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숯 2021. 6. 17. 08:27

-혼마루도 아직 없고, 사니와로서도 한참 미숙한 견습사니와가 나는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단도실의 식신이 건네주는 예상시간 중 그렇게나 많이 나오는 1시간 반, 나오는 검 중에는 너만이 없다. 심술이라도 부리는 걸까, 그런 우아하지 못한 짓은 좋아하지 않을 텐데. 오늘도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눌러 지우고서 견습사니와의 연수를 도왔다. 그녀와 그녀의 초기도가 머무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며칠동안 방에서 밥을 먹다가 하세베에게 끌려 모두와 식사를 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시는 줄 알아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으시면 다들 불안해합니다." 
 "안한다니까." 
 "견습사니와와 카센 카네사다는 자신들의 처소에서 따로 식사를 하고 있으니 주인께서 행동을 삼갈 이유가 없을 텐데요." 
 "넌 우울하다는 게 뭔지 모르지?"  
주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습니다, 라며 또 하세베가 이죽거렸다. 가끔, 형이 있으면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한다. 유독 내 앞에만 고기를 많이 갖다놓는 얄미운 모습을 볼 때면 더욱. 
 
 -수행가고 싶다고 아이젠 쿠니토시가 떼를 썼다. 
 "안돼." 
 "도대체 왜?!"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와서 자신이 수행을 다녀오면 혼마루의 재정을 더 윤택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는 하카타를 물리치는 데 한참이나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렇게 둘을 겨우 물리치고 나니 은근슬쩍 눈치를 보던 단도들도 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장. 우리가 강해지는 게 싫어?" 
 "그런 건 아니지만." 
 "아니면 대장이 가지고 있다던 그...트라우마, 같은 거야?" 
 다르다. 이 혼마루에 있는 남사들이 나를 해칠 거라는 생각이나 두려움은 그다지 없다.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다만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남사들은 크든 작든 사니와에게 더 마음을 쏟는다고 들었다. 굳이 나 같은 것에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정말로 다들 수행을 가고 싶어한다면 그 때는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좋겠지.
 
 -다른 혼마루에는 적어도 두셋 이상의 수행을 마친 단도들이 연련멤버로 나오는지, 남사들이 연련에서 지고 분통을 터뜨리는 횟수가 늘어간다. 슬슬 불평을 쏟아낼 시점이니까 나는 아픈 척이라도 연습해 봐야겠다. 우리 혼마루의 남사들은 나의 '아프다' 는 말에 매우 약하다. 그러니까 그 상냥함에 기대도 무슨 말은 하지 않겠지.
그래도 너무 많이 지고 오면 다들 기가 죽을 텐데...대책을 생각해 둬야겠다.
 
-밖에 나와서 남사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햇빛도 좀 쬐라는 타박을 받아서 오후에는 그냥 마루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살짝 졸았다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어느샌지 히자마루가 옆에 앉아있었다. 자주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던 검이라 약간 낯설다. 히자마루는 내가 깬 건 아직 모르는지 옆에 앉아서 혼잣말로 한탄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도 나 못지 않은 난민이었다.
형님께서는 도대체 언제 오시는 건지, 아무리 케비이시를 베어도 오지 않는다면서 한참 투덜거리는 히자마루를 보고 깬 기척을 해줘야 할지 아닐지를 고민하다 결국 과장되게 하품을 하며 지금 깬 척을 해주었다. 
"아, 일어났나."
"덕분에."
"시끄러웠다면 미안하다."
"아냐, 그보다 나야말로 왠지 미안한걸."
혹시라도 들은 거냐고 당황하는 히자마루는 조금 귀여웠다. 왠지 동질감이 느껴져서 나도 그 옆에서 한탄이나 늘어놓아 보았다. 뻘뻘거리던 히자마루는 나중에는 내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같이 힘내자는 말까지 해주었다. 남사에게 동정받은 기분이 드는데 괜찮은 건가 싶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항상 그 동정에 기대고 있구나. 
그나저나 우리 혼마루에는 아직 없는 남사가 너무 많다. 나 혼자서만 카센이 없다고 궁상을 떨면 미안한 일이니까 조금 더 든든한 사니와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늘도 초기도를 대동하지 않고 연수를 받으러 온 견습사니와에게 나는 괜찮으니까 카센을 데리고 있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 동안 미안했다는 사과도 같이. 그녀는 머뭇거리며 괜찮냐고 물어봐주었다.
나는 정말로 괜찮다. 사랑과 그리움을 가지고 그를 찾고 있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오늘 가르쳐야 할 부분을 끝내고는 드물게도 그녀와 약간 더 대화를 나누었다. 전보다는 언동이 조금 차분해진 견습은 블랙 혼마루에 대해 조금 더 물어왔기에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겪은 이야기는 아닌, 남들의 이야기 중에서 온건한 부분들만. 블랙 혼마루에 대해 관심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괜찮다면 지금 혼마루에 머무르고 있는 '치료중' 인 남사들과 이야기하게 해주어도 될 거 같아 물어보니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처럼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녀도 여기서 조금은 나아져 주는 걸까, 그러면 기쁜 일인데.
 
-카슈랑 둘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일부러 다른 신선조의 남사들을 원정보냈다. 속였구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카슈를 앉혀놓고 오랫만에 몰래 사둔 네일 폴리쉬를 꺼내서 발라주면서 말했다. 도망가고 싶어하는 표정의 카슈였지만, 그 와중에도 바르는 중인 네일이 신경쓰이는지 잡힌 손을 뺴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냥 미안했다고만 말했다. 카슈는 고개를 저었다.

"신경쓰지 마, 주인한테 화난 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그리고 내가 잘못한 게 맞는데."

"아...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나는 그저, 그저..."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카슈를 보고 있자니 더 미안해진다. 역시 내가 질질 끌고 혼자 처져 있던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남은 손톱에까지 선명한 붉은 색을 바르면서 나는 카슈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지금의 혼마루와 남사들이 제일 소중하다고. 카센을 데려와봤자 그건 내 남은 미련을 해결하는 거 뿐이고, 내가 그리워하는 카센이 돌아오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미련을 완전히 버리는 동안 조금만 지켜봐달라고.

카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금 울었다. 더 미안해졌다.

 

-아이젠이 몰래 수행도구를 꺼내서 혼자 수행하러 나가버렸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2017-06-17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