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숯
2016. 5. 28. 01:02
Q&A 1/50
Q: 이름은?
A: 사니와로서? 아니면 그냥 사람으로서?
Q: 편한 대로 대답해 달라.
A: 요우렌. 요쿄쿠(謠曲 노가쿠(能樂)의 사장(詞章)에 가락을 붙여서 부르는 것. 또는 그 사장.)의 요우(謠)에 연꽃(蓮)을 쓴다.
Q: 제법 운치있는 이름이다.
A: 지어준 사람 취향이 취향이라 그렇다.
내 전직, 어쩌면 현직은 사니와다. 신의 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신직. 지금은 역사를 바꾸려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역행군에 대처하기 위해 일종의 신인 도검에 깃든 츠쿠모가미들, 도검남사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불러내 시간역행군과 싸우게 한다는 계획에 없어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사니와가 없다면 도검에 무엇이 깃들어 있다 한들 불러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중요성에 비해 의외로 수는 많다. 억대에 달하는 시간역행군에 한 명의 사니와와 정부에서 사용을 허가한 몇십여자루의 도검으로는 수적으로 대항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정부는 신토를 응용해 시스템을 완성했다. 본래 존재하는 하나의 신을 여러 신사에서 모시기 위해 그 신을 모시는 유명한 신사에서 제신을 권청해 다른 신사에 모시는 것처럼 하나의 도검이 있다면 그 검을 하나의 신으로 삼아 수많은 분체에 그 신을 무한히 분령하여 여러 사니와가 각각 불러내어 싸움을 청할 수 있게.
사니와가 되며 기초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신이라 해도 결국 물건. 인간이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에 깃들어있는 츠쿠모가미. 신이 인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보다 격이 낮은 인간을 주인이기에 따르고 사랑한다. 그 결과는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어찌됐든 인간은 엇나가기 쉬운 존재다. 그런 존재에게 자신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르는, 본래라면 자신보다 훨씬 위의 것을 마음대로 손바닥 위에 놓고 가지고 놀 수 있게 했을 때는 어떻게 될까.
그 수가 크든 적든 길을 벗어나는 사니와는 생겨난다. 거기에서부터 하나 둘 씩, 지옥을 만들고. 고통이 생겨나고.
고통은 새로운 희생자의 목줄기를 물어뜯는다.
"식사를 안하셨네요."
"네."
"네가 아니라, 삼일째에요. 몸도 성하지 않은 분이 이렇게 고집부리시면 어떻게 해요?"
"고집부린 적 없어요. 물은 마셨잖아요."
"네."
"네가 아니라, 삼일째에요. 몸도 성하지 않은 분이 이렇게 고집부리시면 어떻게 해요?"
"고집부린 적 없어요. 물은 마셨잖아요."
간호사의 걱정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간호사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살짝 흘겨보다가 결국 한 발짝 물러서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는 말없이 침대에 상반신을 일으켜 앉은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간호사는 어쩔수 없이 오늘도 내게 입원중의 주의사항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일반적인 환자라면 하나하나 다 잘 지켜야 완쾌에 도움이 될 수칙들이다. 내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핏물에 처박혀서도 크게 벌어진 상처 입구는 아물고, 칼에 꿰뚫린 구멍으로 반대쪽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상처도 이윽고 닫혀버리는데 어째서 굳이 병원에 입원시키고 있는지는 대략 짐작이 간다. 정부는 사니와의 은퇴를 거의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기라도 하면 그 때는 더 잡아둘 수 없으니 순직으로 인정해주겠지만 나는 내가 죽을 수 있는지 가끔 의문이 든다. 그 혼마루에서 내 목을 베었던 것은 누구였더라. 뭐, 아무리 치유력이 좋대도 목이 베였을 때의 일까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무튼, 식사는 제때 하셔야 해요. 아셨지요?"
내게 진 간호사가 나가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잘리고 찢어져도 재생되는 몸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잘 모르겠고 그 혼마루에 있었을 때는 살아야 할 이유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시도하지 않았던 여러 방법을 하나씩 시도해서 죽어보는 게 맞지 않은가. 물론 각오가 아직 어설프다는 생각은 든다. 내일부터는 물도 그만 마실까.
손목을 내려다봤다. 며칠 전에 몰래 숨겼던 숟가락을 조금씩 갈아내서 깊게 쑤셔박았던 자리는 눈썹같이 새빨간 곡선의 흉터로만 남아 있었다. 그 완만한 곡선은 나를 비웃는 것처럼 끝을 치켜올리고 있다. 분명 보통 사람이었다면 즉사였겠지. 우습다. 나는 어차피 카센 카네사다를 잃었던 순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왜 아직 여기 남아있는 걸까. 빈 껍데기만이 남아서 늘어만 가는 흉터를 보고 헛수고라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연인을 따라 죽지조차 못하는 허무한 몸뚱아리가 비겁하게도 배고프다고 꼬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목이 탄다. 손 닿을 만한 거리에 물병과 잔이 놓여 있었다.
물병을 들어서 병실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 물통이 벽에 부딪쳐 일그러지고 충격에 뚜껑이 열리며 물이 왈칵거리며 쏟아져나온다. 상처구멍에서 터져나오는 피 같은 기세로.
내 초기도. 내가 처음으로 기댈 수 있었던 존재. 그것이 없는데 어째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 걸까.
"죽고 싶은데 말이야."
누구한테든 말하고 싶었던 말을 중얼거려 보았다. 당연히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 혼마루는 내 첫 혼마루였고 나는 평범한 신참 사니와였다. 당연히 목을 베여도 죽지 않는 괴물도 아니었다. 영력 기준치는 남들보다 높은 편이었다 해도 평범한 인간이었고 같이 교육을 받았던 다른 사니와들처럼 이제부터 시작될 시간역행군과의 전쟁에 기대를 품고 있었을 뿐이다. 내 혼마루가 이미 다른 사니와가 부임해 있던 곳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블랙혼마루라는 은어는 사니와들 사이에서는 도시전설 같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니까. 대체 어느 사니와가 자신이 다루어야 하는 소중한 도구이자 모셔야 하는 신을 그런 식으로 다루겠는가? 아무도 그런 것은 상상조차도 하지 않았으니까 진짜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마 어느 정도의 입단속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부임해 있던 혼마루라는 말에도 어떤 불안감 하나 없이 들어갔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불길하고 음침한 혼마루에 도착해서야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고,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 날 지옥은 나를 안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겨우 그 혼마루에서 나올 수 있었다. 더 일찍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카센이 없었다면 나는 거기서 1년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인간에 대한 적대심으로 뒤틀어진 재앙들의 사이에서 나는 그들에게 뺏긴 카센을 찾아 액기로 뒤덮인 혼마루를 찾아 헤매며 바늘꽂이처럼 꽂히는 적의와 갈곳없는 화를 받아들이기를 3년, 카센을 찾아낸 뒤에는 그를 구해내기 위해 또 2년을 반복하고 마지막은 겨우 옆에 돌아와준 카센을 모두에게서 지켜내기 위해 1년을 보냈다.
악몽같은 5년과 그래도 행복했던 1년의 끝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카센은 내 앞에서 부러졌고 나는 죽기 직전에 구출됐다. 도와준 사람들에게 피투성이가 된 채 운반되면서 나는 잘린 혀가 아직 재생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혀가 재생돼 있었다면 나는 그들에게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다. 어째서 하나가 살아있을 때에서야 왔느냐고. 둘 다 살아있거나, 둘 다 죽은 뒤에 오지 않고서. 왜 필요없는 나를 살려냈냐고.
그 뒤로 이 꼴이다. 비밀이 엄수된 정부 소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겨우 몸을 일으켜 앉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몸은 회복되었다.
몸 만큼은.
살짝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아까 그 간호사였다. 조금 전에 던졌던 물통이 문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는 나를 노려보는 것을 시선을 돌려 회피했다. 물통을 주워 테이블에 올려놓고서 그녀는 내게 면회가 있다고 말했다.
"면회라니요?"
나를 만나러 올 사람은 없었다. 나는 고아였고 친구도 없다. 약간의 궁금증과 언제나 상황에 휩쓸리며 몸에 배인 무기력함에 이끌려 나는 면회를 허락했다. 부러진 다리는 이제 겨우 뼈가 붙었기 때문에 내가 일어나서 나가지는 한다. 침대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간호사가 누군가를 안내해왔다.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몸은 많이 나았어요?"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 혼마루에서 나를 구해준 사람이었다. 나보다 키도 작고 훨씬 어려보인다. 20대 초반 정도일까. 고마워하고, 그 뒤로는 정말로 원망했던 사람.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덕분에. 감사합니다."
일단은 고맙다는 생각도 진심이기는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더 일찍 갔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사정은 다 있는 거니까."
대접할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다. 아까 던졌던 그 물통이다. 민망해하는 내 기색을 알아챘는지 그는 고개를 저으며 오래 있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블랙혼마루 대책반(존재 자체가 농담같게만 들리는)은 현재 상당히 바쁘기 때문에 지금 여기 오는 것도 꽤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나를 보러 온 거지요?"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레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꽤 긴 길이의 그것을 들키지 않고 가져오기 위해 아마 주술 같은 것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내 손에 쥐어주고서 그는 말했다.
"유품이라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인사를 남기고 그는 병실을 떠났다. 그 날, 나는 그가 전해주고 간 낯익은 검의 칼집을 쥐고 하루종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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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0개로 끊어쓸 거 같은데 과연 분량이 맞춰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