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完)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정갈한 얼굴을 조각조각 나눠놓은 거 같이 복잡하게 간 금을 보고 있어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제 와서 나는 당신을 미워하기에도, 측은히 여기기에도 벅찬 작은 그릇밖에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입꼬리를 살짝 당기는 당신의 얼굴에서 자그맣고 불온한 마찰음과 함께 손톱 끝만큼 작은 조각이 떨어져내렸다. 아주 작게 난 구멍 뒤로는 검은색만이 보인다. 그 틈새를 바라보는 나의 눈길에 당신의 눈길이 얽혔다. 금색의 눈동자를 감싸고 있는, 얼굴에 난 틈새와도 같이 검디검은 색으로 물들어버린 흰자위.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당신이 내게 웃었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랐어. 만나러 와 줬구나.
처음 만났을 때도, 나를 토막낼 때도, 내 살로 만들었다는 교자를 먹일 때도, 지금도. 당신은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분명, 당신을 미워하기에도 벅차지만, 그럼에도 온갖 감정이 흘러넘치는 것을 참았다.
나는 밋쨩을 꼭 만나야했어. 그래서 찾아온 거야.
-어째서니?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은 언제나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묻고서 답을 기다렸다. 내게 내 맛을 물어보고 대답을 기다릴 때처럼 참을성있게, 다정하게. 나는 그 이유를 더듬어보았다. 수많은 상처를 받고 아픔을 받았는데도 왜 꼭 당신을 만나야 했는지. 아직도 채 편하게 대할 수 없는 몇 자루의 도검들 중에 왜 꼭 당신이어야 했는지.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 혼마루의 모두 중에 당신이 가장 나에게 자상했거든.
......
나는 그걸 부정하고 싶어서 왔어.
하하, 그렇구나. 그러면 말해보렴.
나는 할 말을 살짝 떠올려본 뒤에 말했다.
그건 가짜였어.
살짝 눈을 가늘게 뜨더니, 부스러져가는 쇳가루와 함께 당신은 웃었다.
정답이야. 내게서 받은 것 중에 너를 향한 호의는 하나도 없어. 그걸 이제야 입밖에 낼 수 있게 됐다니 바보구나.
......
네게서 듣는 감사인사는 너무도 바보같아서 항상 괴로웠단다.
-당신의 상냥함은 나에게는 닿지 않았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잖아.
모든 상냥함에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나 자신에게 들려줘야 했다. 그래야만 내가 지금 받는 호의를 순수히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당신에게서 받았던 것이 가짜라고 못을 박아두고 나서야 나는 내게 지금 주어지는 것이야말로 진짜라고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고마워할 필요 없는 것이지. 그걸 알게 됐다면 이제 하나만 더 하면 완벽하겠네, 코우키.
당신이 부르는 내 이름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현현한 몸을 유지할 힘조차도 없이 부스러져가는 츠쿠모가미가 부르는 이름은 어떤 힘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태연히 나를 부르는 당신을 바라보고서 물었다. 그 하나가 무엇인지.
나를, 우리를 미워하는 것. 그걸로 편해질 수 있어.
......
그 미워하는 마음으로 내게 복수해보고 싶지 않니?
어떻게.
다른 사람의 혼마루라서 조금 문제될지도 모르지만, 나를 여기서 부숴버릴 수 있어. 네게는 그럴 힘도, 자격도 있지. 이렇게나 오염되고 부서져서 본령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더럽고 멋없어진 나를, 여기서 한 번 후려치는 정도로 그냥 쇳조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미워하는 것으로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내가 혼자 품고 있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잔뜩 흘러넘쳐버릴 정도로 많은 일을 당해야 했다. 아픈 것도 괴로운 것도 슬픈 것도 팔로 다 안고 있지 못할 정도로 한가득. 그래서 카슈를 만났을 때도, 오오쿠리카라를 만났을 때도, 츠루마루를 만났을 때도 매번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질질 흘리고 다니고 있었다. 그걸 누군가를 미워하는 걸로 버려버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너 때문에, 너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미워하면서 남 탓을 하는 것은 편하고 쉬운 일이다.
나는 그러지 않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온 거야, 밋쨩. 나는 밋쨩을, 미워하지 않아.
그러니.
미움받고 싶었지? 미움받아서 편해지고 싶은 거지?
내가 당신을 미워함으로 편해지고, 당신이 내게 미움받아서 편해지는 것도 선택지 중의 하나이고, 그게 나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조금 더 어렵고 불편한 길을 가보고 싶었다. 당신을 미워하지 않고 잊지 않고, 당신을 생각해도 괴로워지지 않을 때까지 나는 천천히 버텨보고 싶었다. 언젠가 내 기억이 다시 내게 날을 들이대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정도로 그 기억을 무디고 녹슬게 만들고 싶었다.
-작고 날카로운 쇳조각들이 투둑거리면서 떨어졌다. 꽤나 많이 부서진 얼굴을 하고 그는 웃었다.
끝까지 바보같은 인간의 아이로구나.
응. 바보 맞을 걸.
그렇다면 마지막 부탁만은 들어주지 않겠니. 네게 도해되는 것은 이룰 수 없는 소원이기에 네게 부서지고 싶었다만. 그것도 어떻게 할 수 없다면....이기적인 부탁인 것은 알지만 마지막을 지켜봐주지 않겠니.
-밤이 되어서야 혼마루로 돌아왔다. 모두가 게이트 앞에서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웃어주고 싶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았다. 울지 않는 것이 고작인 나를 두 개, 네 개, 열여섯 개, 수십개의 팔이 둘러싸고 안아주었다. 그 혼마루에서 받아온 손 안의 작은 옥강조각을 꼭 감싸쥐고서 손바닥 안에 박힐만큼 꾹 쥐고서 버텼다. 말없는 따스한 포옹들은 결국 악문 이 밖으로 새어나온 짐승같은 목소리를 말없이 안아서 숨겨주었다.
-그대로 가장 큰 방으로 옮겨졌다. 언제 이불을 펴놓았는지 다들 거기에 나를 눕히고는 자기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혼자있게 해달라고 말했지만 다들 말도 안된단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모두에게 둘러싸여 큰 방 한 가운데에서 눈을 감아야 했다. 눈꺼풀 안쪽이 턱도 없이 뜨겁고 축축했다. 어둠과 뒤집어쓴 이불로 겨우 가리며 잠을 청하고 또 청해야했다.
-집무실에 두고 있던 옥강조각을 단도실로 가져가서 수많은 옥강 사이에 던져두었다. 땡그랑. 작고 맑은 소리와 함께 그의 마지막 말이 들린 거 같았다.
바보같은건 여전하지만, 강해졌구나.
옥강조각은어디로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게 됐다. 그것이 좋다. 유품만이 늘어가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그 뒤로는 변함없는 시간이었다. 언제나처럼 가끔 어디선가 상처받고 들어오는 녀석이 있고, 이 곳보다 더 나을 곳으로 가는 녀석도 있다. 여기에 눌러앉아버리는 녀석들도 있다. 이 곳의 어디가 마음에 드는 걸까, 하고 항상 생각하면서 나는 가장 오래 눌러앉아있던 녀석들에게 괜찮다면 다른 곳으로 보내줄 수 있으니 나같은 녀석보다는 다른 주인을 섬기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혼났기에 그들에게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상처를 받았던 도검들이 천천히 나아져가면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들어온다.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사실 본래 그런 것이다.
-도장에는 남사들이 데리고 온 여러 도검들의 이름이 적혔다. 그럼에도 그리 귀하지도 않은 평범한 희귀도의 두 자루의 이름이 적혀야 할 부분은 비어 있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내가 직접 데려와야 하는 것이다.
츠루마루는 이제 내게 단도를 권하지 않는다. 아마 언제가 됐든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지켜보고 있는 거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둘 다 요리를 잘 한다. 아마 하세베가 한층 편해질 것이다.
혼자 단도실에 들어가서 손에 잡히는 만큼 자원을 식신에게 쥐어주었다. 그걸 받아든 식신이 조금 있다가 세 시간 쯤 걸릴 거라고 쓴 나무패를 보여주었다.
그 정도의 시간을 걸려 만들어지는 도검남사는 많다. 하지만 누가 올 지 왠지 알 것 같았다.
세 시간 동안 나는 단도실 안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웃는 얼굴로 맞아주고 싶었는데, 아마 그는 당황했을 것이다. 그가 처음 현현되어 한 일은 보기 흉하게 울고 있는 인간 남자 사람을 달래주는 일이었으니까.
덧붙여 겨우 그를 달래 데리고 나왔더니 다른 남사들이 흉흉한 시선으로 여차하면 발도하겠단 양 본체에 손을 대고 대체 사니와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고 캐물었던 것까지 더하면, 처음 현현된 그에게 여러가지로 미안한 일을 했다.
츠루마루와 오오쿠리카라에게 그를 부탁했다. 그러고 보면 오오쿠리카라의 부탁은 이제서야 들어줄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고 싶은 친구였으니까 사이좋게 지내줬으면 좋겠다.
-주방으로 들어갔다. 낯설고 익숙한 뒷모습이 하세베랑 같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주방을 나왔다. 이제는 괜찮다.
방으로 돌아와 가만히 업무를 보고 있으니 그가 아침을 준비해왔다. 평범한 식단이었다. 고기감자조림을 뚫어지게 보고만 있어서 그랬는지 왜 먹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가져갔다. 맛있었다.
......평범하고 맛있는 아침식사였다.
-그는 아마도 또 당황했겠지. 주인은 울보구나, 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나는 그 뒤로 몇 번인가 더 단도를 시도했다. 때로는 적은 양의, 때로는 많은 양의 자원을 넣어 보았다. 여러 종류의 도검들이 단도되었다. 하지만 원하는 검은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리 드문 검이 아님에도.
지금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걸로 됐다. 그래도 나는 계속 검을 만들어보고, 아직 이 곳에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릴 것이다. 다시 찾아오는 그를 다시 사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주지 못한 것을 지금 여기에서 주기 위해서이다. 비록 나를 지키고 사랑해준 그 카센 카네사다가 아니더라도, 새로 이 곳을 찾아오는 그에게.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괜찮다고 웃어주고 싶었다.
(사니와가 미츠타다를 만난 뒤 돌아오는 부분을 날려버려서 다시 썼지만 원래 내용이 기억나지 않습니다ㅠㅠ 2년이나 지나서 가필수정하는 꼴이 돼버려서 죄송합니다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