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숯 2018. 11. 16. 11:17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안 들킬줄 알았는데. 하세베가 빨랫감을 정리하다가 옷이 한벌 비는걸 발견하고 추궁하는 것을 옆에서 우라시마가 그만 제풀에 사니와가 피묻은 옷을 입고 있었다고 자백한 모양이었다. 츠루마루가 어디서 곧게 잘 뻗은 나뭇가지를 주워왔고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나는 츠루마루 앞에 종아리를 걷고 서야했다.
몇번 찔렀지?
하...한번...
웃기지 말고.
한...열다섯번 정도...
그래. 그럼 열다섯대. 한대마다 다시는 몸에 칼을 찌르지 않겠습니다, 라고 크게 말하기.
어릴때도 맞고 자란 적은 없었던거 같은데, 하물며 내가 주인인데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끝내 열다섯 대를 맞을 때까지 아무도 안 말려줬다. 다행히 가만히 있으면 아픔은 바로 낫고 회초리 자국도 사라지지만 이 마음의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창피하다. 츠루마루는 다음에 또 자해하다가 걸리면 다 모인 앞에서 알궁둥이를 때리겠다고 했다.

-종아리가 아직 쓰라려서 옷을 내릴 수가 없다.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으니 사요가 슬쩍 다가왔다. 얼음주머니랑 이쁘게 익은 주황색 감이 놓인 쟁반이었다. 사요는 얼음주머니를 종아리 위에 올려주고는 감을 집어들어 깎기 시작했다.
아프지. 그 질문에 웃었다. 안아플 리가 없잖아. 그래도 잘못한건 아니 할 말이 없다. 내가 그냥 고개만 가로로 내젓자 사요는 이쁘게 깎은 감을 접시에 놓으면서 말했다.
걱정시키는 복수야, 그러니까 할말 없지.
감은 달았다. 하나 둘 집어들어 엎드린채 먹으며 사요에게도 같이 먹자고 했다. 사요는 감을 오물거리면서 엎드린 나를 내려다본다. 왠지 '사요' 랑은 뭔가 나눠먹는 일이 많구나. 아무 말 없이 감 씹는 소리만 들린다. 그걸로 편하다.

-아무튼 좋은 쪽으로 해결됐다. 우라시마는 자주 웃고 잘 떠들게 됐다. 내가 바란대로 하치스카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고 가끔 형에게 장난을 치다가 안아프게 딱밤을 맞기도 한다. 하치스카의 경우야 당한 학대강도는 센 편이었지만 원래 자존심이 강하고 잘 꺾이지 않는 검이니까. 괜찮을 거다.
다시 혼마루는 조용해졌다. 카슈는 근시도 좋지만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심심하다고 하길래 연도가 높은 편인 코테츠 형제랑 같이 원정을 보내주었다. 당분간 심심하다는 소리는 안 나오겠지. 대신 츠루마루를 근시로 뒀다가 후회했다. 계속 뒤끝있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가시방석에 앉은거 같다.
안한다니까, 이제.
네가 빈소리를 하는게 한두번이냐, 놀라게 하는 것도 한두번이어야지.
그렇게 내가 자해하는게 싫어? 어차피 바로 낫잖아.
그러면 빈혈로 쓰러지지나 말던가. 그리고 너야말로 내가 내 몸을 해할 때는 뭐라고 했느냐.
그거야 뭐...
대충 대답하지 말거라, 그 때는 무슨 마음으로 말렸느냐.

-그거야 당연히 내 검이니까, 카슈가 그랬고 오오쿠리카라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말할까 했는데 말문이 막혔다. 츠루마루는 내가 이 혼마루에 와서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해서 데려온 검이다. 매일 실없이 장난을 치고 그러면서도 채 못 벗어난 아픔을 아픔으로 씻고, 그러는 주제에 내가 아픈지 안 아픈지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곁눈으로 살피고 있던 검이었다. 그래서 나는 츠루마루에게 약간은 가족같은 기분을 품었던거 같다.
아빠같기도 하고 형 같기도 한. 마치, 카센 같기도 한. 이 말만은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지만.
내가 더 이상 말을 않고 있자 츠루마루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더 캐묻고 싶지 않은듯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나 나나 서로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같은거 같으니.
응?
그런데도 너는 툭하면 자길 소중히 하지 않으니 어쩌겠느냐, 너의 검인 내가 너로부터 너를 지켜줘야지.
뭐라고 하는 거야, 대체...
곁에 두거라. 그래주는 한 나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또한 너에게도 상처 하나 나지 않도록 하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왜 얼굴만 뜨거운 건지. 분명 츠루마루가 낯뜨거운 소리를 해서 그렇다.

-츠루마루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덥다. 계절을 바꿔볼까 생각했지만 심어놓은 작물을 생각하니 그럴수는 없고, 나는 계절을 세심하게 바꾸지를 못하니 그냥 혼자 마루에 걸터앉았다. 아무도 오지 말아달라는 분위기를 팍팍 내면서 앉아있으니 바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왜지. 배가 아프냐고 얼굴을 가까이 하는 우라시마에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어보였다. 우라시마는 다행이다. 주인이 아프면 나도 왠지 기분좋지는 않을거 같아서, 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 혼마루에서 처음으로 나를 공격하지 않던 도검, 여긴 항상 춥다고 웃으면서 투덜거리던 얼굴. 그 우라시마는 아니지만, 이제서야 약속을 지켰다.
봄빛 배경에서 우라시마가 웃고 있었다.

-오랫만에 꿈을 꿨다. 꿈은 언제나 전 혼마루의 꿈이다. 당연히 좋은 꿈 같은건 하나도 없어야 했는데. 눈이 내리는 어두운 혼마루의 마당, 혼자 서있는 내 앞으로 아무도 없는 눈 위에 발자국이 찍힌다. 새잎과 꽃잎으로 가득한 봄색 발자국이 하나 둘씩, 따라오라는 듯 앞으로. 조용히 향기가 나는 발자국을 따라간다. 바람한점 없이 고요한 곳. 발자국은 시든 나무 앞에서 멈추더니 나무를 한바퀴 돌았다. 그 봄색이 나무에 옮겨붙더니 한가득 꽃을 피웠다. 그 나뭇가지에는 어째선지, 벚나무인데도 그리운 모란이 한가득. 꿈은 거기서 끝났다.

-그 꿈이 나의 지옥이었으면 좋겠다. 나를 내려다보는 당신의 꽃으로 가득한 지옥.

-도검들이 써낸 필요물품 리스트를 검사했다. 카슈의 젤네일 키트에 대해서 조금 고민해봐야겠다. 그리고 안쓰는 것, 굳은 것은 좀 정리해서 버리라고 말했는데도. 그 외에는 대체로 양호한 물건이었다. 아니, 잠깐만. 정정하자. 정말이지. 모란 모종은 뭐야. 일단 츠루마루랑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도해실 옆에 전별의 꽃을 심고 싶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웃는 츠루마루한테 박치기를 하고 방으로 들어와버렸다. 이건 분명 나에 대한 시위다. 그것도 매우 사악하고 비열한 시위다. 내가 도해실에 무엇을 두고 있는지 알면서 도해실 옆에 꽃을 심으려 하는 것인가. 그것도 하필이면. 츠루마루의 희망리스트만 빼고 일단 다 신청했다. 전투/원정의 기록은 착실히 보고하고 있어서 급료에 무리는 없다. 흥, 나중에 실망하는 얼굴을 보고 웃어줄테다.

-사요는 가끔 우라시마와 하치스카가 같이 있는 것을 말없이 잠시 바라보곤 한다. 코우세츠 사몬지라면 데려올 수도 있을거 같은데, 한번 고려해볼까. 사실은 사몬지형제들에 대해 떠올리기만 해도 자동으로 연상작용이 일어나버려서 무섭지만. 아니면, 사요가 원한다면 다른 좋은 혼마루에 보내줄수 있어도 좋을거 같다. 어느 쪽이든 성급하게 이야기할 것은 아니니까 조금 더 생각해보자.

-토마토가 많아서 갈아서 쥬스를 만들었다. 믹서기가 없으니 손으로 일일이 가는 것도 중노동이다. 도중에 보다못한 카슈가 나를 한쪽에 앉혀놓고 자기가 마저 토마토를 갈았다. 깜짝 놀랐다. 다친건 실수였고 카슈한테 힘든 일을 시키긴 싫었는데. 다들 맛있게 먹어주었다. 나랑 카슈는 한쪽에서 남은 토마토를 잘라 먹었다. 강판은 괜찮냐고 물으니 주인보다는 내가 더 잘쓸걸, 하고만 대답했다. 카슈가 사소한건 금방 잊어주는 타입이면 좋겠다. 강판은 자주 쓰인 적도 없었으니까 별 문제없지만 이렇게 말하면 혼나겠지.

-주방에는 있으면 유용한 몇가지가 없다. 사실 굳이 필요한 물건들도 아니다. 불을 보고 싶지 않아 인덕션을 놓았고, 대체할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걸로 대용한다. 가끔 오븐이 있다면 빵을 구울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걸 살 만한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다. 오븐을 보고 생살 타는 냄새가 아닌 빵 냄새를 떠올릴수 있을 때쯤에는 사도 좋을 테니까, 미리 돈을 조금씩 모으고 있지만

-재미로 솜사탕기계를 사왔다. 의외로 코테츠 형제들이 좋아했다. 아닌척 동그랗게 이쁜 솜사탕을 만들어서 뿌듯해하고 있는 하치스카를 옆에서 츠루마루가 살살 놀리고 있었다. 다음날 기계가 망가졌다. 물을 넣으면 어떤 모양으로 나올지 궁금했다고 말하는 츠루마루의 귀를 카슈가 잡아 끌고가서는 복도에 벌을 세웠다.

-그곳의 주방은 정말 크고 넓었다. 필요한 모든 주방도구가 갖춰져 있었고 그것으로 음식과 음식이 아닌 것을 손질했다. 매일 깨끗하게 청소한대도 피비린내가 떨어져나가지 않을 정도로 그 곳의 전임자는 '요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마 전 혼마루의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는 전임자에게서 요리를 배웠을 것이다. 살을 저미는 솜씨가 훌륭했으니까. 그 혼마루에서 나는 음식다운 음식을 먹기 힘들었고 결국 미츠타다와 기분나쁜 거래를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생명의 은인이긴 하다. 후유증은...고기가 싫어진 것 빼고는 그럭저럭 나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주방일을 자진해서 했다. 더 들쑤시고 헤집다 보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어서였다. 지금은 십중팔구 주방에 들어가면 밀려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