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숯 2018. 11. 16. 11:56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찍 이부자리를 펴고 눕는 것은 잠을 일찍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면증은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누워있다가 눈을 떠 확인하면 누운지 두 시간이 지나있을 때도 있다. 떠나버린 너에 대한 모든 기억은 의식을 지나칠 정도로 선명하게 만든다. 지친 표정 위로 녹아내리듯 상냥하게 웃던 너, 나를 안고 등을 토닥여주던 너, 잘린 내 팔을 주워들고 다시 붙을 때까지 말없이 환부를 맞춰주고 있던 너.
고통을 끝내고 싶지는 않냐면서 내 목에 맘에도 없는 칼날을 들이대다가 거두던 너.
너는 끝까지 나에게 그렇게 상냥했다. 마지막까지도 웃어 주었다.

-오늘 반찬은 입에 맞으십니까?
하세베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밥을 더 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반응이 저것이었다. 너무 많이는 못 먹으니까 조금만 더 달라고 했다. 별 이유는 없다, 그저 조금 더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식사 시간은 훨씬 오래 걸렸지만 남기지는 않았다. 고기도 조금 더 먹었다. 우라시마도 먹는데 내가 못 먹을 것도 없지.

-뭐든 한 번에 하려고 하면 당연히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잊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카센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센에 대한 정리하지 못한 마음과 죄책감과 사랑과 다른 여러 가지.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덩어리가 그 곳에서 베이고 잘려가며 만들어진 형태가 지금의 나이다.
그러니까 나를 천천히 바꾸어나가면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노력해서 과거에 조금 덜 얽매이는 나를 만들어나가고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쳐다보지만 말고 할 말이 있으면 해.
......
한참 침묵하고 있던 오오쿠리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 마디만을 남겼다.
시간이 많이 흘렀군, 네 죽은 고등어 같은 눈에서도 생기가 도는 걸 보니.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다.

-방에 결계를 쳤다. 사실 내 결계래봤자 혼마루에 있는 남사라면 누구든지 종잇장처럼 찢고 들어올 수 있다. 그러지 않는 것은 그들이 나를 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방에서 남은 도구를 몇 개 꺼내봤다. 자루에 피딱지가 엉겨붙은 조각칼이나 작은 집게, 재봉가위, 녹슨 커터칼 같은 것들. 보고 있으면 피부 밑이 뜨겁게 아픈 느낌이 든다. 망설임없이 찔러넣던 전이랑 다르게 그것들이 조금 멀게 느껴진다. 아픔이 삶에 달라붙어 있던 전이랑은 다르기에 그런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전처럼 자해를 도피의 수단으로 삼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로 좋다. 도망치는 방법이 꼭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근시인 마에다를 불렀다. 피가 묻은 도구들을 보고 인상을 찡그리더니 마에다는 물었다.
어디에 쓰신 겁니까?
여기랑, 여기랑. 여기. 여기. 티는 안나지?
그런 걸 여쭙는 게 아닙니다. 몸은 괜찮으세요?
옛날보다는 조금 덜 경직된 어조였다. 앞에 놓아둔 물건들을 집어드는 마에다에게 이제는 다 나았고, 거의 쓰지 않는 물건이니 몰래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은 쓰지 않으신다니 다행입니다만, 부디 이런 일을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안해. 이제는. 너희가 아팠던 것만큼 나도 아팠고,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으니까.
아픔이 당연한 것일 리가 없다. 일부러 그게 당연한 거니까, 하면서 현재의 평온을 애써 부정할 필요도 없다. 마에다의 손에 들린 채 익숙한 도구들은 내 방을 떠나갔다. 이제는 기껏해야 이빨이나 손톱 정도밖에 없다. 벽에 걸린 카센의 칼집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제는 따라가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가져온 거니까. 
미안해. 그런 용도로는 이제 쓰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만난다면 화내지 말아줘.

-주인님! 다녀왔어요!
모노요시가 기운차게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벚꽃잎을 하나 둘 날리고 있다. 모노요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공을 세우면 언제나 내게 자랑을 하러 오곤 했다.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과자를 쥐어주었다. 날리는 꽃잎이 더 늘어난 거 같다.
연도도 올랐어요, 이걸로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에요!
그러지 않아도,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고 기뻐지지만. 뭐, 검인 모노요시는 검으로서 싸우고 내게 공적을 가져다주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 충동적으로 모노요시의 머리를 다시, 이번에는 한참 쓰다듬어 보았다. 
고마워.
그 말 속의 의미는 어디까지 닿을까. 모노요시는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다가 웃었다.

-오래된 흉터들은 약간씩 희미해졌다. 아직도 몸 전체를 얼룩덜룩하게 만들고 있는 검붉은 자국들 중에 몇개는 제법 연해진 것도 있다. 바로 없어지지 않더라도 사라져간다면야. 그것만으로도 훨씬 나아져가고 있는 거겠지.

-그저 아프지 않은 지가 오래돼서 역치가 낮아진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그냥 무덤덤하게 대답하자 담당자는 웃었다.
인간으로서는 그게 정상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배에 칼을 쑤시는 쪽이 훨씬 비정상인걸요. 지금까지야 코우쨩에겐 그게 정상이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웬일로 제대로 된 말도 하는구나, 너.
실례네요. 코우쨩같이 재기불능으로 보이던 사람도 제대로 재활하고 있는데, 누구는 한번 잘못된 채로 끝까지 살아갈 줄 알았어요?
그건 그런가. 미안.
됐어요, 아. 그리고 나 사니와 복직할 거에요. 아마 코우쨩이 제대로 멀쩡하게 혼마루 꾸리고 나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죽으러 간다고 하는게 더 맞을 거에요. 내가 만든 블랙 혼마루로 갈 거니까. 아마 거기, 도검들이 나를 죽이고 나서야 다른 사니와가 들어갈 수 있을 거라서요.
갑자기, 왜?
자기가 지은 매듭은 자기밖에 못 푼다더라고요. 그냥 누가 꼴사납게 버둥거리는거 보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싶어서. 벌써 사표도 냈고 반년 뒤엔 수리될 거에요.

-싫고 무서운 사람이지만, 헤어지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게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리고 이거, 코우쨩의 옛 혼마루에 있던 도검남사 중 몇 체를 공양중인 신사...겸 혼마루에요. 나중에 연락해봐도 좋을지도.
뭐......?
나도 이거 고민했거든요, 코우쨩이 알게 되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을것 같긴 했지만, 사람이 폐인되는 꼴 보기는 싫어서 감춰뒀는데 지금은 괜찮겠죠. 나키기츠네랑 코우세츠 사몬지에게는 나쁜 감정이 없다고 했었죠?
나키기츠네는 나를 구해준 적이 있고, 코우세츠 사몬지는 혼마루 내에서 내가 당하는 일들에 대해 반대하며 나선 적이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아마 그들을 만나면 반가워할 것이다.
아, 마지막 한 자루가 문제려나.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거 알죠...? 재액에 너무 오염된 도검을 그대로 도해하면 본령에까지 영향이 가는 거. 그래서 그런 도검들은 따로 정화과정을 거친 뒤 도해하게 돼요. 그런 도검이 하나...더 있어요, 거기에는.
나한테 웬만하면 다 말할 건데 못하는 거 보니까 내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둘 중 하나겠네.
눈치 빨라졌네요.

-드디어 마주할 때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잡고 놓지 않는 미련과 두려움 중, 전자와는 이미 마주보고 있다. 후자는 이제서야 나를 따라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