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숯 2018. 11. 16. 12:00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호오, 제법 무서운 물건을 가져왔구나.
그냥 톱이랑 망치야, 무섭고 자시고 할 게 어디있어?
그렇게 따지면 네가 자주 쓰던 드르륵거리는 칼도 그저 종이를 자르기 위한 것이 아니더냐.
이럴 때만 츠루마루는 정론을 취한다. 사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기도 하지만, 아무튼 나를 아프게 하고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하는 모든 일은 그만둘 생각이었기에 톱이랑 망치가 내 손에 들려있더라도 그것이 나를 해칠 도구는 되지 않는다. 내가 대답없이 톱이랑 망치를 공구함에 넣고 있자니 츠루마루가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제 와서 이게 필요한 이유는 뭐냐?
단도실 문. 그때 판자대고 못질해놨잖아. 뜯으려니 공구가 아무것도 없는 바람에.
......
왜 그래, 갑자기.
이제 와서 왜 단도실 문을 열려는 거냐.
너야말로 왜 갑자기 약해지는데. 심으라고 모란까지 주문했던 주제에.
츠루마루는 한참 말이 없었다. 살짝 승리했다는 느낌이 든다. 바보 츠루마루. 나를 위해서 내가 빨리 극복하라고 그렇게나 열심히 닦달을 해놓고서 정작 내가 단도실을 열고 제대로 다른 사니와들처럼 행동하게 되고, 그러다가 카센을 현현시키는 게 두려운 거다. 당연히 그렇겠지, 이전에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으니까. 바보, 그러게 정말로 무서운 건 물어보는 게 아닌데. 하지만 츠루마루답다. 그런 게 아마 용기겠지.
츠루마루는 계속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언제나 대담하고 활기차던 츠루마루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아직도 카센이 네 맘 속에서는 가장 큰지 묻고 싶다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너희만큼 크지 않아, 괜찮아.
거짓말이지만 진심이다.

-너무 커져버려서 이제는 오히려 의식하지 않게 되고, 만약 의식하게 되더라도 두 팔로는 다 들어올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이를테면 집 뒤에 있는 큰 산 같은 것이기에, 츠루마루가 원하는 것처럼 대답해주기가 힘든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작은 보석함과, 정말로 좋아하는, 매일 바라보는 풍경 중에 뭐가 좋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그것이 타당한 비교는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작은 보석함 쪽을 택했다. 너무 소중해서 절대로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작고 반짝이는 보석함을.

-단도실을 열기로 한 날은 출진도 원정도 없었다. 편하게 다녀오라고 했지만 다들 거부했고 나는 억지로 보내지 않았다. 내가 망치의 장도리 부분으로 단도실에 못박은 판자에서 못을 하나씩 뽑아내는 동안 다들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혼마루에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지로타치는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의아해하면서 니혼고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역시 오랫동안 운동이랑 담을 쌓아서 그런지 힘이 빠진다. 도와주려고 나서는 남사들이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하면 쉬엄쉬엄 하루나 이틀 정도 걸릴 것 같다. 긴 시간이다. 
역시 저희가...
아니야, 못박은 건 나니까.
그때는 영문도 모르는 남사들이랑 같이 판자를 대고 문에 못질을 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아는 남사들 앞에서 내 두려움을 벗겨내기로 했다.
결국 하루만에 다 끝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몇 번이나 망치를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오른손이 잘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먼지가 가득 쌓인 단도실을 청소하는 데도 또 꼬박 하루가 걸렸다. 깨끗해진 단도실 한가운데서 오랫만에 보는 식신이 고개를 숙였다. 당장 단도할 생각은 없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타도를 만드는 자원량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확률은 높다. 
태도를 만드는 자원량도 정해져있지 않다, 타도보다 확률은 낮다.
적어도 그 둘을 만드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이상해지고 망가질 확률은 꽤 낮아졌겠지.

-카슈와 신사를 청소하러 갔다.
사실은 태워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어.
나는 주인이 왜 신사를 안 태울까 하는 생각을 했지.
이럴 때는 카슈랑 죽이 잘 맞는다. 문을 활짝 열고 먼지를 털어내고 구석구석 화려하게도 드리워진 거미집을 걷어내면서 나는 마스크 속에서 조그맣게 대답했다.
안 태웠으니까, 나중에 다른 애들이 오면 아쉬워하지 않을 거야. 타로타치나 이시키리마루나...신사랑 잘 맞는 애들 있잖아.
정말, 괜찮아?
안 괜찮아.
사람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아질 거야.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기로 했다. 그렇게 말하자 카슈는 왠지 아쉬운 얼굴로 웃었다.
우리만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주인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게 맞을 거야.
너희가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니까.
알고 있어. 나도 츠루마루 씨도, 다 알아. 

-꿈 속의 혼마루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 쌓여있던 눈이 온기에 다 녹고 꽃이 흐드러지게 핀 폐허 속에서 나는 사방을 더듬어 깨진 칼조각들을 찾아 벚나무 밑에서 모양새를 맞춰보았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들고 있었던 칼집을 그 옆에 놓았다.
꿈 속의 벚나무에는 이제 벚꽃이 핀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한가득. 모란꽃이 언제 피었냐는 듯 연분홍색의 작은 꽃잎이 시야를 메운다. 그 벚꽃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또 찾아야 한다는 기분에 나는 또 꽃 사이를 헤맸다. 수없이 핀 들꽃들과 몇 개 남지 않은 모란 꽃잎 사이에서 새까맣게 탄 한 자루의 도신을 발견했다. 불꽃처럼 녹아내린 금의 흔적. 나는 이 검을 알고 있었다.
그와의 이야기도, 끝을 향한다.

-몇 번인가 메일을 주고받으며 그 혼마루의 사니와와는 친해졌었다. 언제든 마음이 내키면 말해달라던 용건을 겨우 메일에 쓸 수 있었다.
생활감이 없는 정갈한 방, 금줄을 몇 겹이나 두르고 부적을 빽빽하게 방 전체에 붙이고 있는 방 안에서 나는 그와 단 둘이 앉아있었다. 인간의 모습은 겨우 만들어내고 있는지, 얼굴이나 손에 금이 한가득이다. 깨져가는 도자기 그릇과도 같았다. 
그는 웃었다.
오랫만이구나. 잘 지냈니?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였다.
응, 밋쨩도 잘 지냈어?
나는 웃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