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숯
2018. 11. 16. 11:06
※해당 연성은 도검난무의 2차 창작으로, 원작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블랙혼마루 등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설정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묘사에 캐릭터 개악/헤이트 창작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폭력 및 고어요소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사니와가 주인공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의 행복도, 그들의 행복도 땅에 묻힌지 오래다. 여기 있는 것은 새로이 찾아낸 작은, 정말 조그만 행복. 잃었던 것과는 다른 것이기에 이것은 이것대로 소중하고 덧없고 허무하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시시오가 오오쿠리카라랑 싸웠다. 오오쿠리카라가 시시오 앞에서 손을 들어올린 것을 시시오가 공격으로 오해하고 발도했다고 했다. 기습으로 중상을 입은 오오쿠리카라도 화가 나서 마주 발도해 진검필살을 썼고 결국 둘다 중상이다. 정말로 오랫만에 수리실을 썼다. 그리고 진짜 오랫만에 피를 보고 기절했다.나중에 왜 그랬냐고 시시오를 야단치자 무서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오쿠리카라, 무섭고...아무말도 안하고, 손부터 들어올려서 때리려는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먼저 베어버리면 공격받지 않고 아프지도 않잖아. 그렇게 불만스러워하는 시시오를 보고 느꼈다. 훌륭한 병자 하나가 더 들어왔다.
-시시오에게 아무도 너를 때리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고 오오쿠리카라에게는 사과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본체는 내가 맡아두겠다고 했다. 싫어하는 시시오를 달래 본체를 맡아둔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오오쿠리카라를 찾아가는 시시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뒤 머리에 혹을 단 시시오가 속였어, 주인! 때리잖아! 하고 울면서 돌아왔다. 그건 때린게 아니라 혼난거지, 잘못한 건 너잖아. 빼액 하고 우는 시시오를 달래느라 애를 먹는 나를 보고는 하세베가 다가오더니 새 식구가 늘었으니 저녁은 닭요리가 어떻겠습니까?라는 말로 바로 울음을 그치게 해주었다.
-오오쿠리카라를 찾아갔다. 잘 수리됐는지 확인한 뒤 시시오랑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복슬해 보이는 털가죽을 쓰다듬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거라면 큰 곰인형이라도 사줄텐데. 슬쩍 물어보니까 그리 싫진 않은거 같아서 나중에 같이 곰인형이라도 사러 가자고 했다.그러고 보니 시시오의 그것은 그저 털가죽이다, 그 누에 원래는 살아있는게 맞는 걸까, 아니면 그냥 가죽이 맞는 걸까. 어느 쪽이든 나는 뜯어먹혔지만.
-자다가 추워서 깼다. 그 혼마루에서 구출된 뒤 유독 추위를 잘 타게 된 것은 그곳이 언제나 겨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서 처음본 아이는 새로운 사니와라고 나를 반기며 겨울은 추워서 싫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혼마루를 정화한 뒤에는 봄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정화하지 못했으니까, 약속은 지킬수 없었다. 겨울처럼 그 혼마루도 차가웠고, 그 아이처럼 모두가 따뜻하지는 않았다. 말보다는 검이 돌아올 때가 많았고 차가운 땅에 심심하면 피를, 나의 일부를 흩뿌려야 했다.
-생존본능은 간사한 것이다. 혼마루를 정화하기 위한 영력은 살아남기 위한 자체치유로 돌려졌다. 단도실에서 그 애를 앞에 두고 그 애의 형이 내 배를 가르며 한번 여길 정화해보지 그러느냐, 라고 웃었던 때 나는 내장과 피로 더러워진 바닥에 손을 짚고 단도실을 정화하려고 했다. 손바닥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화하려고 내뿜은 영력은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내 갈라진 뱃가죽을 도로 붙이고 헤집히고 조각난 내장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그 애는 슬픈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좋은 기억 중에 그나마 조금 괜찮은 기억이었다. 그 애는 형이 나간 뒤를 쫓으려다가 나를 부축해 일으켜선 별채까지 데려다주었다. 여기 있으면 다른 애들이 공격할지도 몰라. 별채에서 쉬어. 라고 다정한 목소리까지 곁들여서. 작은 친절은 쓸데없이 크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것을 잊지 않으면 다가오는 다른 모멸과 아픔에 독으로 바뀐다. 나는 그 애의 작은 호의까지 잊어야했다. 그 애는 상냥했는데, 라고 괜히 아픔을 늘릴 필요는 없다.
-사실 지금도 영력으로 다른 일은 잘 못한다. 그나마 나를 치유하는 거랑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도검들을 고쳐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나는 거기서 내 필요까지도 잃어버렸다. 지금 여기가 그나마 쓸모없는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 혼마루의 우라시마 코테츠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도해됐어요. 그렇게 말하는 담당자에게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거라곤 생각했지만. 다시 볼 수는 없구나. 미안해, 우라시마. 봄을 주고 싶었는데. 나는 이제서야 겨우 봄을 가지고 있는데 너에게 나누어줄 수가 없구나. 그래서 충동적으로 우라시마 코테츠를 데려왔다. 그 아이가 아닌 것은 알지만.
-현현전에 일단 매뉴얼을 읽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사람에게서는 어떤 맛이 나는지, 그것을 씹어 삼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이 막연한 괴로움만이 전해져오는 매뉴얼이었다. 당분간 식단은 야채 위주로 짜야겠다고 모두에게 말하자 오오쿠리카라가 약간 시무룩해졌다. 하세베한테 몰래 간식이라도 만들어주라고 말해줘야겠다.
-오래된 흉터를 한가득 달고 우라시마 코테츠가 현현됐다. 여느 블랙혼마루가 다 그렇듯이 작은 거북이는 달고 있지 않았다. 떨고 있는 우라시마의 어깨를 가만히 잡고 힘을 불어넣어 보았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영력이 흘러들어갔고, 흉터가 하나 둘씩 사라지며 어느새 어깨 위에는 작은 거북이 하나가 느긋한 표정을 짓고 올라가 있었다. 우라시마는 그것을 꼭 쥐고서는 바들거리며 짐승같은 오열을 토해냈다.
-우라시마는 나와도, 다른 도검들과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서 거북이에게만 말을 걸었다. 도검들에게 일단 그렇게 두라고 했고 도검들은 그걸 이해해주었다. 아마 다들 그랬던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서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가끔은 그걸 혼자 헤집어보기도 하고, 가끔은 손으로 꾹 누르기도 하는 시간. 누구에게나 쉬는 시간은 필요하다.가만히 앉아있자니 우라시마가 와서 옆에 앉았다. 고맙다고 말하기에 대답 대신 먹고 있던 당고를 나누어주었다. 고기가 아니니까 먹을 수 있지? 라고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이고 한입 베어물었다.
사실은 먹는거, 싫어해. 요리도 싫어. 그렇게 만들어놓으면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는걸. 그렇게 만들어버리지 않았다면 알아봤을 텐데, 먹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 우라시마의 독백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거 알지, 나도 내 고기인줄 알았으면 안 먹었을 게 제법 많으니까. 속으로 그렇게 대답하면서.
-형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고 우라시마는 울었다. 조금 참으면, 불가능할 건 없지 않을까? 나가소네한테는 그저 두개골이 골절되도록 맞은 거 뿐이고, 하치스카가 벤 자리는 날카로운 것으로 깔끔하게 베여서 그랬는지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무섭기는 하지만 나는 울고 있는 우라시마를 달래주고 싶었다. 나가소네를 먼저 데려와주는 게 낫지 않을까.