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숯 2018. 11. 16. 11:53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세에 다녀오는 날이다. 혼자 다녀오겠다고 말했는데도 다들 죽어도 안된다며 누구 하나를 데려가라고 말하길래 제비뽑기를 시켰다. 모노요시가 당첨됐다. 왠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건가, 행운인가.
담당자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기왕 올거면 한 번에 다 같이 진단해보게 블랙혼마루산 도검을 데려오지 그랬냐고 하는 걸 한대 쥐어박았다. 진짜 담당자 좀 안 바뀌나.
"아야...코우쨩, 폭력은 나쁜 거에요.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시끄러워. 아무튼 결과는 나중에 혼마루로 보내주고, 볼일은 끝났지?"
"에이, 그러지 말고요. 요즘 도검 받아간 적 없잖아요. 이번에는 제대로 별로 안 무서운 애로 준비했으니까."
음, 마에다랑 히라노가 좋아하려나. 그때도 이야기했었는데. 아무튼 그래서 하카타 토시로를 받게 되었다. 혹시 모노요시도 나랑 같이 있으면서 악영향을 받았을지 모르니까 검진을 부탁했다. 밖에서 하카타 토시로의 본체를 만지면서 모노요시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역시 매개체 하나만 있으면 추억? 악몽? 아무튼 과거가 밑바닥에서 피어오른다.
'내가 댁 칼침을 놔서 어따 쓰노, 댁이 우리 옛 주인도 아닌데 그래서 뭐가 우예된다꼬.'
하카타는 나를 해치지 않던 얼마 안되는 남사 중 하나였다. 딱히 따뜻하게 대해주지는 않았다. 치료와 정화를 부탁해왔고, 치료는 수리실의 힘을 빌어 겨우 해줬지만 정화는 한번에 되지 않자 노골적으로 실망하면서도 도움을 받은 대가는 꼭 치르겠다고 말했었다. 그 말대로, 나마즈오가 나를 거름 구덩이 속에 던져넣고 그대로 묻어버렸을 때 나를 찾아내 파내준 것도 하카타였다. 당연히 내가 받은 것은 그 하카타가 아니지만 안도감이 든다.

-모노요시는 멀쩡하다고 했다. 다행이다. 나같은 주인이랑 같이 있으면서 똑같이 이상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볼일을 마치고 나가려는 나를 담당자가 잠시 불러세웠다.
"연련 못한다고 했죠?"
"왜."
"여기 보기 싫은 도검 좀 적어놓고 가요. 연련상대 매칭 시스템에 입력해서 그 도검들이 없는 부대랑 매칭되게 해줄 테니까."
"오늘 뭐 잘못 먹었어?"
"담당자로서 줄 수 있는 당연한 특혜에요. 오히려 왜 이제서야 적용시켜주냐고 화내는 게 맞을 걸요. 사실 처음엔 상태가 좀 나아졌나 보고 싶어서 일부러 적용시키지 않았거든요."
"......"
"화 안 내네요."
아직 보고 싶지 않은 몇몇 남사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나중에 그 남사들이 무섭지 않아졌을 때는 그것도 적용시켜주는 것 같다.

-현세에 돌아올 때마다 필요한 물건을 사가는 게 관례가 됐다. 모노요시가 장바구니를 들어주고 있어서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사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나보다 키도 작고 힘도 없어 보이니까 신경쓰여서 그랬는데 알아챘나 보다. 도움이 되고 싶으니 뭐든 편하게 시켜달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뭔가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결국 필요한 만큼만 사게 되었다. 다른 때는 종종 충동구매도 하게 되는데.
모노요시는 돌아오는 길에 주인의 도움이 되고 있냐고 물었다. 당연한 일을 굳이 물어 확인하게 할 만큼 내가 불안하게 만든 걸까, 역시 좋은 주인 실격일지도.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표정이 조금 밝아진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나중에 이야기라도 나눠봐야 될 것 같다.

-돌아와서 검진 결과와 담당자와의 면담내역을 남사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연련 이야기를 듣고 남사들이 눈에 띄게 안도하는 것을 보니 역시 다른 혼마루의 도검들과 실력을 겨루고 스스로를 다듬는 것은 남사들에게도 중요한 일 같다. 그런걸 나 때문에 못하고 있을 수는 없지. 그리고 왠지 별 근거 없지만 지금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해보았다.
부대를 꾸려 연련장에 나가보았다. 정말로, 아직 많이 무서운 남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종종 옛날 일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이제 그 정도는 어떻게든 버틸 수가 있다. 3전 2승을 거두었다. 남사들이 한번 진 것을 신경쓰길래 반올림해서 전승이라고 말했더니 카슈가 그게 아니라고 핀잔을 줬다. 왠지 다들 의욕이 충만해 보인다. 그 생각을 뒷받침하듯 다음날 오전에 다들 모여 밥을 먹을 때 앞으로는 연도를 올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하세베가 말을 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것보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 훨씬 빨랐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니까.
주인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시합에서 패배하고 싶지 않습니다.
맞아맞아, 나도 동감.
지는 건 싫기도 한데, 혹시라도 우리 주인이 얕보일지도 모르잖아?
결국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오늘부터는 열심히 도장을 만들어야겠다.

-하카타를 잠시 방치해둔 것이 미안해서 현현 전에 서류를 봤다. 희귀 도검을 얻겠다고 마구 단도를 감행해 자원을 낭비하던 사니와에게 충고를 했다가 그대로 형제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수단으로, 고통스럽게 도해되어 자원으로 변하는 것을 봐야 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여러가지로 정신적 학대를 받은 것 같다.
아픈 이야기는 눈이 닿는 곳에도, 그렇지 않은 곳에도 언제나 가득하다. 현현 전에 아와타구치의 단도들을 불러 형제를 데려왔으니 따스하게 맞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카타는 현현되자마자 떨리는 눈으로 형제들을 바라보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달려가 안겼다. 어린아이가 큰 소리로 우는 모습을 본 것은 오랫만이다, 왠지 나까지 눈물이 날 것 같다.

-하카타는 언제나 자기 형제들이랑 같이 다니며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연도가 낮다 보니 출진은 같이 하지 못하지만 원정 정도는 같이 다닐 수 있겠지 싶어서 아와타구치의 모두를 원정부대로 편성했다. 느긋하게 소풍가는 느낌으로 다녀오라고 도시락이랑 후식을 쥐어주었다.

-같이 놀 친구가 늘어날 줄 알았는데.
너도 처음에는 저랬으니까.
아이젠은 제딴엔 심각한 표정으로 끄덕이면서 다들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왔을 땐 말도 안하고 아무 반응도 없는 인형같던 애가 이렇게 밝아졌으니까, 마에다랑 하카타도 그렇게 되어주지 않을까.

-밝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말수가 많아지고 언성도 높일 줄 알게 되긴 했지만 그게 우리 혼마루의 금화 잔고가 계기가 될 줄은 몰랐는데. 낭비하지 말고 적절히 쓰라고 야단맞았다.
자원은 많이 안 쓰는 편이라 쌓여있다 보니 그나마 잔소리는 덜 들은거 같다. 앞으론 조심하겠다고 말하자 오히려 자기가 놀란 얼굴을 하더니 화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화를 왜 내겠느냐고 말하자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작 날붙이가 건방지게 입을 놀린다고는 생각 안하나?
맞는 말인데 뭐, 전에 다른 남사를 데려오느라 좀 많이 쓰기도 했고, 나중에 필요한 일이 있을 테니까 아껴야 되는 것도 맞고.
......
전 혼마루의 사니와한테도 이렇게 말했다고 들었어.
니, 그거 사생활 침해다.
미안. 아무튼 네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잖아. 그때도, 지금도.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과소비에 대해 지적한 게 아닐까. 마치 이 정도면 화낼까? 하고 부모의 관대함을 시험해보는 어린애처럼. 나도 그 사니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고.

-제법 시끌벅적해졌지 않느냐. 우리같이 비뚤어진 것들도 많아지고, 애초에 그런걸 모르는 녀석들도 늘어나고.
그렇지, 이제 좀 다른 혼마루들처럼 보이려나?
그러려면 단도실도 여는게 좋지 않겠느냐.
정말 끈질기네. 내가 단도실을 열어야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봐.
카센 카네사다가 그립지 않느냐.
......
한숨이 터져나오는 것을 겨우 막고 말을 조심스럽게 골랐다.
잘 들어, 츠루마루. 나는 아무것도 아직 극복해낸 게 없어. 아직도 카센이 보고 싶고, 아직도 카센을 좋아해. 카센을 보게 되면 나는 너희의 좋은 주인으로 있을 자신이 없어.
그렇게나 사랑했느냐. 마음에 다른 것을 들이지 못할 정도로.
아직은 그래. 그런데 그렇지 않은 순간도 언젠가는 올 거 아냐? 그 때가 되면 나는 다른 사니와들처럼 단도도 하고, 너희가 데려오는 다른 도검을 무서워하지 않고 현현시킬 수도 있을 거고, 카센이 사무치게 그립지도 않아질거야. 아마 그게 옳은 일일 거야.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잊어버릴 때가 오는 것이 두려워, 지금 이 상태로 카센을 만나면 안돼.
......
잊을 준비를 하게 해줘.

-그 날 이후로 츠루마루가 나를 피한다. 나는 굳이 츠루마루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혹시 싸운게 아니냐고 다른 남사들이 걱정했지만 나와 츠루마루 모두 그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츠루마루는 기다리는 거다.
가끔은 옳은 말을 듣더라도 마음 한구석에 앙금이 남을 때가 있다.
가끔은 틀린 말임을 알더라도 부정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했던 말과 서로에게 들은 말을 곱씹고 있다.
츠루마루의 말은 옳다. 나의 말은 아마 틀리겠지.

-카슈가 저녁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들고 들어왔다. 종종 따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남사들은 술이든, 코코아든 과자든 아무튼 뭐든 가지고 들어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대체로 무거운 이야기였기에 그런 이야기를 술기운으로, 혹은 입안에 남는 단맛으로든 털어버리려는 생각들일 것이다. 카슈의 경우엔 주인이 잘 잤으면 좋겠다며 대화하고 싶을 때마다 따뜻한 우유를 가져와 내게 먹였다.
츠루마루에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앞으로 비겁자마루라고 불러버릴 것이다.
이 혼마루는 주인의 혼마루고, 우리는 모두 주인의 검이야. 주인의 뜻대로 하면 돼.
그렇지만.
단도실이 있어야만 정상적인 혼마루가 되는 건 아니야.
아니, 그건 실제로 정상적이지 않으니까.
주인이 마음속에 누구를 언제까지 담고 있더라도 괜찮으니까.
......
카슈가 나가고 누웠다. 눈을 감을 때까지 두시간이 넘게 흘렀다. 카슈도 기다려주고 있다.

-이대로여서는 안 되는 이유는, 카슈의 말대로 이 혼마루가 나의 혼마루이고 모두 나의 검이기 때문이다.
나를 구심점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세계는 내가 바뀌지 않는 한 미묘하게 뒤틀린 그대로이다. 나 혼자서라면 그대로도 상관없지만.
나는 나의 상냥한 검들의 주인으로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싶었다.

-기억이라는 건 정말 자기 마음대로다. 비겁하게도 싫은 건 멋대로 잊으려고 하고 좋은 것은 죽어도 잊으려고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죽어도 잊지 않겠다고 꼭 쥐고 있던 기억을 이렇게 잊으려 하고, 언젠가는 잊어버린 것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멋대로다.
나는 절대로, 죽어서 원혼이 되더라도 너와의 기억만은 절대 놓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는데. 잊어도 좋은지, 정말로 괜찮은지.
나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으니까, 이 이상 너를 잊어버리는 게 싫다, 놓고 싶지 않다. 너를 잊어버리면 다시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네가 나에게 줬던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도해실에 있던 칼집을 가져와서 방에 두었다. 칼집을 가져오는 길에 츠루마루와 마주쳤다. 츠루마루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엇다.

-며칠 동안 혼마루의 일을 하세베에게 맡기고 방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와카를 읽어보았고, 서예도구를 가져다가 붓글씨를 써봤다.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그런 먹물 향 나는 추억 대신 피냄새만을 한가득 묻히고 살았었지. 어찌됐든 카센을 기억나게 하는 일을 하나씩 해보았다.
나중엔 붓을 내던지고 혼자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중에 방을 더럽혔다고 솔직히 근시였던 니혼고에게 사과하고 청소를 도와달라고 부탁해 청소를 했다.

-생필품을 주문하는 날, 나는 혼자 모란 모종을 주문했다.

-오랫만에 꿈을 꾸었다. 꽃이 가득 핀. 이 곳이 아닌 다른 혼마루. 나무밑에서 눈을 떴다. 언제나 보던 모란 꽃이 가득 펴 있던 벚나무의 가지는 앙상했다.
자고 있던 내 위로 꽃잎이 한가득 덮여 있었다. 색색의 꽃들이 모란 꽃잎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짙은 꽃향기 속에서, 꿈 속에서 소리를 내 울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던 내 뒤통수에 손길이 닿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의 주인을 확인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우는 동안 손길은 그저 따뜻하고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곧 나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리운 목소리는 노이즈가 낀 것처럼 잘 들리지 않았다.
꿈을 깼다. 어슴푸레한 새벽, 젖은 베개를 베고 누워있었다.

-도해실 옆에 모란을 심었다.

-잊지 못하면 망집이 되는 거다, 어린 녀석아.
알아.
웬 일로 솔직하구나.
잊겠다고 말했잖아.
츠루마루는 손을 뻗어선 거칠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법 길어진 머리카락이 마구 엉켰다. 그걸 손가락으로 빗어내고 있는 동안 츠루마루가 말했다.
망집도, 집착도. 그 대상에게는 곤란한 일이지 않겠느냐, 이래봬도 그 때문에 험한 일도 제법 당했으니.
무덤에 들어갔다고 했었지.
그래. 그래서 네가 무덤에 들어가진 않았으면 좋겠구나.
......
입을 다물면 어색하니까 뭐라도 말해보거라.
잊는 거, 어렵네.
......못 잊겠다고 하지는 않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