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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연련을 보러 나갔다. 혼마루에 없는 남사들의 얼굴이 먼 발치로 보이는 것을 바라보곤 한다. 담당자의 배려로 상대 부대에 있는 도검들을 확인하고 고르고 있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익숙해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해서 피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천천히 기억 위로 현재를 덧칠해 나가기로 했다. 척추에 맞은 총알을 스스로 후벼파내야 했던 기억이나, 온 몸의 뼈가 부러지도록 맞았던 기억 같은 것을 가해자였던 얼굴들을 보면서 천천히 떠올려 보고 현재와 비교해, 부정하고 다시 저 뒤로 밀어 치운다. 나는 이제 고통받지 않는다. 내가 손을 내밀었던 만큼 손을 내밀어 지켜줄 사람들이 있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
마지막 연련이 끝나고 상대 부대와 인사하던 때 발치로 굴러오는 알알의 사탕이 있었다. 무심코 주워올리고 나니 조그만 아이가 허리를 숙이다가 떨어진 사탕을 줍고 있었다. 떨리는 손에 힘을 줘 감추며 다가가서 사탕을 건네주자 아이는 웃으면서 고마워, 하고 인사했다. 그리고는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큰 칼을 멘 채 먼저 돌아가는 동료들을 따라 뛰어갔다. 그 뒤 한참이나 떨리는 손을 근시인 고토에게 잡힌 채로 돌아갔다.
-주인, 내가 말하는 것도 뭐하다만 갑자기 서두르고 있는 것 같구나.
무슨 소리야. 단도실 좀 열라고 옆에서 귀에 딱지가 앉게 노래하던 건 누군데.
그건 동감이지만, 이건 츠루마루 씨 말이 맞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간단하게 설명했다. 츠루마루는 그 계집애 말 같은건 신경쓰지 말라고 화를 냈고, 카슈는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동감하는 눈치였다.
나도 안다. 굳이 전 혼마루의 도검들을 만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했더니 더 화를 냈다.
그러면 왜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는 거냐.
츠루마루야말로, 내가 카센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었지?
다르잖느냐, 그거랑 이건.
다르지 않아.
-레어도가 높지 않은 도검이니만큼 연련에 동참해 관전하다 보면 결국은 눈에 띈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그 날 겨우 기절만은 하지 않았지만, 그 날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검은 옷만이 기억에 남았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꽃병을 깬 조각으로 스스로를 상처내고 있었다. 당연히 모두에게 야단맞았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좀 침울해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랫동안 상처입을 일이 없다 보니 영력이 많이 안정화되고, 좀 더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상처는 평소보다 더 빨리 나았다.
-미츠타다를 싫어하나?
오오쿠리카라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했다.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나는 네게 둘 중 하나를 만나게 해 달라고 말했었지. 그 때 너는 츠루마루를 데려와주었다. 그건 도피였나.
그 질문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오쿠리카라는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다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미안해할 일도 이해하려고 할 일도 아니야.
너의 검이라면 미안해하고 이해하는게 당연하겠지.
그거 말고, 어울릴 생각 없다고 평소처럼 말해주는게 차라리 안정되는데...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오오쿠리카라는 내가 겪은 일에 대해 물었다. 나는 최대한 오오쿠리카라가 놀라지 않도록 자체심의를 거쳐 이야기해주었다. 다음날, 오오쿠리카라와 같이 밭일 당번을 맡았던 하카타가 빨리 방에서 나오라며 오오쿠리카라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갑자기 방에 틀어박혀 안나온다면서 투덜거리길래 대신 내가 하카타랑 같이 잡초를 뽑기로 했다. 좀 미안해져서였다.
-미츠타다는 그 혼마루에서 나에게 가장 상냥한 어조와 태도를 취하던 도검이었다. 물론 무슨 짓을 했느냐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그리고 카센을 빼앗겨 혼자였던 나는 나를 해치는 그 상냥함에조차 기댈 수밖에 없었다. 두려웠지만, 미워했던 적은 없었다. 그저 다정함이 그리워, 스스로를 해치는 의존이라는 것을 알며 그를 의지하고, 기대고, 상처를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는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도검이기도 했다.
-다시 만나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다시 소유권을 이전해오는 문제라면 불가능하다고 담당자가 말해주었다. 이미 관리대상이 된 도검이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 사니와의 손에 돌아오는 일은 없다고 한다. 만나는 것은 가능하다고 은근히 돌려 말하는게, 담당자의 악취미가 또 도진 건지 아니면 이번엔 진짜 걱정해서 운만 띄워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시간은 충실히 흐른다. 현세에 나갔다가 겸사겸사 초콜릿을 한보따리 사와서 남사들에게 돌렸다. 카슈랑 츠루마루가 유독 기뻐했다. 그런 뜻으로 준 건 아니니까 오해 없었으면. 작은 초콜릿이 하나 남았길래 벽에 걸려있던 칼집 안에다 넣어보았다.
-꼭 죽기 전에 신변정리하는 거 같...아야!
왜 극복하고 일어나려는 사람한테 그런 불길한 말을 하는 거야!
이번에는 하치스카도 우라시마 실드를 쳐주지 않았다.
-담당자가 바뀌었다. 이전 담당자의 행방에 대해서는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았고 알고 있던 연락처로도 연락은 되지 않으니까 알 수 없었다. 그냥 일전에 그녀가 했던 말로만 겨우 유추가 가능할 뿐이었다. 그 날은 왠지 조금 울적해졌다.
나는 그녀를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공적인 일이니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거라고만 생각했지만 그래도 거의 마지막쯤엔 어떻게든 그런 마음이 좀 누그러지고 살짝 우정 비슷한 걸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했었지.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새 담당자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 혼마루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인수인계받은 자료를 다 읽어보고 납득해준 모양이었다. 현재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시설들에 대해서는 그건 그것대로 납득해주고, 일부러 하지 않는 업무에 대해서는 납득하지 않아 주었다.
전 담당자와는 친했나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곳에서 잘 지내줬으면 해요.
그 말에 새 담당자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다. 전 담당자와 의논했던 일 중 타 혼마루와의 교류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 당신이 맡은 혼마루랑 기본적으로는 같습니다. 그리고...전 담당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으니 이야기는 빠르네요, 권장하지는 않겠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내가 괜찮다고 한다면?
말리지는...못하겠군요.
-우리 혼마루에도 대태도가 필요할 것 같아 남사들과 의논했고, 한 명을 데려오기로 했다. 다들 대태도가 없어도 괜찮다고 말렸지만 효율적인 전투에 대해서도 고려해보는 것이 좋고, 가능하다면 남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이 언제든 옳기 때문에 열심히 남사들을 설득했다. 끝까지 가장 격렬하게 말리던 츠루마루와 카슈가 두 손을 들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혹시 진짜 죽을 때가 다 된거 아니지? 주인이랑은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단 말야.
너의 평생에 기준을 둔다면 그건 무리가 아닐까...
그나저나 정말 왜 그러는 거냐. 서두르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는데.
노력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인대.
누구한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대답은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멋있게 보이는 것보단 어울려 보이고 싶다.
너희들의 주인이라는 자리에 어울려 보이고 싶고, 지금은 없는 내 첫 검에게 어울리는 주인으로 보이고 싶다.
-도검남사들은 말석일지언정 신이지만, 살아있는 몸을 가지고 있기에 완전한 신이라기에는 다소 열화된 존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콜중독 같이 정말로 생물이나 가질 법한 문제까지도 공유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로타치는 일단 빈 방에 따로 격리하고 본체를 뺏았다. 술을 허락해야 하는지 아닌지는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기로 했다. 술 같은거 싫다고 고개를 저으면서 울음까지 터뜨리면서도 곧바로 술이 없다고 떨리는 손으로 여기저기를 뒤지고 끄집어내면서 찾고 있는 모습이 보기 안타까웠다.
생각만큼 전 혼마루의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모두 같이 모여 저녁을 먹다가 그냥 가볍게 여기서 쉴 만큼 쉬고, 여기에 더 있고 싶지 않아진 남사가 있다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을 꺼냈다.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하치스카가 입을 열었다.
상처는 나았고, 인간 모두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지금 주인을 믿는 것도 충분히 도박이었으니, 그런 도박을 여러번 할 만큼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주겠어?
다른 도검들도 비슷한 의견인 것 같았다. 더 좋은 혼마루로 갈 수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건데, 그게 아직 다 낫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는 발언이 될 수도 있었구나. 반성해야겠다.
-가지고 있던 본성번호에 연락을 넣었다.
우연이란 이런 걸까. 그 혼마루의 사니와는 나를 전 혼마루에서 구해줬던 사니와였다. 내 용건에 대해서는 급할 것은 없고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몇 번이라도 고려해본 뒤에 말을 해주면그렇게 해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전에, 별도의 이유로 한 번 만나기로 했다. 약속장소에서 나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사람은 키도 나보다 훨씬 작고, 어려보였다.
사니와 카루메루(甲乙)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사니와 요우렌입니다. 구해주신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아마 거기서 죽었다면 나는 이렇게 눈물나게 행복한 시간을 허락받지 못했겠지.
단말기로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칼에게 알콜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권하는 건 묘한 느낌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말야, 다 기억나거든, 마치 베어도 벤 거 같지 않은, 줄지어 선 단도들의 가는 목을 베는 느낌이 말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충혈된 눈으로 두리번거리면서 술을 찾고 있었다.
오빠야는 나쁜 애는 아닌거 같구나? 하지만 아무나 함부로 믿으면 안되는거, 알거든. 그 전 주인도 처음에는 착한 애였으니까 말야, 헤헤.
처음부터 믿을 필요 없어, 의심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편하게 있어. 술은...지금은 조금 줄이는 게 좋겠네.
지로타치는 딱히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필요한 물건을 신청하는 날이 또 돌아왔다. 남사들이 말해준 물건을 리스트에 적은 뒤에 내게 필요한 것을 생각해보았다.
마지막 칸에 톱과 망치를 써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