. 카슈와 오오쿠리카라, 츠루마루에게 헤시키리 하세베에 대한 안좋은 추억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을거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츠루마루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는 주인은 어떠한지? 웃는 얼굴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츠루마루는 자기 자신을 챙긴뒤 남을 챙겨, 주인이나 우리나 병든건 마찬가지다. 라고 말했다. 과연 할배라인...제법 날카롭다.

-잊으려면 무엇을 잊어야 하는지를 짚어내야 한다. 그러니까 결국 잊으려면 생각해내야 하고, 생각해내면 괴로워진다. 그래도 일단 결정된 일인 이상 서류를 보고 있으면 그 혼마루의 헤시키리 하세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지옥에서 헤시키리 하세베는 내게 손끝 하나 대지도 않았고, 내게 적의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카센을 부순 것은 헤시키리 하세베였다.
어쩌면 나는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육체적으로 내게 손상을 가장 많이 준 것은 호타루마루였고, 가장 큰 고통을 준 것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였다. 하지만 나에게서 가장 많이 빼앗아간 것은 헤시키리 하세베였다.

-이 자 때문에 제게 주명을 내려주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아니야. 너희는, 내게서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지, 굳이 말하면 내가 전임의 죄를 짊어지고 그가 받을 고통을 받는거 뿐이었겠지, 너도 내 주명 같은거, 필요 없으면서.
내 검이 아닌데, 내 검은 카센 뿐인데, 그걸 알면서 너는 내 앞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숨이 막힌다. 숨을 쉴수록 고통스럽다. 흐린 시야 너머로 모란꽃이 떨어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나는 거기서 떨어져야 했다.
나는 너와 피안에 가지 못해 고통스러운 것이다.

-천장에 천을 달아 카센의 칼집을 가로로 매어 보았다. 제법 튼튼할 거 같다. 천으로 고리를 만드는게 훨씬 더 제대로 죽을 확률이 높겠지만 이게 좋다. 카센의 칼집에 목이 졸린다면, 카센의 손으로 목이 졸리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카센에게 죽는다면 그것도 공열지극이다.

-카센 대신에 카슈에게 혼났다. 매어둔 칼집을 떼어선 그걸로 때렸고 나는 그냥 맞고 있었다. 맞을 일을 했다는 자각은 있다. 계속 울면서 아무렇게나 칼집을 휘두르더니 결국 지쳐서 주저앉아선 카슈가 주인 같은거 정말 싫다고 소리쳤다. 미움받을 짓을 한건 사실이니까.

-오오쿠리카라가 방을 찾아왔다. 버거운 침묵이 한참이나 이어진 뒤 오오쿠리카라가 말했다. 혼자 죽는 건가. 그러고 싶지만 죽진 않을 거라고 대답하자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니나가를 만나게 해준 주인이다, 혼자 죽게 두지 않아. 그렇게만 말하고 자리를 떴다. 황망한 상황이었다. 절대로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살시도에 대해 화내는 거라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다른건 몰라도 츠루마루에게 혼나는건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도 카슈에게 사과하라고 한 충고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카슈는 곰인형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 잔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혹시 그건 나를 그렇게 해버리고 싶다는 의사표시인지를 슬쩍 물었다가 자기 본체를 던지는 바람에 이마에 혹이 났다.
카슈가 안겨왔길래 얌전히 안고 토닥여주자 울면서 말했다. 나는 주인에게 귀여움받는게 좋아. 주인이 주인이라서 좋은 거야. 그러니까 주인이 죽는건 싫어. 주인이 없으면 나는 또 자꾸 떠올려 버리는데.
처음부터 이런 관계는 좋을게 하나도 없다. 아픈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를 치유하라니, 다들 자기가 가장 아픈데 누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카슈는 말했다. 첫번째가 아닌건 알아, 그래도 주인의 검으로 삼아줘. 부탁이야.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연신 훌쩍거리더니 새끼손가락만 편 왼손을 내민다. 약속해.

-약속했다. 미친. 츠쿠모가미랑 함부로 약속같은거 하면 안되는데, 아무리 작은 거라고 해도.
그래서, 나, 카센하고도 약속 하나 한 적 없었는데.

-그 난리를 피운지 조금 지나 결국 헤시키리 하세베를 받아왔다. 그 전날은 하루종일 그 혼마루에 있던 것과 여기 올 것은 다르다고 자기세뇌를 해야만 했다. 혹시 모르니 다 같이 모여서 현현시켜야 한다고 카슈가 떼를 쓰는 바람에 모두 모였다. 혹시 몰라서 연도가 어떻게 되는지를 묻자 카슈 외에는 의외로 다들 연도가 낮은 편이었다. 오오쿠리카라는 사니와가 괴롭히느라, 츠루마루는 사니와가 너무 아끼느라 출진을 거의 시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슈는...아마 '실전' 으로 연도가 높아진 거겠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카슈가 옆에서 흉흉한 기세로 금방이라도 발도를 하려는 자세를 하고 있는 가운데 헤시키리 하세베를 현현시켰다. 지친 청보라색의 눈으로 방안을 둘러보던 하세베는 한참을 오오쿠리카라를 바라보다가 비틀거리며 다가가서는, 그자리에서 오오쿠리카라를 끌어안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같이 받은 서류를 보니 그 혼마루에 있던 도검들은 다른 도검과의 성교를 지속적으로 요구받았다고 한다. 하세베의 상대는 도파적으로 연관이 있던 오오쿠리카라였고, 약물이나 암시를 섞은 지속적인 행위 끝에 오오쿠리카라를 사랑한다고 착란을 일으킨 상태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전 혼마루에도 제법 있었지, 힘드니까 서로 지탱하는 녀석들. 그런 거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오오쿠리카라에게 하세베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오오쿠리카라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했다.

-사실 하세베가 나한테 주명 운운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하세베는 주인은 안중에도 없고 오오쿠리카라에게만 신경쓰는 타입이라고 한다. 오오쿠리카라의 정조를 걱정했는데 딱히 그렇게 찐득한 관심도 아니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많이 말랐구나, 이 상처는 무엇이냐, 등등 그냥...가족같은 느낌이었다. 헤시키리 하세베의 탈을 쓴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오오쿠리카라가 안 보일 땐 마치 우구이스마루가 오오카네히라 찾듯 오오쿠리카라를 찾는다. 혼자 있는걸 즐기는 녀석한테는 정말 고통이 따로 없을 테지만, 일단 나는 안심이다.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나름 편안하다. 츠루마루가 표정이 많이 폈구만, 하고 키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